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 복원에 따라 동결된 한국의 '원유수입대금 70억 달러' 반환 포석?점증하는 북핵위협 전제로 한 윤석열 대통령의 '핵무장' 언급에 '외교적 결례'윤 대통령, WSJ에 "한국에는 NPT체제가 합리적이고 현실적…미국 확장억제 신뢰"
  • ▲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022년 6월 9일(현지시간) 샤흐레코르드에서 연설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 내 지하에서 미신고된 핵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며 규탄 결의안을 채택한 지 하루 만에 라이시 대통령은 자국 내 주요 핵시설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운영을 모두 중단한다고 단호하게 맞섰다. 
ⓒAP=뉴시스
    ▲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022년 6월 9일(현지시간) 샤흐레코르드에서 연설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 내 지하에서 미신고된 핵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며 규탄 결의안을 채택한 지 하루 만에 라이시 대통령은 자국 내 주요 핵시설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운영을 모두 중단한다고 단호하게 맞섰다. ⓒAP=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 우리의 적은 북한" 발언과 함께 북핵 위협 악화를 전제로 한 '독자 핵무장' 발언에 대해 이란이 항의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對)이란 제재 복원 방침에 따라 동결했던 국내 '이란산 원유수입 대금 70억 달러'를 해결하고자 '외교적 결례'까지 불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NPT(핵확산금지조약) 당사국이지만 지난 30여 년간 NPT와 IAEA(국제원자력기구) 규범을 수차례 위반해온 이란이 대표적인 '비확산 모범국'인 한국에 'NPT 위반'을 운운한 것은 '적반하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은 1967년 NPT에 서명, 1970년에 비준한 데 이어 1975년 IAEA와 핵안전조치협정을 체결했지만, 우라늄농축활동을 은폐하고 핵안전조치협정에 따른 추가의정서 비준을 거부했으며 IAEA 사찰관을 추방하기까지 했다. 

    2002년 8월에는 '미신고 핵시설'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란 반정부 단체인 '국민저항위원회'(NCRI)가 이란이 나탄즈(Natanz)와 아라크(Arak)에 비밀리에 운영하던 우라늄농축시설과 중수생산공장 등 미신고 핵시설을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다. 이란은 IAEA에 상세보고서를 제출함으로써 18년 만에야 미신고 활동을 시인했지만, 보고서의 내용은 IAEA 사찰결과와 달랐다. 

    이와 관련해, 이란은 2003년 영국, 프랑스, 독일과 '테헤란 합의성명(Tehran Agreed Statement)'을 채택했지만 8개월 만에 파기했다. 2005년 8월 이란의 '제한적 핵이용 권리'를 인정하겠다는 EU의 제안도 거부한 채 우라늄 농축시설 가동을 재개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유엔안보리)가 결의 1737호(2006년 12월 23일), 1747호(2007년 3월 24일), 1803호(2008년 3월 3일), 1929호(2010년 6월 9일)를 채택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9년에는 또다른 미신고 시설의 존재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콤(Qom) 지역에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던 포르도(Fordow) 우라늄농축시설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영국의 비밀정보국(MI6), 프랑스의 대외안전총국(DGSE), 독일 연방정보국(BND) 등에 의해 포착된 것이다. 이란은 NPT를 탈퇴한 북한과는 달리, 꾸준히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처럼 핵안전조치협정과 NPT를 수차례 위반해왔다.

    앞서 이란은 윤 대통령이 지난 16일 아랍에미리트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방문해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 우리의 적은 북한"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윤강현 주이란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면서 윤 대통령의 '독자 핵무장' 발언이 NPT에 어긋난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지난 11일 '비공개'로 이뤄진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제 더 (북핵) 문제가 심각해져 가지고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까지 문제 삼은 것이다.

    레자 나자피 이란 외무부 법무·국제기구 담당 차관은 대금 동결 문제를 거론하며 "분쟁 해결을 위해 유효한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은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개설한 원화 계좌를 통해 원유 수출 대금을 받아왔지만, 미국 트럼프 정부가 2018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 계좌가 동결됐다.
  • ▲ 국방부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 국적 화학물질운반선 '한국케미호'(9797t)를 나포한 것과 관련, 청해부대 33진 '최영함'(DDH-Ⅱ·4400t급)을 호르무즈 해협 인근으로 이동시켰다고 2021년 1월 5일 공식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24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파병길에 오르는 최영함의 모습. 
ⓒ뉴시스
    ▲ 국방부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 국적 화학물질운반선 '한국케미호'(9797t)를 나포한 것과 관련, 청해부대 33진 '최영함'(DDH-Ⅱ·4400t급)을 호르무즈 해협 인근으로 이동시켰다고 2021년 1월 5일 공식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24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파병길에 오르는 최영함의 모습. ⓒ뉴시스
    이란은 지속적으로 동결대금 송금을 요구해오는 한편, 지난 2021년 1월 이란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화학물질 운반선인 '한국케미호'를 나포했고, 같은 해 9월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한국 가전제품 수입 금지령'을 내렸다. 나포사건 당시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고 "만약 인질극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금 70억 달러를 근거 없이 동결한 한국 정부일 것"이라고 주장했고, 하메이니는 '국내 전자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편,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윤 대통령이 독자 핵무장을 시사한 발언을 누그러뜨렸다(dial back)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은 WSJ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우리가 NPT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와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핵 위협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해서 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다"며 "현재 미국 핵 자산의 운용에 관해서 공동 기획, 공동 실행이라고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미 간에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NPT 시스템을 매우 존중하며, 미국과 확장억제를 더욱 강화하고 한미일 간의 안보협력을 더 튼튼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핵이냐 경제냐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당분간 북한이 경제를 선택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