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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데일리TV] 북 납치 민간 선박만 37척...정부, 반환 요청도 일체 안 해

켈로부대 영웅 최원모, 선원 위장 간첩 공작 마수에 걸려 피납57년간 생사여부 몰라...비전향 장기수 63명은 그냥 보내줬다

입력 2023-01-11 19:16 수정 2023-01-11 19:16

▲ 납북된 켈로부대원 최원모씨ⓒ최성룡 씨 제공

김일성이 치를 떠는 부대가 있다. 바로 켈로부대(KLO) 부대다. 1948년 미국이 대북 정보 수집을 위해 조직한 특수부대로, 북한 출신이 대부분이다.

켈로부대원들은 북한군으로 위장해 첩보 수집, 요인 암살, 시설물 파괴 등 비밀공작 활동을 펼쳤다. 켈로부대는 한국전쟁 3년 동안 4400차례 작전에 투입돼 미군에 넘긴 첩보만 2만7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6.25전쟁에서 세운 공이 크다. 특히 켈로부대는 '팔미도 등대 작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당시 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등대로 불을 비춰야 야간 상륙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군은 인민군 수중에 있던 팔미도 등대를 차지해야 했다. 이에 미군 3명과 켈로부대원 3명으로 구성된 특공조가 팔미도 등대 탈환 작전에 투입됐다. 

그리고 이들은 작전에 성공, 1950년 9월 15일 오전 1시 45분 인천 앞바다를 밝혔다. 덕분에 7만 5000여명의 병력을 실은 261척의 연합군 함대는 무사히 인천에 상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켈로부대는 전쟁이 끝난 후 '잊혀진 영웅'이 됐다. 계급과 군번 없이 활동한 비밀조직이였기 때문이다.

켈로부대 최원모씨는 부대가 해체될 쯤 남하했다. 그의 운명은 기구했다. 연평도 앞바다에서 선박사업을 하며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던 그는 어로작업 중 북한 무장선에 납치됐다.

1967년 납북된 최원모씨의 생사 여부를 아는 이는 없다. 그의 가족들은 56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저 속만 태우고 있다. 정부가 납북자 송환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아들 최성룡 씨는 2000년 납북자가족모임단체를 처음 설립했다. 그는 납북자송환 문제 해결에 인생 전부를 바쳤다. 기필코 아버지 생사 여부를 밝히고, 재산 '풍복호'를 환수해오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문턱은 너무 높았다. 긴 세월 납북자 송환에 힘 썼지만 결국 최성룡씨는 부친을 찾을 수 없었다. 풍복호도 환수하지 못했다.

이에 <뉴데일리>는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를 찾아 켈로부대원 '최원모'씨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와 최성룡 씨가 2023년 통일부와 윤석열 정부에게 부탁하는 당부의 말을 들어봤다.

▲ 풍복호ⓒ최성룡씨 제공

-북한 무장선이 어떻게 접근해 아버지를 납치해갔나?

"납북자관리카드를 보면 우리 부친 배에 선원 8명이 탔다. 5명은 다른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귀환했다. 5명 증언에 따르면 배가 철수를 하려고 그물과 닻을 거두던 중 북한 무장선이 배에 총을 쐈다. 이에 선원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북한 무장선이 (부친 배에) 올라와, "뱃머리 돌리라"고 명령해서 (그렇게) 북한에 끌려갔다.

이 과정에서 북한 사람들은 이미 아버지 이름을 알고 있었다. "최원모 씨, 최원모 선생 어서 오시오" 라고 말했다(고 귀환자들이 증언했다)."

-납북된 배에 간첩이 탔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5명은 다른 배로 인천항에 귀환했다.(납북자 관리카드에 따르면 북한에)남은 3명은 부친, 학생, 간첩 행위를 하다가 검거된 사람이다. 그 사람(간첩)이 아버지를 북한에 끌고 가려고 일부러 아버지 배를 선택해 탄 것 같다."

-켈로부대에서 아버지는 어떤 활동을 했나.

"부친은 평양북도 정주군 갈산면이 고향이다. 어머니는 평양북도 정주군 덕안면이다. 당시 맥아더 사령부가 아버지를 선택해 일본 오키나와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는) 치안부대 대장을 하면서 북한 공산주의들을 색출해냈다.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기 전 아버지가 치안부대에서 활동하다가 6.25 전쟁 발발 후 맥아더사령부에서 북한 지역 출신들을 켈로부대로 뽑았다. 맥아더 사령부는 엔진이 달린 배에 '북진호(북한으로 진격한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버지가 (북진호) 선박대장을 했다.

북한군, 중공군 잡아다가 백령도에 아버지가 갔다 놓으면, 이들을 정리해 다시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냈다. 정주군 공산주의자들이 아버지를 최고 원수로 여겼다. 반역자, 반동분자로 지정되면 모든 재산이 압수되고, 가족들은 사형당한다. 공산주의자들의 제도다.

이에 아버지 재산은 압수됐다. 납북자관리카드를 보면 아버지는 '좌익분자를 살해한 것이 발각돼 억류됨'이라고 우리나라 국정원이 썼다. 그렇다면 북한이 부친을 어떻게 했겠냐? 인민재판에 회부했을 것이다. 뻔한 것 아니냐."

-풍복호 반환을 위해 우리나라 정부가 어떤 시도를 했나?

"부친은 무궁화 훈장까지 받을 정도로 전쟁에서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다. 큰 영웅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
그런 분을 위해 국가가 무슨 노력을 했는지 내가 물어봤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대통령들은 취임식에서 선서한다. 

그래서 내가 질문을 던졌다. 선박(재산)반환에 대해서. 37척 배가 북한에서 아직 안 돌아왔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배를 달라고 정식 요청했는지 물어봤다. 들어보니 정식 요청한 적 한번도 없다.

그러면 대통령과 정부가 직무유기한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국가가 떳떳하게 북한에 한번도 요구한 적 없다. 이번에 내가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1967년 선박 한 척이면 집을 수 십채 살 수 있다. 배가 지금도 비싸지만 그때도 비쌌다. 우리 모친이 국가유공자인데, 아버지 때문에  말도 못하고 우리 형님하고 힘든 세월 산 것을 누구보고 책임지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조금이라도 노력을 했냐? 안 했다.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저는 물어야겠다.

정부가 납치된 배를 돌려달라고 안 했다. 이는 직무유기다. 윤석열 대통령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최근 과거 정부에서 북한 문제 관련 잘못한 것이 있다면 현 정부가 책임지고 보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잘한 일이다.

광주민주화, 4.3 피해자들은 보상해주고 대통령이 직접 사과한다. 그런데 북한한테 당한 피해자 가족들은 어떻게 이처럼 소홀히 대하냐. 윤석열 정부는 이것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할때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보냈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하고 (납북자송환 문제 관련)아무 것도 안 했다. 평양 운동장에 있는 북한 주민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내 나라 국민 한명이라도 데리고 왔냐?

내 나라 국민·재산을 한번이라도 북한에 반환 요청했나? 그런 적 없다. 이산가족들 거의 다 돌아가셨다. 국군포로, 납북자가족 1세대 거의 다 돌아가셨다. 누가 책임져야 하지 않나?

그렇게 정상회담은 많이 해놓고 한 맺힌 피해자 가족들에게 (국군포로와 납북자)생사여부를 아직도 안 알려줬다. 지금이라도 북한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책임져야 한다. 헌법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준다고 명시하지 않았냐.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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