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벽두부터 북한의 4차 핵실험이 대한민국을 공포와 증오의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2천 만 대다수가 멀건 죽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형국에 전체 인민들 1년분 식량구입가격으로 핵실험을 감행하였으니 그게 어떻게 정상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조상(김일성·김정일)들에 이어서 끔찍한 핵무기로 민족을 위협하고 인민들에게 충성강요를 하는 잔인한 독재자 김정은이어서, 하여 굶주림이 계속되는 그 곳을 뛰쳐나온 3만 탈북민들이다. 누구보다 북한을 잘 알고 고향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탈북민들은 분명 통일에 기여할 귀중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그런 탈북민들의 대한민국에 올바른 정착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남북하나재단’(옛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다.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온 탈북민들의 성공적 정착과 생활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법률에 따라 2010년 11월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온 몸을 움츠릴 정도의 추운 날씨인 지난 1월 12일, 사전 약속한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하려고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모 빌딩에 있는 ‘남북하나재단’을 찾았다. 기존에 있던 여의도에서 이사한지 한 달도 안 된 시기였다. 로비에서 기다린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5층에 있는 이사장 집무실에 들어섰다. 

    기자가 고개를 숙이며 “늦게나마 취임 축하드립니다. 이사장님!” 하자 손광주 이사장이 “고마워요. 열심히 할게요” 라고 답한다. 개인적으로 손 이사장과는 6~7년 지기이며 그동안 북한관련 여러 세미나와 행사장에서 자주 만났다.

  • ▲ 남북하나재단 손광주 이사장은 자신의 꿈은 목숨 걸고 자유대한민국을 찾아온 3만 탈북민들을 이 땅에 바르게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분명 통일의 시험대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 림일 기자]
    ▲ 남북하나재단 손광주 이사장은 자신의 꿈은 목숨 걸고 자유대한민국을 찾아온 3만 탈북민들을 이 땅에 바르게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분명 통일의 시험대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 림일 기자]


         
    - 고향이 어딘가?

    1957년 10월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 학력과 경력을 요약하면

    1981년 서울에 있는 고려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였고 2000부터 2년간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이후 1985년부터 11년간 동아일보사 기자로 근무하였고 1999년부터 12년간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신 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이며 조선노동당 국제비서였던 황장엽 선생의 대외활동 및 연구담당비서로 일하였다.

    - 황장엽 선생 연구비서는 어떤 자리인가?

    생전에 황장엽 선생은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이었다. 내가 5년간 그 연구소 이념연구센터장을 맡았었다. 황 선생은 강연문, 토론문, 참고서 등 각종 원고를 많이 쓰셨는데 그 원고를 내가 제일 먼저 봤다. 그것을 발취하고 정리하며 때로는 강좌에서 토론할 내용을 찾아 선생님께 보고 드리기도 하였다.

    참고로 그 일은 황장엽 선생이 나에게 직접 요청하셔서 맡았다. 나는 선생님의 그 요청을 받고 “영광입니다. 최선을 다해 보좌해드리겠습니다”고 답변했다.  

    - 황 선생 서거 이후는 어떤 일을 하였는가?

    10여 년 전부터 겸직으로 몸담고 있던 데일리NK에서 편집국장을 거쳐 통일전략연구소장 을 지녔다. 이후 경기개발연구원 통일동북아연구센터 연구위원, 통일부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민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 탈북민과 인연은 언제부터 인가?

    1996년부터이다. 내가 처음으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던 탈북민은 김일성 처가 자녀들의 개인교사였던 평양김형직사범대학 교수출신인 김현식 선생이다. 198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교환교수로 나왔다가 심경변화가 생겨 1992년 남한으로 망명해온 엘리트이다. 그는 서울에서 10여 년간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은퇴 후 미국에 가서 선교사역을 한다. 

  • ▲ 손광주 이사장의 집무실에는 고 황장엽 선생 관련 도서가 많이 꽂혀 있었다. 그는 오늘의 손광주가 있기까지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황장엽 선생의 지침과 도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사진 = 림일 기자]
    ▲ 손광주 이사장의 집무실에는 고 황장엽 선생 관련 도서가 많이 꽂혀 있었다. 그는 오늘의 손광주가 있기까지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황장엽 선생의 지침과 도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사진 = 림일 기자]



    - 공직은 처음인줄 안다.

    그렇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열의가 높은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공공기관의 수장으로 임명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 나의 가장 큰 임무는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돕는 것이다.
                                                       
    - 손 이사장만의 숙제가 있다면

    재단 재정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국가재정집행의 기본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탈북민이 처해있는 특수한 상황도 분명하게 있다. 법과 원칙, 탈북민 특수성,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겸비하는 사업집행기준을 만들고 기본적인 업무성과를 이룩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 일부 탈북단체장들이 재단 이사·직원 50%를 탈북민으로 바꾸자고 한다.

