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열악한데 대거 무단불참·고발 처리… 젊은 세대 불만 임계점
  • ▲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모습(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모습(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유전입소 무전거부(有錢入所 無錢拒否)'라는 말을 회자시키며 민원을 양산하고 있는 예비군 훈련 입소 제도의 문제점에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지난 2일부터 2016년도 예비군 훈련이 시작된 가운데, 성남예비군훈련장 등에서는 올해부터 단 1분이라도 지각할 경우 입소를 거부하고 있다. 게다가 훈련장 정문까지 왔더라도 무단불참으로 처리해, 반복될 경우 고발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악(改惡)돼 젊은 세대의 불만이 급증하는 상황이다.

    특히 대다수 예비군 훈련장이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대중교통을 환승해가며 훈련장에 와야 하는 '흙수저'들은 무더기로 무단불참 처리당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이를 세대 갈등과 계층 갈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사안으로 보고, 조만간 공론화를 통해 제도 개선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4·13 총선을 앞두고 젊은 유권자의 불만과 민원을 폭증시키고 있는 현행 예비군 훈련 입소 제도에 어떤 방향으로 수술이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대중교통 열악한 예비군훈련장 앞은 '흙수저' 민원의 온상

    올해 예비군 훈련이 시작된지 이틀째 되는 3일 오전 9시, 성남예비군훈련장 앞에는 이날도 예외없이 수십 명의 예비군 대원들이 모여 훈련장 통제 인원과 고성을 주고받고 있었다.

    9시 정각에서 2분 사이에 도착한 수십 명의 대원들이 훈련장 정문에서 입소를 거부당한 것이다. 한 예비군 대원은 "어젯밤을 새서 알바를 하고 2분 늦게 도착했다"고 통사정을 했으나 별무소용이었다.

    222번 시내버스는 분당구 각지를 돌아 이 예비군훈련장으로 직통하는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인데, 배차 간격은 50분에 달한다. 훈련장 어귀인 야탑역사거리와 분당테크노파크 앞에서 극심한 교통 정체를 겪은 이 버스가 9시 2분에 훈련장 입구에 도착했고, 수십 명의 대원들이 버스에서 내려 바삐 뛰어갔지만 이들 또한 단체로 입소 거부를 면치 못했다.

    55사단 170연대 3대대가 관할하는 성남예비군훈련장은 평소에도 대민(對民) 관계 관리에 무신경해 야탑3동과 율동공원 일대에서 잦은 민원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올해부터는 적절한 재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일률적으로 지각자에 대한 입소를 거부하고 있어 지역 주민의 불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민 불편 안중에도 없이 돌려보내… "월남 패망 지휘관 같다"

    같은 예비군훈련장이더라도 경기 안양에 소재한 ○○교장은 오전 9시 이후 처음 도착한 마을버스에서 내린 인원까지 입소를 받아주는 재량을 발휘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안양역에서 이 교장을 연결하는 대중교통수단은 이 마을버스 하나 뿐이기 때문에 내린 조치인데, 합리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날 성남예비군훈련장 입구에서 발길을 돌린 한 예비군 대원은 "지각을 한 예비군 대원들이 여전히 정문 근처에 몰려 있는데도 현장 통제 대원들이 '차나 빨리 내보내라'고 재촉해 하마터면 한 대원이 차에 치일 뻔 했다"며 "대대장이나 연대장, 사단장의 개념이 나라를 패망시킨 월남 지휘관들처럼 국민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성남예비군훈련장의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적인 입소 제도 운영으로 예비군 대원들이 대중교통 대신 자동차 이용으로 대거 발길을 돌리면서, 출근시간대를 전후해 이 지역 일대는 평소에 없던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고 있다. 이에 오랫동안 인내해 왔던 지역 상인들도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하는 모습이다.

    분당테크노파크 상가에 입주해 있는 한 상인은 "어쩐지 상가 앞 도로만 어제부터 극심하게 정체되고 매출은 주저앉았다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느냐"며 "훈련장 이전 운동을 벌이면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분개했다.

