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칼럼니스트 주장 파문에… 설리번 NSC 보좌관 "한국·유럽서 미군 철수 없다" 강조안보전문가들 “부패한 정부·내전상태 아프간과 안보의식 강한 한국 비교 어려워”
  • ▲ 카불국제공항에서 활주로를 달리려는 미군 C-17 수송기에 아프간 시민들이 달려들고 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카불국제공항에서 활주로를 달리려는 미군 C-17 수송기에 아프간 시민들이 달려들고 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프간 패망 이후 국내에서는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국도 같은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마크 티센이 최근 트위터에 “미군이 없으면 한국도 아프간처럼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고 한 주장이 급속히 퍼졌다.

    이에 미국 백악관이 “바이든이 거듭 말했다”며 “한국과 유럽에서 미군 철수는 없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국내 안보전문가들도 “한국과 아프간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놨다.

    “주한미군 철수” 우려 커지자 백악관 안보보좌관 “그럴 일 없다”

    16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마크 티센이 “미국의 지원이 없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이 아프간처럼 지속적인 공격을 받는다면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을 트위터에 올렸다. 마크 티센은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백악관 수석 연설보좌관을 지냈다. 현재는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겸 폭스뉴스 평론가로 활동한다.

    티센은 “6·25전쟁 이후 미군이 철수했다면 한반도는 빠르게 북한에 통일이 됐을 것”이라며 “우리 군대(미군)가 한국에 있는 이유는 북한을 억제하고 그 결과를 막으려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난하는 글이 이어지자 티센은 “한국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다면 왜 미군이 거기 있나? 그럼 일본과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자는 거냐”고 되물었다.

    이런 주장에 이어 한국 여론이 술렁이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 “주한미군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아프간에 이어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미군 철수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거듭 말했듯 한국이나 유럽에서 미군을 철수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어 “한국과 유럽은 우리가 오랫동안 주둔한 곳이고, (아프간처럼) 내전이 벌어지는 곳도 아니다”라며 “우리는 외부 적대세력의 잠재적 위협을 억지하고 우리의 동맹을 보호하기 위해 그곳에 있다. 아프간과 한국·유럽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국내 안보전문가들도 “한국과 아프간 근본적으로 달라… 주한미군 철수 않을 것”

    국내 안보전문가들 또한 “한국과 아프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일축했다. 두 나라 상황의 차이가 크고 미국의 전략에서도 가치가 다르다는 지적이다.
  • ▲ 제이크 설리반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이크 설리반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한범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는 “현 정세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한국과 아프간은 일단 안보에 대한 국민정서부터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북한 등 외부의 위협이 있으면 국민이 일치단결해 대응하겠다는 마음이 여전히 강한 반면 아프간은 오랫동안 종족 간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안보를 향한 한국인의 인식과 의지는 이스라엘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하다”고 강조한 정 교수는 “게다가 아프간은 미국에 침공 당한 나라인 반면 한국은 미국이 함께 북한의 침공을 막아낸 나라로, 미군의 주둔 원인부터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또한 “한국과 아프간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군대가 붕괴한 아프간과 안보역량을 스스로 강화(自强)하려는 한국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 센터장은 “게다가 현재 미국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테러와 전쟁도 끝난 마당에 아프간은 미국에 더 이상 가치가 없는 반면,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 대중국 전략 측면에서 오히려 그 가치가 예전보다 높아졌다는 것이 신 센터장의 분석이다.

    “정부가 한미동맹을 일부러 깨뜨린다거나 여론을 악화시키지 않는 이상 현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이다. 평소 한미동맹 결속을 잘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도 나오는 ‘주한미군 철수론’… 묘하게 ‘중국’ 연관돼 있어

    이처럼 미국 백악관은 물론 국내 안보전문가들도 “아프간과 한국은 다르다”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일축함에도 국내 일각에서는 꾸준히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나온다. 여기에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지난 8월11일 홍현익 신임 국립외교원장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홍 원장은 지난해 9월 ‘미중 갈등과 한국의 외교안보 대응전략’이라는 영상 브리프에서 “우리가 먼저 미국에 주한미군을 1만 명쯤 줄이자고 제안하자”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이 너무 많으므로 2만8500명 중 1만 명 정도는 감축하자고 미국에 제안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홍 원장은 “(주한미군 감축은) 미국의 부담을 줄여주고 남북관계·한중관계도 개선할 수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홍 원장은 이 영상 브리프에서 “반중 노선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제안에도 선을 그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이 동맹국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는 계획에도 “북한 영토를 넘어 중국·러시아를 타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그렇게 되면 한국은 반중-반러 국가가 되기 때문에 사드 때보다 훨씬 심한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홍 원장은 주장했다.

    경제분야에서는 지난해 1월 투자자 짐 로저스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고 주문했다. 로저스는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에 주는 조언”이라며 “어려울 것 없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면 된다”고 주장했다. 

    로저스는 “내가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이용해 북한이 핵무기를 제거하도록 할 것”이라며 “주한미군이 없으면 한국이 중국·러시아와 훨씬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 미국 커뮤니티 '레딧'에 올라온 사진. 1975년 4월 베트남 패망 당시 사이공 미대사관과 2021년 8월 아프간 패망 때 카불 미대사관을 비교했다. ⓒ레딧 해당 스레드 화면캡쳐.
    ▲ 미국 커뮤니티 '레딧'에 올라온 사진. 1975년 4월 베트남 패망 당시 사이공 미대사관과 2021년 8월 아프간 패망 때 카불 미대사관을 비교했다. ⓒ레딧 해당 스레드 화면캡쳐.
    바이든이 지적하는 ‘아프간 패망’의 근본 원인

    아프간 패망의 표면적 원인은 미군 철수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줬지만, 스스로 싸울 의지는 줄 수 없었다”며 아프간 패망의 근본 원인은 그들 내부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6일 백악관 연설에서 “미국은 1조 달러(약 1168조5000억원)를 들여 30만 명의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하고 무장시켰다. 우리는 그들에게 월급과 필요한 모든 장비를 지원했고,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기회를 줬다”면서 “하지만 그들이 미래를 위해 싸울 의지까지 우리가 줄 수는 없었다”고 한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프간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이로 인한 군대의 사기 저하가 패망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아프간 정부군이 서류상으로는 30만 명에 이르지만, 군 간부들이 급여를 가로채고 허위기재한 ‘유령 장병’이 대부분으로 실제 병력은 6분의 1 이하였다는 미국 정부 당국자의 말을 전했다. 

    게다가 급여와 식량·장비·탄약도 제때 지급되지 않는 일이 오랜 기간 이어져, 탈레반이 카불을 향해 진격할 때 정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정부군이 별로 없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바이든과 뉴욕타임스의 지적은 아프간 패망이 1975년 4월 베트남 패망과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