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푸틴 최측근과 국영은행들 제재 대상에 올려…“러시아 국채 발행 못하게 만들 것”독일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사업 중단…일본 “러시아 정부 관련 채권 유통·발행 금지”
  • ▲ 현지시간 22일 백악관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현지시간 22일 백악관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반군세력에 대한 독립 승인과 군사력 지원을 결정하자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유럽연합(EU) 등 서방진영이 일제히 제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은 이틀째 러시아에 대한 제재 이야기가 전혀 없다.

    바이든 “침략에 대응, 러시아 국책은행 2곳과 푸틴 측근들 제재할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을 시작했다”며 대러 금융제재 계획을 발표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이전 제재를 훨씬 더 뛰어넘는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러시아 권력자와 그 가족에 제재를 부과하고 러시아의 국채 발행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 국책은행인 VEB(대외개발은행)과 방산관련 특수은행 PSB(프롬스비야즈 은행), 그리고 이들의 계열사 42곳을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백악관은 VEB를 ‘크렘린궁의 돼지저금통(piggy bank for the Kremlin)’이라고 불렀다. 백악관 고위당국자는 질의응답에서 “우리는 VEB와 PSB를 미국과 유럽 금융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할 것”이라며 “러시아 5대 은행으로 500억 달러(약 59조6750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졌지만 실은 크렘린궁의 돼지저금통인 VEB와 350억 달러(약 31조7700억원)의 자산을 가진 PSB의 국제금융거래를 완전히 막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 측근과 그 가족들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과 그 아들 데니스 알렉산드로비치 보르트니코프, PSB의 CEO(최고경영자) 페트르 프라드코프, 크렘린궁 제2부실장 세르게이 블라디레노비치 키리옌코, 그의 아들인 블라디미르 키리옌코 VK그룹 CEO도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EU는 이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부가 해외에서 국채를 발행하는 것도 막을 예정이다. 해외서 국채발행이 불가능해지면 러시아의 국가신용도가 하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영국, 5개 러시아 은행과 푸틴 측근들 제재…독일 ‘노르트스트림 2’ 가스관 중단

    영국과 독일도 러시아 제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2일 로시야은행, IS은행, 제네럴은행, 프롬스비아즈은행, 흑해은행 등 러시아 은행 5곳과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겐나디 팀첸코, 보리스 로텐베르그, 이고르 로텐베르그 등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다고 밝혔다.

    존슨 총리는 “이번 제재는 첫 번째”라며 “푸틴 대통령이 계속 나아간다면(우크라이나 침략 기세를 올린다면) 추가 제재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같은 날 ‘노르트스트림-2’의 인증 문제를 재평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가스관 사업을 중단했다. 바이든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에 “독일과 매우 긴밀한 협의 끝에 러시아가 110억 달러(약 13조1300억원)를 투입한 ‘노르트스트림-2’를 폐쇄했다”며 “이는 세계가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이루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우스트루가부터 발트해를 거쳐 독일 그라이프스발트까지 1225킬로미터 연장의 ‘노르트스트림-2’ 천연가스 공급관은 건설하는 데만 950억 유로(약 128조4900억원)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비 가운데 절반은 러시아 국영업체 가즈프롬이 댄 것이라고 한다.

    EU 회원국 외교장관들, 러시아 제재 만장일치로 승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22일 파리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의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도이체벨레(DW)가 전했다.

    EU는 러시아 하원(국가두마) 의원 351명 전원과 미국도 제재한 VEB와 PSB, 영국도 제재한 로시야뱅크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위협에 책임이 있는 정책 담당자와 반군 지원조직 관계자 및 침략에 가담한 러시아군 장교 등 27곳의 개인과 법인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EU 기업들과 크림반도 간의 교역도 금지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을 제재 대상에 올리지는 않았다.

    우즈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러시아가 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면 우리는 더 많은 대응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채권 발행 및 유통 금지” 일본도 러 제재…文정부 '제재' 언급도 안해

    일본도 23일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 NHK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오전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러시아 정부나 정부기관이 발행·보증하는 채권의 일본 내 발행 및 유통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가 독립을 승인한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반군세력 2곳에 대해 비자발급 정지, 자산동결, 수출입금지 조치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러시아의 행동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침해하고 국제법을 위반한 행위로 강력히 비난한다”며 “일본은 국제사회와 공동 대응한다는 관점에서 러시아를 제재하기로 했다”면서 “사태가 악화될 경우 G7(주요 7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해 새로운 조치를 신속히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과 독일, 일본이 이처럼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데 대해서는 백악관도 이미 귀띔했다. 백악관 고위당국자는 22일 “오늘 우리는 동맹국 및 협력국과 함께 신속하게 단합해서 대응했다”며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 EU 등의 동맹국 및 협력국과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첫 번째 제재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서방 주요국이 미국과 함께 러시아 제재에 나섰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틀째 ‘러시아 제재’라는 말을 꺼내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가안보회의(NSC) 및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존은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강도 높은 제재를 취하게 되면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