    ◆온·오프라인 민원 급증… 쇄도하는 불만에 정치권도 주목

    바뀐 예비군 훈련 입소 제도에 대한 불만은 벌써부터 온·오프라인 상에서 민원을 양산하고 있다.

    네이버 국민신문고에는 "비가 올 것으로 예상돼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섰으나, 예상치 못한 교통량의 증가로 9시 1분에 부대에 도착해 '귀가하라'는 말만 들었다"며 "회사의 눈치를 보며 오는 회사원들이나, 학업을 포기하고 오는 학생들은 국가를 위해 12시간 또는 24시간까지 소비하며 노력하는데, 1분의 시간 때문에 집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가혹하다"는 민원이 올라왔다.

    또다른 민원에서는 "대도시에서 급변하는 (대중)교통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인거라 억울한점이 많다"며 "누구들처럼 돈 많으면 자가용 끌고 택시 타고 다니겠지만 그럴 사정도 안 된다"고, 예비군 훈련에서마저 '흙수저'는 입소를 거부당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극히 나쁜 성남예비군훈련장 앞에서도 연일 예비군 대원들에 의해 이같은 현장 민원이 제기되고 있으나, 55사단장이나 170연대장, 또 3대대장은 눈 멀고 귀 막은 것처럼 민원에는 하등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는 게 예비군 대원들의 한결같은 불만이다. 유사시 민군이 혼연일체가 돼 적을 막아야 하는 향토사단의 지휘관으로서는 함량미달이라는 지적이다.

    ◆與 국방위원들 "예비군훈련장 접근성 나빠… 국민 불만 일리 있어"

    이처럼 젊은 세대의 불만이 점증하고 나아가 이것이 계층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이 보이자, 4·13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이 이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고 움직일 태세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육군 교육사령관을 지낸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3일 본지와 통화에서 "예비군 훈련장은 접근이 어려운 곳에 있기 때문에, 대원들은 충분히 그런 불만을 가질 수 있다"며 "사람마다 애로사항이 다 있을텐데, 편의 위주로 과도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역시 국회 국방위원인 같은 당의 홍철호 의원도 "국민들은 생업을 제쳐놓고 훈련을 받으러 가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으며 "경제 등 여러 가지 상황이 안 좋아서 가뜩이나 젊은 세대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4년까지는 예비군 훈련을 지각입소할 경우, 9시 30분까지는 입소를 허용하되 지각확인서와 신분증을 받고 대신 훈련 종료 후 1시간 가량 보충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 제도가 운용됐다. 홍철호 의원은 "기존 제도에도 (지각입소자에 대한) 페널티가 있었던 것"이라며 "그렇게 해서 예비군 훈련 수행에 엄청난 차질이 오는 것이 아니라면 융통성을 발휘해주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野 안보전문가 백군기 "제도, 국민 불편하지 않게 해야"

    4성 장군 출신으로 국회 국방위원이며 야권 최고의 안보 전문가로 손꼽히는 더불어민주당 백군기 의원은 "아무리 군대는 '칼'이라고 하지만, 모든 제도는 국민이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며 "지금 우리 도심권 지역에 사는 국민들은 상황에 따라서 (예비군 훈련장까지) 10~20분 늦고 빠르고 하는 것은 다반사"라고 국민의 불편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시간은 딱 9시로 하되 조금 늦은 사람들은 편제를 달리 해서 1시간 정도 보충 교육을 하는 게 좋았던 듯 싶다"며 "충분히 홍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집) 통지서를 안 읽어보고 온 국민들은 (돌아가게 되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라고 말했다.

    군(軍) 출신의 한 의원은 이처럼 제도가 개악된 배경에 대해 "군인들도 훈련이 끝나면 훈련장비 등을 정비하고 퇴근해야 하는데, 소수의 인원이라도 지각 때문에 보충교육을 받고 있으면 나갈 수가 없으니 1시간 이상 퇴근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는가"라며 "부대의 그러한 애로 사항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의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국민의 상식에 맞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인데, 이렇게 민원이 줄기차게 제기되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회의 등을 통해 공론화해서 제도 개선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