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뇌물수수' 공소장 변경 허가… "재판부가 검찰 역할" 공정성 시비 불거져
  • ▲ 이명박 전 대통령. ⓒ박성원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박성원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서 재판부의 석명(釋明: 사실을 설명해 내용을 밝힘) 요구가 검찰의 공소장 변경으로 이어지면서 재판의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핵심 공소사실인 뇌물죄 적용이 어려워지자 재판부가 나서서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고, 검찰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가 검찰 역할을 한 셈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20일 항소심 공판에서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했다. 이번 공소장 변경은 지난 8일 재판부의 석명 요구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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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은 삼성이 미국의 대형 로펌 에이킨검프에 지급한 돈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자금지원이라고 보고 이 전 대통령을 직접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초기 항소심 재판장을 맡은 김인겸 부장판사는 “검찰의 수사기록 어디에도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지급한 돈이 이 전 대통령을 위한 자금지원이라는 증거가 없다”며 검찰에 이를 입증할 것을 요구했다.

    직접뇌물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돈을 받은 에이킨검프가 이 전 대통령의 사자(使者) 혹은 대리인이거나 돈이 입금된 에이킨검프의 계좌가 이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임이 입증돼야 한다. 검찰이 김 부장판사의 의문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법조계에서도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가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이 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2월14일 법원 인사에서 김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발령나면서 정준영 부장판사로 재판장이 변경됐고, 열흘 뒤에는 주심판사도 박성준 판사에서 송영승 판사로 변경됐다.

    정 부장판사는 지난 8일 공판에서 돌연 핵심 증인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증인신문을 철회하고 삼성 뇌물 혐의와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이 현금이 아닌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것이 아니냐”며 검찰에 석명을 요구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 10일 재판부의 석명 요구 논리를 그대로 인용해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하는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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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은 재판부의 요구의 의한 것”이라며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했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이날 공판에서 공소장 변경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변호인단은 “이학수가 현금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종전의 김백준의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김석한은 뇌물자금을 관리하는 피고인의 사자 또는 대리인이라는 종전의 검찰의 주장과도 양립 불가능하고 자기모순적인 것”이라며 공소장 변경에 반대했다.

    일각에서는 재판부의 석명이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기 위한 절차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재판부의 석명 요구가 석명권 범위와 한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대법원은 “당사자의 진술 내지 주장이 명확한 경우 그 사항은 석명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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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은 삼성 지원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현금지원이라는 견해를 명확히 해왔다. 핵심 증인인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도 검찰 조사에서 삼성의 자금지원은 남은 돈을 돌려받는 캐시백 형식이었다며 현금지원임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역시 “김 전 기획관이 쓰고 남은 돈을 돌려달라며 자신을 찾아왔다”고 진술해 현금지원에 신빙성을 더했다.

    한편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한 핵심 증인인 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총 여섯 차례 증인으로 소환됐으나 모두 출석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