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끔 저도 놀랍니다. 평양과 서울에서 대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고졸학력이 전부인 제가 지금까지 3종의 장편소설을 포함해 9권의 책과 150여 편의 신문(인터넷) 칼럼을 썼으니 말이죠. 아무래도 신이 주신 재능이라고 봅니다. 사진은 저의 신간 ‘나는 김일성이 고맙다!’ 표지. [사진 = 림일 작가]
    ▲ 가끔 저도 놀랍니다. 평양과 서울에서 대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고졸학력이 전부인 제가 지금까지 3종의 장편소설을 포함해 9권의 책과 150여 편의 신문(인터넷) 칼럼을 썼으니 말이죠. 아무래도 신이 주신 재능이라고 봅니다. 사진은 저의 신간 ‘나는 김일성이 고맙다!’ 표지. [사진 = 림일 작가]


    김정은 위원장! 오늘은 ‘태양절’(김일성 생일)이니 당신 조부 김일성 주석의 소리를 좀 하지요. 1912년 4월 15일 평양 태생인 김 주석은 14살부터 중국에서 청년시절을 보냈고 45년 9월 소련군 대위계급장을 달고 공화국 원산에 나타났죠.

    그해 10월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위대한 김일성 장군’으로 인민들 앞에 인사를 드렸고 일주일 후 북조선공산당(지금의 조선노동당)을 창당했습니다. 3년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립하여 수령(최고지도자)이 되었고 38살의 젊은 혈기에 한반도 통치야욕을 갖고 1950년 6월 동족비극의 상잔인 한국전쟁에 불을 지폈지요.

    휴전이후 김 주석은 공화국을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라는 괴상한 구호아래 사회주의체제로 만들었습니다. 개인의 땅을 국가에 귀속시켰고 공장기업소는 당 간부의 지도로 경영되는 국영업체로 만들었지요.

    그러니 ‘노동자 농민이 나라의 주인’이란 소리는 듣기나 좋을 뿐 인민들은 수령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분명 잘못된 제도이고 나쁜 수령이 틀림없는데 이를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그가 누구든 쥐도 새도 모르게 몰살되는 공화국이죠. 2천만 인민들은 여론, 묵비권, 재판, 변호사, 시위 등의 표현 자체를 모르고 살지요.

    1972년 김 주석의 생일 60돌에 즈음하여 평양의 만수대언덕에 세계 최대의 김일성 동상이 만들어졌고 이후로 공화국 전역에 우후죽순마냥 동상, 입상, 흉상 등을 포함해 3만 8천여 개의 수령조형물이 들어섰답니다.

    또한 전국 도처에 ‘김일성혁명사상연구실’(수령우상화 자료전시 및 학습실)이 수 천여 개 생겼지요. 1982년부터 평양에서 연례적으로 김 주석 칭송의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열리는데 여기에는 보통 30~40여개 나라에서 온 외국의 예술단, 공연단이 참가합니다. 거기에 드는 비용은 100% 공화국이 부담하는 형국이지요.

    1994년에 사망한 김일성 주석은 현재 2억 달러짜리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아들(김정일)과 함께 영면해 있습니다. 이렇게 나라의 돈 40%가 엉뚱하게 쓰이니 2천만 인민이 70여 년 멀건 죽을 먹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지요.

    이게 나라입니까? 그리고 ‘인민의 수령’입니까? 동서고금에 이런 나라 이런 지도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20년 전 평양을 박차고 나온 저랍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수령의 지독한 독재정치가 저를 그 사회에서 뛰쳐나가게 했지요. 평양에 두고 온 사랑하는 가족의 운명과 맞바꾼 나의 자유는 김일성 수령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화국에서 독재자 당신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여기 남조선에서 마음껏 누리게 해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 자유가치의 소중함을 항상 깊이 느끼며 이곳 서울에서 통일의 그날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답니다.

    참고로 저와 김일성 주석은 공통점이 있지요. 같은 평양 태생으로 저는 고졸, 김 주석은 중학교 중퇴로 같은 저학력출신이며 이름에 같은 ‘날 일(日)’자가 들어가 있죠. 자칭 ‘인민의 태양’인 김일성 주석은 분단시대의 잔인한 독재자였고,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통일을 염원하는 저는 탈북작가 림 일입니다.


    2017년 4월 15일 - 김일성 출생 105주년에 즈음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