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에 주눅 들지 않는 자유주의 유망주 면모 보여줘한동훈의 어퍼 컷, 원희룡의 옆차기···"브라보"
  • ▲ 한동훈 법무부 장관(좌측)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뉴데일리
    ▲ 한동훈 법무부 장관(좌측)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뉴데일리
    ■ 원희룡·한동훈의 촌철살인

    “지번, 행신동 1082를 아는가?”

    “박범계 집 앞으로 고속도로가 나면 수사해야 하는가?”

    촌철살인(寸鐵殺人)이었다.
    원희룡 한동훈의 KO승(勝)이었다.
    7월 26일 같은 날,
    한동훈이 어퍼컷을 날렸고
    원희룡이 두 발 옆치기를 휘둘렀다.
    브라보!

    ■ ①개인의 당당함 엘리트의 리더십 대세거부의 용감함

    어떤 승리였나?

    (1)
    한 점 꿀릴 게 없는 개인의 승리였다.
    주뼛주뼛하고 기죽을 이유와 용의가 전혀 없는 개인의 승리.
    개인과 패거리가 1 대 10 정도로 붙으면,
    개인이 겁먹게 마련이다.
    그러나 위 두 장관 같은 개인들은,
    그런 대결에서일수록 더 용기백배하는 것 같다. 

    (2) 좋은 뜻의, 엘리트의 승리였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엔
    엘리트보다 대중을 더 앞세우는 하향 평준화가 횡행했다.
    이유는 물론 있다.
    엘리트의 타락이 전체를 망친 사례가 많았던 까닭이리라.

    그러나 요즘엔 대중의 타락이 오히려 더 심각하다.
    타락한 민중·민주주의가
    길거리에 나서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만든다.

    전철에서 한 노인이 20대 여성에게 휴대전화로 맞아 머리에서 피를 흘렸다.
    별 이유도 아니었다.
    이런 저질 판에서,
    두 일류 장관 엘리트들이
    최전선에 나서서 지휘관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 oblige).

    (3) 소위 대세(大勢)라는 것에 아첨하기란 쉽다.
    그리고 그것에 거역하기란 어렵다.
    위 두 장관 엘리트들이,
    그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은 예외적·매력적이다.

    ■ 성찰 없는 신념은 미신

    1960년에 자유당 강경파의 3.15 부정선거에 맞서 4.19 학생들이 일어났다.
    운동권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그러나 운동권은 또 하나의 권력이 되면서부터,
    그들이 저항하던 상대방 못지않게 타락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는 것,
    불완전한 인간은 지상천국을 만들 수 없다는 것,
    이래서 “내가 과연 옳게 생각하는 것일까?”를 항상 회의(懷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성찰을 잊을 때,
    신념(信念)은 미신(迷信)으로 전락한다.
    주사파 등 극좌 운동권은 이미 오래전에 미신으로 굳어졌다.

    ■ 원희룡·한동훈 vs 이재명


    원희룡은 이 미신을 적기(適期)에 박차버린 사례라 하면 될지?
    한동훈은 이 미신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MZ 세대의 모델쯤 된다고 하면 될지?

    잘은 모른다.
    그러나 기분이 좋다.
    자유인들에게 유망주(株)가 둘씩이나 되니.
    저쪽엔 이재명 하나면 됐지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