    재단 임원진은 법률상 통일부 장관이 임명한다. 따라서 탈북민출신 이사 선임은 정부의 권한이다. 현재 재단 직원 20%가 탈북민이다. 또한 매년 채용하는 인턴의 경우 절반이상을 탈북민으로 한다. 이는 정부산하 공공기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북한은 북한사람이 잘 알 듯 남한은 남한사람이 잘 안다. 탈북민을 남한에 정착시키려면 남한을 잘 아는 사람이 안내해야 한다.

    - 전국의 하나센터장 자리는 남한사람 철밥통이란 말이 있다.

    일부 탈북민들이 하나센터가 재단 산하인줄 아는데 잘못된 것이다. 정확히는 통일부 산하이며 재단과는 별개 기관이다. 재단에서는 하나센터에 전문상담사를 파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센터장의 임용은 각 하나센터의 고유권한으로 외부에서 강제할 수 없다.

    - 재단에 대한 일부 탈북단체장들의 인식이 안 좋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다. 재단에 다소 부정인식이 있는 탈북단체가 있다면 대부분 소통부족에 따른 오해일 것이라고 본다. 재단이 탈북민의 요구와 목소리를 경청하며 제도적으로 지원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한다.

    작년 8월 취임 후 10여 차례에 걸쳐 탈북단체를 비롯한 각 분야별 탈북민 70여명과 만났다. 그들과 커뮤니티 발전방향에 대해 신중히 논의하였다.

  • ▲ 올해로 북한연구 및 인권운동을 한지 20년이 된다는 손광주 이사장이다. 기자가 서울에 온지 20년이라고 하니 “그러면 나와 림일 작가는 20년 동지이네요. 통일의 길 함께 갑시다”며 미소를 보였다.  [사진 = 림일 기자]
    ▲ 올해로 북한연구 및 인권운동을 한지 20년이 된다는 손광주 이사장이다. 기자가 서울에 온지 20년이라고 하니 “그러면 나와 림일 작가는 20년 동지이네요. 통일의 길 함께 갑시다”며 미소를 보였다. [사진 = 림일 기자]



    - 지난해 재단의 성과 중 몇 개를 들면

    워크넷(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취업사이트)을 도입하였고 하나원, 하나센터 등과 업무협약에 따라 1,244명의 탈북민을 취업시켰다. 또한 탈북민 인식개선과 탈북민정착에 대한 국민동참 유도를 위해 탈북민 ‘착한(着韓)봉사단’을 12개 지정하였다. 그리고 온라인 소액기부 이벤트인 ‘착한(着韓)상자’ 프로젝트를 방송과 연계하여 진행하였다.

    - 새해 재단이 중점적으로 할 사업은 뭔가?

    탈북민 인식개선을 위해 ‘받는 탈북민’에서 ‘주는 탈북민’으로의 이미지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이를 위해 ‘탈북민자원봉사단’ 활성화 및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겠다. 탈북민 자녀들 중 한국어를 잘 못하는 제3국 출생 청소년이 많다. 이들에 대한 집중교육 등에 외국어교사를 지원하려고 한다.

    - 재단이 여의도에서 마포로 이전했다.

    기존 사용하던 여의도청사 임대계약이 만료되었고 건물주 사정에 의해 계약연장이 불가능하여 이전하였다. 보다시피 독립청사는 아니며 이 빌딩 3개 층을 임차하여 사용 중이다. 전체 공간은 여의도청사보다 좁아졌으나 콜센터와 취업지원센터 통합배치, 사업부서의 동일층 배치 등을 통해 공간효율성을 높였다.

    무엇보다 이번 청사이전에서 신경을 쓴 것은 탈북민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자는데 중점을 두었다. 사무실 방문 시 지하철로 인한 접근성이 상당히 좋다. 

    - 손 이사장에게 탈북민은 뭔가?

    나는 대략적으로 10년간 언론인 생활, 10년간 북한연구가 생활 그리고 10년간 북한인권시민운동을 하였다. 자그마치 20년간 북한, 통일, 탈북민 관련 일을 하였다. 나에게 탈북민은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손잡은 동지이며 하나이다.

    - 취미생활과 주량, 애창곡은?

    등산이다. 휴일이면 가급적 산에 간다. 등산길에서는 여러 사람과 깊이 대화할 수 있고 또 나 자신과 대화할 만한 장소로 산이 최고다. 주량은 소주 1병이고 담배는 안 피운다. 애창곡은 이선희의 ‘인연’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소설 황장엽’ 작가인 림 기자가 잘 알겠지만 “동지는 뜻을 같이 나누는 사람”이다. 황장엽 선생은 생전에 나를 꼭 ‘손광주 동지’라고 불렀다.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실은 언제나 열려있다. 건실하고 바른 탈북민정착과 관련한 좋은 아이디어, 조언 그리고 딱한 애로사항 등을 허심탄회하게 듣겠다.

    아울러 3만 탈북민들에게 “대한민국은 노력의 대가가 있는 자본주의사회이다. 자기하는 것만큼의 충분한 결과물이 있으니 조금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도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림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