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당사자 명예와 사생활 침해되지 않게 최선"… 경찰 "언론 유출 방지 고민"법조계 "엄정수사 강조했어야… 여당 대선후보와 연루돼 눈치 보는 것" 개탄
  •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대장동 특검'을 촉구하는 화환들이 서 있는 가운데, 한 시민이 화환 앞을 지나가고 있다. ⓒ강민석 기자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대장동 특검'을 촉구하는 화환들이 서 있는 가운데, 한 시민이 화환 앞을 지나가고 있다. ⓒ강민석 기자
    "대통령선거를 앞둔 엄중한 상황에서 사법당국이 범죄와 전혀 관련이 없는 특정 개인에 대한 수사 내용을 일부 언론에 흘려 흠집을 내려는 행태에 대해 강력히 경고한다." (정진상)

    정진상 민주당 선대위 비서실 부실장이 유동규(구속) 전 기획본부장 주거지 압수수색 당시 유 전 본부장과 통화한 사실이 4일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드러나자 이 같이 말했다. 자신은 "범죄와 전혀 관련이 없다"면서 검찰과 경찰을 향해 "경고한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정 부실장은 민주당에서 이재명 대선후보를 도울 뿐, 검·경을 향해 ‘경고’할 만한 지위에 있지도 않다. 자연히 정 부실장이 후보를 등에 업고 검·경을 겁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진상 "사법당국에 강력 경고"… 이재명 "국민의힘에 수사 집중하라"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검찰이) 성남시를 배임 수사한다면서 시시콜콜한 수사 내용을 흘려 흠집 내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며 "검찰은 국민의힘 인사들의 민간개발 강요죄와 부정자금 수수에 집중하길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야당을 수사하고 자신의 측근은 '건드리지 말라'는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공표한 셈이다.

    정 부실장에게 '경고를 당한' 검찰과 경찰이 미지근한 반응을 내놓은 것도 도마에 올랐다. 

    이날 검찰은 "이와 관련한 어떠한 내용도 언론에 알려준 사실이 없다"며 "수사 과정에서 당사자의 명예와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정 부실장이 '사법당국에서 수사 사항을 유출하는 거에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저희를 통해 언론에 흘러가는 것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검·경이 내놓은 견해에 법조인들은 '저자세 대응'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아직 피의자 신분은 아니지만 구속된 유동규 전 본부장에 대한 압수수색 직전에 통화를 하는 등 수많은 의혹에 연루된 사람이 어떻게 검·경을 향해 '경고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그러면서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라는 비난에 예민한 것은 이해하지만, 엄정히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확실히 밝혔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유독 현 여권 인사들에게만 '인권수사' 강조… 왜곡된 검찰개혁의 단면"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이헌 변호사는 "유달리 현 정권 관련 인사들 사건에 대해서만 인권보장 등의 얘기가 많이 나온다"며 "이는 왜곡된 검찰개혁의 한 단면으로, 여당 대선후보가 관련돼 있다보니 검·경이 더더욱 눈치를 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세욱 '경제를생각하는변호사모임' 상임대표는 "수사 대상자일 수도 있는 정 부실장이 수사기관에 함부로 언급한 것과 관련해 수사당국은 '극히 부적절하다. 유감을 표명한다. 더욱 엄중수사하겠다' 등으로 맞서야 했다"고 질타했다.

    정진상, 대장동 관련 문서에 최소 9차례 결재

    정 부실장은 자신이 "범죄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변했지만, 그는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한 문서에 최소 아홉 차례 결재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동아일보는 "2014년 1월9일 '대장동·1공단 결합 도시개발 구역지정 추진계획 보고' 문서에서부터 정 부실장의 서명이 등장한다"고 전했다. 

    정 부실장은 또 '대장동 개발계획 수립(안) 보고'(2014년 12월) '대장동 개발계획 수립 고시'(2015년 6월) '대장동 실시계획 인가'(2016년 11월) 등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한 핵심 공문에 모두 등장한다. 

    초대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을 지낸 황무성 전 사장은 정 부실장과 관련 "공사의 업무를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알아야 이재명 시장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4일 조선일보에 말했다. 

    또 지난달 22일 중앙일보는 "성남시 모든 인사와 계약은 정 실장을 통했을 정도로 그의 파워가 상당했다. 시청 내 실세였던 정 실장은 공무원 사이에서 ‘왕 실장’으로 불릴 정도였다"는 한 성남시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정진상' 이름, 황무성 사퇴 압박 녹취록에 8번이나 언급

    정 부실장은 또 황무성 전 사장의 사퇴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황 전 사장과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현 포천도시공사 사장) 간 대화 녹취록에 따르면, 유한기 전 본부장이 황 전 사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는데, 이 녹취록에는 '정진상'이 여덟 번이나 언급된다.

    한편 정 부실장의 "사법당국에 경고한다" 발언에 한 검찰 관계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 부실장이 여당 대선후보의 측근이라고는 하나, 그와 같은 발언 만으로 수사팀이 압력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