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호 1억 수표, 한명숙 동생이 썼다" 판결 무시…'검찰 손보기 + 한명숙 재심' 노림수
  • ▲ 2017년 8월 23일 새벽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교도소 정문 앞에서 출소한 한명숙(사진) 전 국무총리. ⓒ정상윤 기자
    ▲ 2017년 8월 23일 새벽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교도소 정문 앞에서 출소한 한명숙(사진) 전 국무총리. ⓒ정상윤 기자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9억원을 건넨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옥중 비망록이 최근 한 언론에 다시 보도되면서 여권에서는 "한 전 총리의 재심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일 나온다. 

    한 전 대표는 2007년 3~9월 세 차례에 걸쳐 한 전 총리 측에 9억여 원의 정치자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여권에서는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검찰 진술을 번복한 <한만호 비망록>을 근거로 한 전 총리의 유죄판단을 뒤집으려는 움직임이 나온다. 

    하지만 <한만호 비망록>은 한 전 총리 사건 재판 1심에서 일찌감치 증거로 제출돼 5년 전 3심인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사법부의 판단을 이미 거쳤다. 논란이 이는 이유다.

    5년 전 사법부서 판단 끝난 <한만호 비망록> 다시 꺼내든 與

    21일 본지가 확보한 한명숙 전 총리와 한만호 전 대표의 1~3심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한만호 비망록>과 관련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판결문에는 비망록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 담겼다. 74쪽 분량의 한 전 총리 2심 판결문에는 △한 전 대표가 검찰 진술을 전면적으로 번복했어도 한 전 대표가 발행한 1억원권 수표를 한명숙 전 총리 동생이 사용한 사실 △한 전 대표가 한명숙 전 총리로부터 2억원을 반환받고 추가로 한 전 총리에게 3억원을 요구한 사실 △항소심 법정에서 한 진술 등을 보면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이 더 신빙성 있다고 판시돼 있다.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해 위증 혐의로 재판받던 한 전 대표의 1~3심 재판부도 비망록 내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 전 대표의 2심 판결문에는 "한 전 대표가 1심에서 (비망록 내용처럼) 조성자금을 공사 수주를 위한 로비자금 등으로 사용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그러나 정치자금(9억원)의 일부인 3억원 중 1억원 수표를 한 전 총리의 동생이 사용한 점 등 조성자금은 한 전 총리에게 공여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결국 한 전 총리는 2015년 8월20일 대법원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2년, 한만호 전 대표는2017년 5월17일 대법원에서 위증 혐의로 징역 2년을 각각 확정받았다. 한 전 대표의 위증 혐의는 1~3심 재판부가 모두 인정했다.  

    그런데도 여권은 이미 5년 전 사법부에서 판단이 끝난 사안을 뒤늦게 꺼내들며 '한명숙 살리기'를 본격화했다. 

    1~3심 판결 뒤집고... 민주당 차원에서 재심 추진하나

    20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김태년 원내대표, 박주민 최고위원 등이 <한만호 비망록>을 공식 거론했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추미애 법무부장관 등 일부 당·정 인사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뉴스타파가 <한만호 비망록>을 새로운 내용인 것처럼 보도하자 여권이 기다렸다는 듯 '행동'에 옮겼다는 지적이다. 

    특히 김 원내대표는 21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수사 동기, 이 사건 출발에 정치적 의도는 없는지 주목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당 차원에서 한 전 총리의 재심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명숙 살리기'보다 윤석열 조준?

    여권의 '한명숙 살리기'를 두고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법조계에는 "과거 한 전 총리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을 7월 출범 예정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여권의 타깃은 윤석열 검찰총장"이라며 "윤 총장 사단의 특수부 라인이 한 전 총리를 상대로 기획수사를 했고, 이 라인을 숙청해야 한다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공수처 이야기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추미애 장관까지 나선 것을 보면, '한명숙 살리기'가 근본 목적이 아니라 결국 한명숙을 계기로 윤 총장 등을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인도 "민사소송법 451조에 따라 한 전 총리 건은 재심 사유가 안 된다"며 "법원에 가면 각하될 텐데, 재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결국 '검찰 때리기'이자 한 전 총리의 명예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합당 "177석 거대여당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함"

    야당은 여권의 '한명숙 살리기'에 즉각 반발했다. 미래통합당은 21일 논평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재심청구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추진하지 않은 이유는 본인들도 재심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것 아닌가"라며 "비망록을 핑계로 한 전 총리를 되살리려는 것은 177석의 거대여당이 됐으니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의 발로"라고 비판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도 이날 당 최고위에서 "(이제는) 이미 재판에서 증거조사를 거친 자료를 가지고 사실관계를 외면하려고 하는데, 이 행태가 바로 사법농단"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