"시공간 초월한 범죄에 선제 대응해야…범죄 예방 효과 기대""수사기관이 범죄 부추길 수도…지나친 범의유발형 수사 우려"
  • ▲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위장수사를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뉴데일리DB
    ▲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위장수사를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뉴데일리DB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 허위영상물 등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경찰의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여야 간 큰 이견 없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범죄 예방 효과가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범의(犯意)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야는 14일 본회의를 열고 재적 의원 273명 중 찬성 272표, 반대 1표(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로 아동·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위장수사를 허용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가결해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앞서 지난 9월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의원 19명이 발의했다.

    법안은 디지털 성범죄를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정해 경찰이 신분위장수사나 신분비공개수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주요 골자다.

    다만 위장수사 기간은 최대 1년이다. 경찰은 초기 수사 3개월 이후 검찰을 통해 수사기간 연장을 신청해야 하고 이후 검찰은 법원에 수사기간 연장을 청구해야 한다.

    기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위장수사는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이른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으나 성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적용할 수 없어 반쪽뿐인 수사제도라는 비판이 있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2021년 9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총 515건의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판매·시청 사건을 수사했고 그 결과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1415명을 검거해 이 중 94명을 구속했다.

    범죄 유형별로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판매·배포 1030명(400건), 소지·시청 169명(9건), 제작·알선 149명(66건) 등이 적발됐다. 아동·청소년 대상 불법 촬영물을 배포한 36명(19건)과 성 착취 목적의 대화를 한 31명(21건)도 붙잡혔다.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범죄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에 따르면 2024년 1월1일부터 10월14일까지 피의자 총 474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집중단속에 나선 8월28일 전까지 445건, 단속 후 476건을 기록했다.

    ◆"범죄 예방 기대되지만 … 지나친 범의 유발 우려도"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수사기관의 선제 대응이 중요한데 그간 수단이 부족했다며 범죄 예방에 있어 앞으로 위장수사가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내다봤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익명성이 보장되고 해외 서버를 활용하는 등 시공간을 초월한 범죄라 수사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결국 범죄의 예방, 선제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완성된 범죄의 경우 그 피해는 평생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위장수사는 일부 국가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1980년부터 연방수사국(FBI) 위장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마약이나 음란물, 테러 등 범죄에 사용하고 있다.

    특히 2015년에는 아동 성범죄자를 잡기 위해 직접 아동 음란물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한 적도 있다. FBI는 이 사이트에 악성 스파이웨어를 심어 가입자 약 1300명의 소재를 파악해 이 중 137명을 재판에 넘겼다.

    다만 오히려 범행 동기를 제공한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 법원도 수사기관이 범죄를 저지를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한 후 체포하는 '범의유발형 수사'는 위법으로 판단한 바 있다.

    이미 범죄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실행에 옮길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제공형 수사'와 달리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수사기관이 범죄를 교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수사기관이 범죄를 부추기게 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 법을 집행하게 되는 부작용도 우려돼 위장수사 담당자 선발 과정을 보다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당히 사적인 정보를 다루게 되는데 수사 목적 이외에 잘못 사용될 수 있는 우려도 있다"며 "실적 경쟁에 매몰돼 오히려 지나치게 범죄를 유발하게 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소위 오남용의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법안 통과 하나만으로는 업무에 제한이 있을 수 있어 면책 규정 등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윤호 교수는 "나쁜 짓을 시작도 하지 않으면 경찰이 함정수사까지 해도 무슨 상관이 있겠나"라며 "범죄가 될 만한 행위를 아예 하지 않으면 된다. 공격적인 수사가 힘들면 적어도 선제적 대응이라도 적극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