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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라노 엘사 드레이지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경기도문화의전당
'정원이 슬퍼한다. 차가운 빗방울이 꽃잎 속으로 스며든다. 다가올 그 마지막을 향해 여름은 조용히 몸부림친다. 황금빛 물방울이 잎사귀를 향해 높은 아카시아 나무 위에서 떨어진다. 여름은 놀라고 피곤한 표정으로 정원의 죽어가는 꿈을 향해 미소 짓는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 '9월'의 일부다. 헤르만 헤세의 시에 붙인 세 곡 중 하나로, 호른을 비롯한 목관악기들을 통해 죽음을 앞둔 스트라우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소프라노 엘사 드레이지(28)는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세계대전 이후 죽음에 관한 곡이에요. '봄'으로 시작해 '9월', '잠 들기 전에', 죽음으로 끝나는 '저녁노을'까지 4곡들은 서로 연결돼 있어요. 슈트라우스가 이 작품을 작곡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인생 여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엘사 드레이지가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경기필)과 함께 19일 오후 8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20일 오후 5시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마스터시리즈X '마시모 자네티 & 엘사 드레이지' 공연을 펼친다. 이번 협연은 아시아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드레이지는 "일반적으로 무대 서기 전 기대를 하지 않고 오는 편이에요. 음악적인 아이디어는 갖고 오지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로부터 영감과 놀라움을 얻길 원하거든요. 지휘자 자네티로부터 이미 경기필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라고 밝혔다.
이어 "프랑스와 덴마크 문화를 잘 알고 독일에 살고 있어요. 한국에 처음 왔는데, 영화가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재미있게 봤어요. 또 나무가 많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고층빌딩과 작은 빌딩이 섞여 있는 게 색달랐어요. 특히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어딜 가나 잘 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덧붙였다.
드레이지는 경기필 상임지휘자인 마시모 자네티(57)와 베를린 슈타츠오퍼 무대를 함께한 인연이 있다. 이미 2년 후의 스케줄까지 확정된 그는 2020년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다니엘 바렌보임과도 호흡을 맞춘다.
"자네티가 이야기 하길 경기필은 굉장히 젊고 놀랍다고 했어요. 음악적으로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그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저에게 그 특별함을 스스로 경험해보라고 설득해 한국에 오게 됐어요. 유럽의 스케줄이 많이 잡혀 조율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번 프로그램이 좋기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을 경험할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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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소프라노 엘사 드레이지.ⓒ경기도문화의전당
드레이지는 1부에서 슈트라우스 '아폴로 여사제의 노래'와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2부에서는 말러 교향곡 4번에서 4악장을 부른다. 1부가 죽음과 삶, 인간의 깊은 내면을 다뤘다면 2부는 죽음 이후 천상의 세계를 펼쳐낸다. 1부와 2부에서 확연히 다른 드레이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자네티와 자주 이메일과 SNS로 소통했어요. 저에게 무슨 노래를 부르고 싶냐고 물어서 리스트를 적어 보냈는데,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하자고 하니까 너무 좋아하셨어요. 몇 년 전 연주했는데 다시 한 번 연주할 기회를 찾고 있었대요. 새로운 레퍼토리도 좋지만 익숙한 것도 필요해 말러 교향곡은 제가 넣었어요. '아폴로 여사제 노래'는 자네티가 제안했고요."
파리 음악원을 졸업한 드레이지는 유럽에서 가장 돋보이는 라이징 스타다. 2015년 오슬로의 소냐 여왕 콩쿠르 2위, 2016년 도밍고 콩쿠르 최고 여성 가수 1위, 덴마크 코펜하겐 오페라 페스티벌 '올해의 젊은 오페라 가수상' 등을 수상했다. 2018년 워너뮤직을 통해 첫 솔로앨범을 발표했고, 현재 유럽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드레이지는 자신만의 장점에 대해 "무대에 서면 관객들에게 '제가 누구게요?'라고 묻기도 하고,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느낌으로 노래해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성악가도 있고, 연기를 잘하는 성악가도 있지만 제가 가진 장점이라면 무대에서 이야기를 잘 전달해서 지금의 유명세를 얻은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클래식 음악계는 닫힌 세계고 모든 대중이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저는 젊은층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고 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써요.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화려한 의상을 입지 않고 단순한 복장을 하고 평범한 말투를 내려고 해요. 노래할 때도 진정성 있게 최상의 목소리로 자연스러운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