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발생 4시간 후, 재난 방송하다 접어…"도시 불타는데 이념 방송" 여롯 빗발
  • KBS 1TV '오늘밤 김제동' 방송 화면 캡처. ⓒKBS
    ▲ KBS 1TV '오늘밤 김제동' 방송 화면 캡처. ⓒKBS
    재난주관방송사 KBS가 강원지역에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4시간 만에 재난방송을 시작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재난 국가위기경보 단계가 최상으로 올라가고 경쟁사들이 앞다퉈 재난방송을 할 시간에 정규 프로그램 방송을 고수, 공영방송사로서의 책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5일 방송계에 따르면 KBS 1TV는 4일 오후 10시53분쯤 뉴스특보로 강원도 고성의 산불 발생 소식을 다뤘다. 이날 오후 7시17분쯤 산불이 발생한 지 3시간40여 분이 지난 뒤였다.

    7~8분 만에 '뉴스특보' 마무리… 11시부터 정규방송

    그러나 KBS는 이날 오후 11시쯤 정규 프로그램인 '오늘밤 김제동'이 방영할 시각이 되자 속보를 마치고 다시 정규방송 체제로 돌아갔다. 같은 시각 이미 재난방송에 돌입한 MBC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날 MBC는 오후 11시7분부터 재난방송을 시작해 강원·영동MBC 기자와 전화 연결을 시도하는 등 현장상황을 중계하는 데 집중했다. 지역민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산불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리고 전국적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보도 전문 채널인 YTN과 연합뉴스TV는 더 빨리 재난방송을 시작했다. YTN은 같은 날 오후 10시부터 재난방송에 돌입했고, 연합뉴스TV는 이날 10시40분부터 스튜디오에 기상전문기자를 출연시켜 현 상황을 분석하고 속보를 계속 내보냈다.

    SBS는 '가로채널' 방영 도중 오후 11시52부터 6분간 뉴스특보를 방송한 뒤 다시 정규방송을 이어갔다. SBS가 재난방송체제로 돌입한 건 5일 새벽 12시46분부터였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르면 긴급재난 발생 시에는 ▲방송사가 중간확인 과정을 배제하고 즉시 재난방송을 실시하고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기존 자막과 다른 형식으로 긴급한 재난상황임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KBS, 뒤늦게 재난방송체제 돌입… '늑장대응' 빈축

    약 8분간 산불 소식을 전한 뒤 11시5분부터 '오늘밤 김제동'을 방영한 KBS는 평소보다 20분가량 이른 11시24분께 방송을 마무리짓고 11시25분부터 재난방송체제로 전환했다. SBS보다는 1시간 이상 빨랐지만 MBC나 다른 보도전문 채널보다는 한참 늦은 셈이었다.

    또 산림청은 4일 오후 10시 산불 재난 국가위기경보 단계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높이며 주위를 환기했지만, 그 시각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는 예정된 다큐멘터리를 내보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오늘밤 김제동'을 방영한 채널이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 전문인 1TV였다는 점이다. 2TV도 아닌 1TV에서 재난방송을 소홀히 하는 모습에 네티즌의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일부 네티즌은 “강원도 산불보다 김정은 찬양이 그렇게 중요한 거냐?? 꼭 그렇게 모두 불바다를 만들어야 속이 후련했냐??” “공영방송이 저렇게 손 놓고 있었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네” 같은 댓글을 관련 기사에 달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네티즌은 “KBS,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한다면서요? 정말 실망입니다” “정신 나간 것들” “국민주관방송이 아니라 좌빨갱이들의 온상이다. 시청료 거부합시다. 공영방송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X잡 것들만 모인 KBS” “대북주관 방송사!!!” “해체가 답이다. 세금 투입을 그만둬라!” 같은 댓글을 올리며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정작 국민을 위한 재난방송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시청료 거부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청자 항의 빗발쳐도 '오늘밤 김제동' 강행

    이 같은 비난 여론은 KBS 내부에서도 이어졌다. KBS공영노동조합(이하 공영노조·위원장 성창경)은 5일 배포한 성명에서 “고성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속초 시내까지 덮치면서 두 사람이 숨지고 수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이재민이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는데, 그 시간에 김제동 방송을 내보낸 KBS가 제 정신인지 묻고 싶다”고 일갈했다.

    공영노조는 “시내버스가 불타고, 콘도와 아파트 주민들이 긴급대피하는 등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혼란과 공포의 시간이었지만, KBS 1TV는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했고, 2TV는 예능 프로그램을 내보냈다”면서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지만 막무가내로 '오늘밤 김제동'은 밤 11시25분까지 이어졌고, 이 와중에 공정성이 의심되는 패널들이 출연해 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잘못했다느니 하는 정치편향성이 강한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공영노조는 “같은 시간 YTN과 MBC는 현장상황을 보여주면서 뉴스특보를 하고 있었지만, 재해주관방송사이자 국가기간방송 KBS는 대기업 외손녀가 마약을 하다가 잡혔고, 전 자유한국당 대표 자녀가 취업특혜 의혹이 있다는 등, 편파적 내용 시비가 많은 방송을 내보냈다”고 주장했다.

    “'11시 뉴스라인' 있었다면 신속대응했을 것”

    그러면서 "앞서 불이 난 후 'KBS 뉴스9'가 몇 개의 꼭지로 산불소식을 전하긴 했지만, KBS는 밤 10시부터 약 1시간 정도 이념성향이 강한 '시민의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며 "이 프로그램에서 월남전에서 한국군이 학살을 했다느니, 러시아와 프랑스의 혁명 등을 통해 시민사회가 열렸다는 식으로 '혁명'을 강조할 동안 산불이 계속 번져가는 상황이 이어지자 화가 난 시민들이 KBS에 집단으로 항의하는 소동도 이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도 KBS는 밤 10시53분에서 밤 11시5분 정도까지만 고성산불 속보를 내보낸 뒤 정규 프로그램인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한 것"이라며 "만약 '11시 뉴스라인'이 살아있었다면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공영노조는 "KBS가 지난해 500억대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 1~2 월 벌써 5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는데도 KBS 경영진은 방송도, 경영도 모두 내팽개치고 오로지 노사동체(勞使同體)로 자신들의 이념놀이에 빠져 있는 것 같다"면서 "과연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다 이념과 정파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인지 KBS는 대답하라"고 꾸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