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요구하면 절차·방법 무시하고 충성… 나쁜 버릇 몸에 배, 알아서 기어
  • ▲ 김학성 강원대학교 로스쿨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뉴데일리
    ▲ 김학성 강원대학교 로스쿨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뉴데일리
    헌법은 제19조에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양심이란 선악에 대한 ‘진지한’ 윤리적 결정을 말한다.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의 판단에 있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진지한 마음의 소리를 말한다. 양심의 자유는 양심의 실현을 그 내용으로 하는데 양심실현은 통상 기존의 법질서와 충돌하게 된다. 부정선거의 폭로와 직무상 비밀의 누설금지나, 정치적 사찰폭로와 군무이탈 금지의 충돌이 그것이다. 공익신고는 국가사회의 커다란 부정과 부패를 방지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시켜 주지만, 신고자에 대한 엄청난 불이익이 주어질 수 있기에 이에 대한 철저한 보호가 요구된다. 이를 위한 것이 ‘공익신고자보호법’이다.      

    대한민국, 공익신고 덕에 구조개혁 이뤄

    대한민국은 중대한 공익신고 덕분에 엄청난 국가의 구조개혁을 이루어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조작의 공개가 신군부를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당겼고,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연구 조작 공개는 학계의 연구풍토를 개선할 수 있었다. 2007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불법 승계 사실의 공개는 재벌기업의 기업구조 개선에 커다란 경종을 울려주었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보유 사실이나 2000년 주한 미 군부대에서의 독극물 무단 방류도 공익신고로 가능했다. 이러한 공익신고나 내부고발 덕분에 영원히 감춰질 비리가 드러나게 되어 투명한 국가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 했다.     

    공익신고나 내부고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는 국가사회의 노력에 한계가 있고, 조직 내의 비리는 여럿이 통모하고 있어 그 부정이 외부에 쉽게 밝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부자의 양심실현은 조직 내 불법과 비리를 외부에 알림으로써 국가질서의 투명성을 앞당길 수 있다. 그러나 공익신고 등은 소속 조직으로부터 해고 등  기타 각종 불이익에 시달릴 수 있어, 이에 대한 ‘신속, 철저’한 구제책이 절실하다. 

    공익신고에 관한 문 정부의 내로남불을 보면, 민주당과 소속 의원들은, 지난 정부에서는 2016년 최순실 국정 논단 사건에서 최순실의 각종 범죄행위를 폭로한 고영태, 노승일을 의인으로 치켜세웠고,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이탄희 전 판사를 사법농단을 알린 주역이라고 했다. 

    장자연 사건에 대해서는 공익제보자(윤지오)에게 비행기 티켓은 물론 호텔 숙박도 제공했고, 경찰 경호를 통해 보호하면서 유난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윤지오는 그녀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고소를 당했고, 범법행위를 하고 외국으로 도주했다. 윤지오는 SNS을 통해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나 잡아보라’고 경찰을 조롱하는데도, 경찰은 수사를 뭉개고 있다.  

    추미애 아들의 군 휴가 특혜의혹을 폭로한 당직 사병에 대해서, 국민권익위는 공익신고가 아니라고 하다가 2개월 지나 공익제보자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추미애 전 장관은 제보자 인 당직 사병에 대해,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이웃집 아저씨(같은 중대가 아니면 이웃집 아저씨로 속칭함)라고 비아냥대면서, 이웃집 아저씨의 오인과 추측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또 공정은 근거 없는 ‘세 치 혀’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과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황희 의원은 공익제보자를 단독범이라고 범인 취급을 하고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부여당, 선출된 권력을 절대 선(善)으로 생각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공익제보에 대해서는 수사기밀의 유출 혐의로 고발해야 하며, 박범계 법무장관은 그 배후를 캐겠다고 한다. 부패행위를 신고했는데 고발로 맞서겠다니 당황스럽다. 공익신고의 취지를 깡그리 무시한 처사로, 법이 아니라 힘으로 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비위나 부패의 대상자가 같은 편이면 공익신고자로, 다른 편이면 나쁜 놈으로 본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하면, 적법절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눈에 거슬린다. 김학의 전 차관을 옹호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현행 헌법에 처음으로 도입된 적법절차(due process)는 ‘실체적 진실’이 조금 희생당하더라도 ‘절차적 정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으로, 법치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적법절차는 나쁜 놈이라도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쁜 놈이라고 나쁜 방법을 사용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이 강하게 요구하면 절차나 방법 등은 무시해서라도 충성하는 나쁜 버릇이 몸에 뱄다. 대통령의 탈원전 요구나, 조직의 명운을 건 재수사명령이 모든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어떠한 방법도 좋으니 원하는 결론을 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알아서 긴다. 그것도 너무 긴다. 공익신고자가 나오지 않는 국가사회가 되어야겠지만 아직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이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절실하다. 네 편, 내 편 갈라서는 안 된다. 지금의 정부 여당은 선출된 권력을 절대 선으로 생각하며, 정의를 독점하면서 너무 힘에 취해 있다보니 불법에 무감각하다. 너무 그러지 마라. 인생도 그렇지만 권력도 길게 보면 무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