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정보사 공작팀장 출신 황모·홍모 씨 구속… 2개국 첩보기관에 팔아 수 억원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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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개봉 영화 ‘미션 임파서블’ 1편은 美CIA 팀장급 비밀공작 요원이 자기 후배들을 배신하고 국가비밀공작국(NCS) 소속 해외 비밀공작 요원들의 암호명과 실명을 빼돌려, 수천만 달러를 받고 불법 무기거래상에게 팔려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 실제 벌여졌다.
- ▲ 영화 '미션 임파서블' 1편 가운데 주인공이 美CIA 기밀보관소에 침투해 '비밀공작요원(NOCs) 명단을 빼내는 장면. ⓒ미션 임파서블 관련 영상 캡쳐.
해외 비밀공작 요원 명단 팔아넘긴 국군 정보사 팀장
검찰이 국군 정보사령부 공작팀장 출신 황 모 씨와 홍 모 씨를 군사 기밀을 판매한 혐의로 구속 수사하고 있다고 SBS가 4일 보도했다. 이들은 해외에 파견된 비밀요원들의 명단을 해외 정보기관 두 곳에 팔았다고 한다.
검찰 수사 결과 구속된 황 씨는 정보사령부 공작팀장으로 근무하던 2013년부터 수 년 동안 부대에 보관하던 군사기밀 100여 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등의 수법으로 빼내, 전직 정보사령부 공작팀장이던 홍 씨에게 돈을 받고 넘겼다고 한다. 홍 씨는 황 씨에게 구입한 정보사령부 기밀을 A국가와 B국가 정보기관 요원들에게 수천만 원씩 받고 판매해, 총 수 억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홍 씨가 A국가 정보기관에 판 기밀 가운데는 해외에서 공작 중인 비밀요원 명단이 포함돼 있었다. 또 B국가 정보기관에는 정보사령부 요원들이 해외에 잠입해 파악한 각국 무기 정보 등을 팔았다고 한다. 자국의 비밀요원 명단을 외국에 판매한 일은, ‘반역죄’로 간주될 수 있는 중범죄다. 비밀공작 실무 책임자들의 이름과 인적정보가 드러난다는 것은 곧 한국 정보기관의 휴민트(HUMINT, 인간첩보) 체계가 19년만에 또 다시 무너진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정보원 해외요원이 전체 작전을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실제 비밀공작의 실무 책임자는 국군 정보사가 맡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휴민트 체계의 붕괴는 쉽게 복구가 안 된다. 1999년 '국정원 대학살'로 알려진 대북 휴민트 체계의 붕괴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경우 1978년 카터 대통령의 'CIA 대숙청'으로 휴민트가 망가진 뒤, 이를 복구하는데 거의 15년 이상이 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냉전 직후 휴민트 망을 대폭 축소했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서방국가들 또한 휴민트 체계 확충을 서두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군 정보사 간부가 외국 정보기관에 후배들을 팔아 먹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나온 것이다. -
- ▲ SBS에 따르면, 국군 정보사 공작팀장을 지냈던 황 모 씨와 홍 모 씨는 해외에서 비밀공작 중인 자신들의 후배 명단을 A국과 B국 정보기관에 팔아 넘겼다고 한다. ⓒSBS 관련보도 화면캡쳐.
英MI6 근무하며 400명의 동료들을 KGB에 넘겨이번 사건과 완전히 같지는 않으나 비슷한 사례로는, 1948년 한국에 와서 지부를 설립한 英 정보기관 MI6 요원 ‘조지 블레이크’ 케이스가 있다. ‘조지 블레이크’는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난 뒤 북한군에게 붙잡혀 만주로 이송됐다가 1953년 7월 휴전 이후에야 석방됐다. 그러나 사실 그는 舊소련 KGB의 잠입요원이었다.
‘조지 블레이크’는 1955년 베를린 지부에 배치된 뒤 美CIA와 英MI6가 동독과 소련을 상대로 추진 중인 공작과 관련한 비밀을 빼돌려 KGB에 보냈다. 그리고 서베를린에서 활동하는 CIA와 MI6 요원 400여 명의 명단을 KGB에 보냈다. 결국 동독에서 활동하던 美英 비밀공작요원들은 거의 모두 ‘무력화’, 즉 숨지거나 실종됐다. 살아남은 소수는 겨우 서방으로 탈출했다.
‘조지 블레이크’의 이적 행위는 1961년이 돼서야 드러났다. 영국 법정은 그에게 징역 42년 형을 선고했다. 당시로서는 최장의 유기징역이었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1966년 10월 탈옥한 뒤 숨어 지내다 소련으로 넘어가 여생을 편안히 지냈다.
이번에 발각된 황 씨와 홍 씨의 범죄는 해외에서 비밀공작을 벌이는 정보사 후배들의 목숨을 A국에 팔아넘긴 셈이 된다. SBS는 “군 당국은 해외 비밀공작 요원 명단이 유출된 뒤 이들이 위험하다고 판단, 급히 귀국시킨 것으로 알려졌다"며 "기밀을 넘겨받은 국가 외교관 1명은 본국으로 귀국했다”고 전했다.
SBS에 따르면, 군 당국은 정보사에서 기밀이 유출된 정황을 지난 4월에 파악한 뒤에도 한 달 가까이 수사를 하지 않다가 황 씨를 파면한 뒤에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유출된 기밀이 더 있는지, 군 당국이 왜 수사를 미뤘는지 등을 조사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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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대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美CIA와 英MI6 공작원 400여 명의 명단을 KGB에 넘겼던 이중간첩 '조지 블레이크'. 그는 1966년 10월 22일 탈옥한 뒤 소련으로 넘어가 여유로운 여생을 보냈다. ⓒ러시아 방송과의 인터뷰 장면 캡쳐.
비밀공작요원 명단 판매한 홍모·황모 씨, 어떤 처벌 받을까
SBS는 그러나 홍 씨와 황 씨로부터 비밀 공작 요원들의 명단을 사들인 A국이 어딘지는 밝히지 않았다. 국방부는 “민간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저희가 구체적으로 답변 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대답만 내놨다. 국방부는 5일 정례브리핑에서 “황 씨가 정보사 공작팀장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100여 건의 기밀을 빼낼 수 있었던 것 아니냐” “황 씨와 홍 씨에게 적용된 혐의가 무엇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 드리는 것이 적절치 않다”면서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검찰이 황 씨와 홍 씨를 수사해 법에 따라 기소한다고 해도, 실제 중형을 받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형법 제98조 ‘간첩에 관한 죄’는 북한 간첩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형법 제127조 ‘공무상 기밀누설죄(국가기밀누설죄)’의 경우에는 그 양형 기준이 높은 편이 아니다. 법무부는 2008년 ‘간첩죄’의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바꾸는 법령 개정을 추진한 바 있지만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 외에도 군사기밀보호법 제11조 ‘불법 탐지 및 수집’과 제12조 ‘누설’ 등에 따라 처벌하고 제13조 2항 ‘군사기밀 불법거래 처벌’, 제15조 ‘외국 또는 외국인을 위한 죄 가중처벌’ 조항을 적용해 가중 처벌을 한다고 해도, 최대 징역 20년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나 중국, 북한, 이란과 같은 독재국가는 물론 미국이나 영국, EU 각국이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선고하는 형량에 비해서도 한참 낮은 수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