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캐나다·영국 언론·정보기관 "이란의 실수" 지목… 이란, 블랙박스 제출 거부
-
지난 8일 오전 6시14분(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국적 보잉 737 여객기가 추락했다. 여객기 추락 원인을 두고 미국과 캐나다는 “이란이 실수로 격추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비행기 추락 몇 시간 전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를 미사일 공격한 이란이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미군 폭격기가 보복하러 온 것으로 착각하고 미사일을 쏘았다는 설명이다.
사망자 이란·캐나다·우크라이나·스웨덴·아프가니스탄·영국·독일
추락한 여객기는 우크라이나국제항공(UIA) 소속 PS752편으로, 기종은 보잉 737-800이다. 여객기는 8일 오전 6시12분(현지시간)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이륙했다. 여객기는 2~3분 뒤 지상 2600m 상공에서 공항으로 회항하려다 갑자기 추락했다. 여객기에 탔던 176명(승객 167명, 승무원 9명)은 모두 사망했다.
여객기에는 이란인 83명 외에 캐나다인 63명, 우크라이나인 11명(승무원 포함), 스웨덴인 10명, 아프가니스탄인 4명, 독일인 3명, 영국인 3명이 타고 있었다. 이 중 138명은 테헤란을 경유해 우크라이나 키에프로 가던 중이었다.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이란과 캐나다다. 캐나다 국적 사망자 63명 가운데 대부분은 단체로 여행하던 학생들로 알려졌다.
여객기 추락 직후 이란 정부는 사고 소식을 알리며 “기체결함에 의한 사고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당사국의 사고 조사에 협력할 것”이라면서도 “현장에서 수거한 블랙박스는 미국으로 보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사고 현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날 오전, 이란을 시작으로 중동지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가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미군 폭격기인줄 알고 격추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란 당국은 이를 “비논리적 루머”라고 일축했다.하지만 트위터에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촬영한 미사일 잔해 사진이 올라왔다. 일각에서는 “이란이 2017년 러시아에서 도입한 ‘토르-1’ 이동식 지대공미사일로 여객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소식은 요르단 언론을 통해 9일(현지시간) 보도됐다.
캐나다 “이란이 실수로 격추했을 수도”…트럼프 “그랬을 듯”
같은 날 여객기 추락 당시를 찍은 영상이 SNS에 공개되면서 이란이 여객기를 격추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영상에는 지상에서 빠른 속도로 올라간 불빛이 여객기에 명중하면서 섬광과 함께 불길에 휩싸인 여객기 잔해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
CNN과 CNBC 등도 이날 각국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란 당국이 실수로 여객기를 격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이란의 여객기 격추설’을 거론했다.
- ▲ 아슈캄 파예드라는 사람이 올린 트위터 사진. 그는 "우크라이나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발견된 잔해가 이란이 가진 대공미사일 토르 M1과 같다고 주장했다. 현재 그의 트위터 계정은 정지됐다. ⓒ아슈칸 파예드 트위터 캡쳐.
CNN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올렉시프 다일로프 위원장은 이날 “이란 당국자와 만나 여객기가 추락할 수 있는 다양한 원인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며 “그 원인 가운데는 여객기가 대공미사일에 격추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포함돼 있다”는 성명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다일로프 위원장은 여객기 격추설 외에도 엔진에 새가 빨려 들어갔을 가능성, 드론 등 다른 비행체와 충돌했을 가능성 또는 비행기 내에 있던 폭발물이 터졌을 가능성도 함께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CNN은 전했다.
63명이 숨진 캐나다에서는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동맹국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관련 정보를 얻었다”며 여객기가 이란 미사일에 격추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CNBC가 전했다. 트뤼도 총리는 “이번 여객기 격추는 의도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NBC는 “미국·캐나다·영국 정부는 새로운 첩보에 근거해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이 쏜 미사일에 격추됐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정부와 트뤼도 총리의 발표 이후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시스템이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가 실수했을 수 있다”면서 “당시 여객기는 매우 위험한 지역을 비행했다. 아무튼 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CNBC는 “해당 여객기는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에 격추됐다는 첩보위성의 이미지가 이미 보고됐다”며 격추설에 무게를 더했다.
이란, 미국과 전면전 피했지만… 국제사회 제재 받을 듯
이란 정부는 10일 현재까지도 “우크라이나 여객기는 기체결함으로 추락했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블랙박스는 미국에 넘겨줄 수 없다”고 고집했다. 트뤼도 총리를 향해서는 “우리가 격추했다는 증거를 내놓으라”며 오히려 큰소리쳤다. -
하지만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은 점점 더 커져간다.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미사일 잔해가 발견됐다”는 SNS와 사진, 여객기 격추 영상이 이란 내부에서 국제사회로 퍼지면서 미국·캐나다·우크라이나 정부뿐 아니라 각국 언론도 이번 여객기 추락을 이란 혁명수비대의 소행으로 추정한다.
- ▲ 이란이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제 토르 M1 이동식 대공 미사일. ⓒ美글로벌 시큐리티 분석 리포트 화면캡쳐.
이란은 “미군 폭격기로 착각했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캐나다·영국·독일·스웨덴에는 이런 변명으로 용서받기가 어렵다. 더욱이 우크라이나는 2014년 7월 자국 공항에서 출발한 말레이시아 MH17편 여객기가 친러 분리주의 반군의 공격으로 격추된 경험이 있어 그냥 넘기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MH17편 여객기 추락 때는 범행 주체인 반군 대신 이들을 지원해준 러시아가 EU와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이런 선례로 보면, 이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