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담당 오덕식 판사, 교체 청원 확산에 '재판부 교체' 먼저 요청…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도
  • ▲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의 오덕식 부장판사가 교체됐다.  ⓒ정상윤 기자
    ▲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의 오덕식 부장판사가 교체됐다. ⓒ정상윤 기자
    청와대 국민청원글이 사법부의 재판부 교체에도 영향을 끼쳤다. 'n번방 관련자의 재판을 담당하는 오덕식 판사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청원글에 40만 명 이상이 동의하자 오 판사가 스스로 재판부 교체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국민청원으로 재판부가 교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 부장판사가 교체된 것은 지난달 30일이다. 법원은 이날 "국민청원 사건과 관련해 (n번방 관련자의) 담당 재판장인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가 사건을 처리함에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된다"며 "담당 재판장이 그 사유를 기재한 서면으로 재배당 요구를 해 이 사건을 박현숙 판사(형사22단독)로 재배당했다"고 밝혔다.

    오 부장판사는 성착취물 영상을 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박사방' 유료회원 출신인 이모(16) 군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의 재판을 맡았었다. 이군은 2019년 10월~2020년 2월 텔레그램에서 '태평양원정대'를 운영, 성착취물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 교체" 청원 게시 4일 만에 45만 이상 동의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 제14조 제4호에 따르면, 재판장이 배당된 사건을 처리하는 데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어서 그 사유를 서면에 기재해 재배당을 요구하면 재판부가 교체될 수 있다.

    오 판사가 먼저 재판부 교체를 요구한 이유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법원 측 역시 '개인 사정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는 방침이다. 법조계에서는 '청원글 때문에 재판부 교체를 요구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이번 재판부 교체 배경으로 '청와대 국민청원글'이 지목된다. 지난달 27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n번방 담당 판사 오덕식을 판사 자리에 반대, 자격 박탈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오 판사가 과거 성범죄 판결에서 벌금형·집행유예 정도의 판결을 내렸으니 n번방 사건에서 제외해달라'는 주장이었다. 이 글에는 31일 오후 3시30분 기준 42만5000여 명이 동의한 상황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청원글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재판부 교체에 청원글이 영향을 끼쳤다면, 청원글로 인해 재판부가 교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판결 이력에 교체 요구…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도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n번방 사건이 민감하기는 하지만, (청원글 때문에 재판부까지 교체된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런 선례를 만들면 여론재판 때마다 판사 성향을 알아내 바꿔달라고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어 "청원은 행정부나 입법부에 하는 것으로, 헌법상 독립이 보장된 재판부에 청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판사 출신 법조인 역시 "애초에 재판부 교체해달라는 청원글은 청와대가 사법부에 할 수 없는 일인데 재판부 교체를 요구하는 청원글이 올라왔다"며 "오 판사가 과거 내린 형량은 낮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법에 규정된 법관회피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청원글에 영향을 받아 재판부를 교체한다면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고도 설명했다. 

    판사 출신의 또 다른 법조인도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여론재판으로 흐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판사는 지난해 8월 고(故) 구하라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 씨에게 징역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최씨의 불법촬영 혐의는 무죄로, 폭행 등 나머지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오 판사는 춘천지방법원에 재직하던 시절인 2013년 6월19일 음란물 유포 혐의 30대 남성에게 벌금 300만원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