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성 연출가 인터뷰…'SPAF' 초청작 20~23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 ▲ 이경성 연출가.ⓒ강민석 기자
    ▲ 이경성 연출가.ⓒ강민석 기자
    이경성(39) 연출가는 여기저기 흩어진 동시대 이슈를 찾는 눈이 뛰어나다. '비포 애프터', '그녀를 말해요', '러브 스토리', '보더라인' 등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키며 연극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소통을 이어나간다.

    '2022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를 통해 무대에 오르는 '섬 이야기'는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이다. 이경성 연출가와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VaQi)가 함께 만든 이 연극은 '제주공항·유해발굴·탈지역성·연대'라는 키워드를 두고 동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유효한 시각을 드러낸다.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만난 이경성 연출가는 "제주4·3을 가지고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많이 우려했어요. 너무 복잡하고 거대한 흐름의 사건이다 보니 '연극이란 매체에 담는 게 맞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계속 했던 것 같아요"라고 털어놨다.

    공연은 현재 제주국제공항이 된 '정뜨르 비행장'의 유해발굴작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정뜨르 비행장은 4·3 당시 대규모 양민 학살이 이뤄진 곳이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2006년부터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을 통해 지금까지 400여구의 유해를 발견했다.

    이 연출가는 "활주로 아래 국가폭력에 의해 학살 당한 유해들이 나왔다는 기사를 접하고 제가 감각하지 못한 땅의 맥락이 묻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주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성을 갖춘, 4·3사건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한국 현대사에서 왜곡·은폐돼 온 4·3의 실체를 예술가의 시선으로 환기하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4·3이라는 국가폭력을 소환해 함께 연대하고 싶었습니다."

    '섬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가족을 70년 만에 유해로 만나가는 과정을 다양한 예술적 방식을 통해 직조한다. 이경성과 극단 바키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배우 장성익과 함께 학살지를 방문하고, 생존자와 연구자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들은 제주에서 사운드, 영상, 오브제 등을 직접 수집해 연극 안으로 가져왔다.
  • ▲ 제주도 4.3 관련 학살지를 답사하고 있는 이경성 연출가(왼쪽 둘째)와 배우들.ⓒ크리에이티브 바키
    ▲ 제주도 4.3 관련 학살지를 답사하고 있는 이경성 연출가(왼쪽 둘째)와 배우들.ⓒ크리에이티브 바키
    "평론가나 이론을 전공하신 분들이 '다큐멘터리 연극'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냥 연극을 하는 거죠. 공연의 창작 방식에서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활용했을 뿐이에요. 하나의 정보로만 제시하지 않고 연극적 장치를 통해 새롭게 해석하고 확장합니다."

    무대에는 4·3 희생자 유족의 이야기를 전하는 배우 3명과 유해발굴단장을 연기하는 배우 1명이 등장한다. 배우는 이어폰을 끼고 유전자 감식을 통해 아버지를 찾은 유족의 구술이 담긴 녹음을 들으며 학살과 저항의 기록들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죽은 어른들 눈물로 세수허연. 그 어른들 생각하면 눈물이 핑 허게 나지. 그, 우라큰가 어데 전쟁 일어나. 그걸 보민, 똑 우리 닮은거라. 너무너무 불쌍해. 그걸 보는디, 나가 우리같앙, 너무너무 불쌍해, 나라 뺏기고, 고생허고…" 북촌리 이영자 할머니의 제주방언이 배우의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이 연출가는 "제주방언을 표준어로 바꿔서 관객에게 말하면 언어의 위계가 발생하는 거잖아요. 제주어 특유의 억양과 음률을 정확하게 살려서 관객에게 전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말의 의미 해석은 지연되겠지만 대신 다른 감각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성과 크리에이티브 바키는 '공동창작' 작업방식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기존의 텍스트에 의존하지 않고 배우들과 함께 리서치, 인터뷰, 토론, 발표 등을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작가가 쓴 텍스트로 작업하게 되면 성에 차지 않아요. 직접 바라보고 경험하면서 연극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싶어요. 이야기에 맞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는 게 재미있고, 여러 시점과 관점이 충돌하면서 융화하는 과정이 연극을 더 살아있게 합니다."

    연극 '섬 이야기'는 오는 23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 ▲ 연극 '섬 이야기' 포스터.ⓒ예술경영지원센터
    ▲ 연극 '섬 이야기' 포스터.ⓒ예술경영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