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인지장애로 신빙성 의문"…김백준 8차례 불출석, 증인신문 결국 불발
  • ▲ 이명박 전 대통령이 29일 서울고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본인의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면서 지지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이 29일 서울고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본인의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면서 지지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정상윤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검찰 진술에 대해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을지 판단해보겠다고 밝혔다.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은 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29일 항소심에서 김 전 기획관의 증인신문이 또 다시 불발되자 “형사소송법상 재판부에 부여된 모든 권한을 행사했다. 추가 기일은 잡지 않겠다”면서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에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을지, 부여한다면 증명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판단해보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원에서 소환장과 과태료 부과를 위해 집행관을 보냈지만 폐문부재(閉門不在·문이 닫히고 사람이 없음)로 송달불능됐다”면서 “감치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과태료 부과 결정이 송달돼야 하고, 증인신문기일에 소환장이 송달돼야 하며, 기일에 (증인이) 불출석해야 한다는 요건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지난 24일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김 전 기획관이 일곱 번째 불출석하자 구인영장을 재발부하고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검찰은 “구인영장을 서울 서초경찰서로 보냈으나 집행불능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전 기획관의 증인신문이 결국 불발되면서 그의 검찰 진술에 대한 신빙성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김 전 기획관이 구속 전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사실을 지적하며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 임의성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과 인지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된 상태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 상태에 놓일 경우 급격히 치매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지난 공판에서 “김 전 기획관은 지난해 1월17일 구속된 후 설 연휴 전까지 27일간, 단 이틀만 쉬고 25회의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이 중 22회는 12시간을 넘기거나 밤 12시가 넘는 장시간·심야·별건조사였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열린 김성호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며 김 전 국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김 전 기획관 자신의 재판에서도 변호인은 김 전 기획관의 인지능력이 저하돼 재판에 충실히 임하지 못한 점을 감안해 달라며 여러 차례 재판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변호인이 동석했고, 조사 중간중간 휴식시간을 줬다며 가혹수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이 구체적이며,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이를 특정하지 않았다며 김 전 수석이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기억에 의한 진술을 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검찰의 공소사실도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을 토대로 삼성 뇌물수수, 국정원 특활비 수수, 공직 임명 대가 금품 수수 등 혐의를 적용해 이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한편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이날 김 전 기획관에 대한 추가 증인신문기일을 잡지 않겠다는 재판부에 “재판부의 소송지휘는 따르겠으나 공판기록에 ‘김 전 기획관 본인 재판이 7월4일로 잡혀 있으니, 7월5일로 증인신문기일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변호인의 의견을 남겨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