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가법상 뇌물 혐의, 5일 첫 재판… 법조계 “대가성 불명확, 뇌물죄 성립 안돼”
  • ▲ 건설업자 등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학의(62·사법연수원 14기) 전 법무부 차관의 첫 재판이 오는 5일 오전 열린다.ⓒ정상윤 기자
    ▲ 건설업자 등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학의(62·사법연수원 14기) 전 법무부 차관의 첫 재판이 오는 5일 오전 열린다.ⓒ정상윤 기자
    건설업자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학의(62·사법연수원 14기) 전 법무부차관에 대한 재판이 5일 시작된다. 2013년 ‘별장 성접대’ 의혹이 불거진 뒤 6년 만이다.

    김 전 차관 재판의 핵심 쟁점은 ‘제3자 뇌물죄’라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른 혐의와 달리 공소시효가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3자 뇌물죄’ 성립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오는 5일 오전 10시30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가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한다. 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참석해야 할 의무가 없어, 김 전 차관은 불출석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재판에서는 주요 쟁점, 증인 신청 등 향후 심리계획을 정하게 된다.

    김 전 차관은 5월16일 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 이하 김학의 수사단)이 같은 달 13일 그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

    김학의 수사단은 지난달 4일 김 전 차관을 기소했다. 공소장에는 △2007~08년 건설업자 윤중천 씨로부터 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점(뇌물) △2008년 윤씨가 여성 A씨에게 준 가게 보증금 1억원을 돌려달라고 하자, 김 전 차관이 이에 개입해 윤씨가 1억원을 포기하게 만든 점(제3자 뇌물) △2008∼11년 사업가 최모 씨로부터 3000여 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점(뇌물) 등의 혐의가 적시됐다.

    제3자 뇌물죄… 법조계 “검찰 기소, 너무 창의적”

    법조계에선 김 전 차관의 유·무죄를 가를 핵심 쟁점은 ‘제3자 뇌물죄’라고 입을 모은다. 공소시효 때문이다. 현행법상 1억원 이상 뇌물을 받은 경우 공소시효는 15년이다. 김 전 차관의 요구에 따라 윤씨가 포기한 가게 보증금은 1억원이다. 검찰이 바로 이 ‘1억원’이 제3자 뇌물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김 전 차관의 유죄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는 ‘제3자 뇌물죄’ 적용에 대해 다소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김 전 차관이 윤씨에게 여성 A씨의 보증금 1억원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더라도 뇌물죄 성립 요건인 대가성이나 김 전 차관이 경제적 이익을 취했는지 등의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출신 A변호사는 “20년 넘게 법조계에 몸 담고 있지만, 제3자 뇌물죄를 이렇게 적용한 경우는 처음 본다”며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뇌물죄 적용이 너무 창의적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말했다. ‘보증금 포기 종용’이라는 김 전 차관의 혐의를 제3자 뇌물죄로 보기에는 법리적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다.

    A변호사는 ‘1억원’이라는 뇌물액도 공소시효 유지를 위한 ‘끼워맞추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3자 뇌물죄와 관련해) 오히려 김 전 차관이 윤중천한테 200만원을 주면서 ‘(일이 커지지 않게) 조용히 넘어가자’고 했다더라”며 “제3자 뇌물죄인지 법리적 문제가 있는데다, 설사 인정되더라도 200만원을 (윤씨에게) 줬다면 김 전 차관이 받았다는 돈에서 이 금액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200만원을 제외하면 뇌물액이 1억원 미만이 되기 때문에 공소시효 적용이 어렵다는 뜻이다.

    윤중천 채권 포기 여부도 쟁점

    A변호사는 윤씨가 여성 A씨에게 준 보증금 1억원에 대한 채권이 유효한지 여부도 주요 쟁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증금 1억원과 관련해)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되려면 김 전 차관이 결국 경제적 이익을 얻었어야 하지만 이도 불확실하고, (윤씨가 가지고 있었을 보증금 1억원에 대한) 채권도 윤씨가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지 않으냐”면서 “나중에 윤씨가 마음먹기에 따라 보증금 1억원에 대한 채권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는 점 등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다른 법조계 인사 역시 “나쁘게 보자면 공소시효를 먼저 보고 법리를 맞춘 것”이라며 “검찰 입장에서는 확실한 증거는  결국 진술증거일 텐데 법정에서는 이게 굉장히 약하다”고 말했다.

    반면 김 전 차관이 당시 검찰 고위직에 있었다는 점 등으로 인해 ‘묵시적 청탁’에 의한 제3자 뇌물죄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동서남북의 이율(56·연수원 25기) 변호사는 “(제3자 뇌물죄에서) 사건·직무관련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게 대법원 입장인데, 김 전 차관이 당시 검찰 고위직이었다는 사실 자체로 이런 관련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며 “부정한 청탁도 명시적인 것 말고, 묵시적 청탁도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과거 LH 모델하우스공사 수의계약을 둘러싼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제3자 뇌물죄를 인정한 적이 있는데, 이 사건과 김 전 차관 사건이 유사하다”며 “이를 토대로 보면 유죄 가능성도 있고 제3자 뇌물죄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