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귀화한 인요한은 국민의힘 혁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개화파 對 척사파의 오랜 싸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당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지난해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43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당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지난해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43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하멜은 조선의 혁신위원장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조선>은 가난과 굶주림에 찌든 나라였다.
    왕과 대신들은 호화롭게 살았다.
    그 가난과 굶주림은 오롯이 백성들 몫이었다.

    <조선>은 혁신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끝내 혁신은 없었다.
    그래서 망했다.

    혁신의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엉뚱한 상상력이지만, <조선>시대 통틀어 최고의 혁신위원장은 누구였을까?
    ‘푸른 눈’의 하멜이었을 것 같다.
    앞선 지식과 기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그는 <조선>의 ‘끼리끼리’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 북한은 북(北) 조선, 아니 후(後) 조선

    ‘푸른 눈’ 인요한 교수가 국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다.
    환영한다. 

    반(反)국가주의자들은 벌써 흠집 내기 바쁘다.   
    한국의 반국가주의자들은 재밌는 이들이다.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고 반미를 외쳐서다.
    제 자식 미국 유학 보낼 때는, 용미주의자가 된다.
    전 세계 그러한 반미주의자는 대한민국에만 존재한다.

    이제 한국은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말장난 같지만 한국은 더 이상 <조선>이 아니다. 
    <조선>이란 나라는 옛날에 망했건만, 한국의 돌아가는 시스템을 보면 아직도 <조선>같다.

    <조선>은 시장 시스템이 없었던 나라였다.
    북한은 지금도 시장 시스템이 없다.
    우연 같지만, 북한은 지금도 스스로를 <북(北) 조선>이라고 칭하고 있다. 
    <북 조선>을 <후(後) 조선>으로 성격 규정하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조선이 망한 건 일본 때문 아냐

    오해가 있다.
    <조선>이 망한 건, 머리에 뿔난 일본인들 때문이 아니었다.

    일본에 병합되기 전 <조선>은 이미 망해 있었다. 
    무능하고 <헛제사밥>까지 만들어 배를 불리던 양반계급 주도로 변화를 거부해서 망했던 것이다.
    <헛제사밥>이란 뭔가?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고 했다.
    백수 양반들이 음풍농월 속에 빈둥거리다가 배가 고파지면, 음식을 장만해 잔치를 벌이고 싶었다.
    하지만, 평민들과 노비(노예)들은 뼈 빠지게 일하고  자신들은 그늘에서 놀고 있는데, 막상 잔치를 벌이자니 체면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유식한 척 제사 지낸다는 ‘명분’으로, 잘 차려놓고 끼리끼리 흥청망청  퍼먹고 놀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헛제사밥>이다.

    위선의 끝판이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조선의 양반들은 흡혈귀와 기생충으로 묘사했다.   

    양반들이 국수주의자 행세를 하고 쇄국을 정당화하며, 근대화를 거부했던 것은 조선의 미풍양속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특권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평등이 싫고 차별이 좋았다.

    <조선>이 남의 나라 식민지로 전락한 이유는 내부에 있었다.   
    효율적인 자원배분 시스템 즉, 시장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 무지몽매한 척사파의 계획경제

    영국하면 산업혁명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아세모글루 교수 지적에 따르면, <산업혁명>을 이끈 건 <명예혁명>이라고 한다.
    <명예혁명>의 결과 자유로운 노동시장이 만들어졌고, 누구라도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조선>은 영국과 달랐다.
    누구라도 생각이 새로우면 유배를 가야 했다.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시장 시스템은 없었고,  임금과 대신들의 기호에 맞춰 생산이 이뤄졌던 최악의 [계획경제] 상태였다.

    지금도 한국엔 [계획경제] 신봉자들이 많다.
    [586 운동권 좌파 양반]들이 주도한 [문재인식 계획경제]는 우연이 아니다.

    <조선>에 변화의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효종 때다.
    하멜과 그 일행이 일본으로 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불시착 했을 때다.
    그때 <조선>은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이미 <대항해 시대>가 열렸었고,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 말고 과학 기술 수준이 훨씬 높은 서구 문명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이 그렇게 무시했던 일본은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부국강병 기틀을 마련하던 중이었다.

    ■ 자유무역에 눈 뜬 일본, 스스로 눈 감은 조선

    <강대국의 흥망사>의 저자 폴 케네디 교수 분석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 국력은 이미 명나라를 추월했다고 한다.
    그 이후는 말할 것도 없다.
    유럽과의 교역 덕분이었다.

    자유무역은 마술이다.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번스타인이 쓴 <A Splendid Exchange> (한국에선 <무역의 세계사>라고 번역됨)라는 책을 읽어보면, 무역은 말 그대로 [눈부신 변화]이다.

    무역을 통해 돈을 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더 중요한 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동인도회사> 직원들이었던 하멜 일행에게 허드렛일을 시키고 오랑캐라 멸시했다. 
    하멜도 <표류기>에 <조선>은 무역을 모른다고 꼬집었다.
    재밌는 건 <조선인>들이 담배를 피웠는데, 그 담배는 유럽인들이 일본으로 수출했던 상품이었다고 한다.

    결국 하멜은 여수를 통해 <조선>을 탈출했다.
    상징적인 사건이다.

    <조선>은 그때 중국 중심 사대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멜의 시각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었다.

    ■ 민주당,  척사파 세계관 아직도 고수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한국이 빨리 근대화를 했더라면  동북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반복된다.
    지금도 <척사파>와 <개화파>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푸른 눈’ 인요한 위원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척사파> 세계관을 고수하는 민주당은  그렇게 헐뜯기만 하지 말고, 공산주의자 정율성의 후손을 찾아 혁신위원장으로 내세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