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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데일리 주요 뉴스] 2014년 7월24일

[기자수첩] 전교조 명단 공개가 죄인가요?

입력 2014-07-24 10:27 수정 2014-07-24 10:52

[만평] 격서성동? 권은희 있음에..

누가 나오래?

"출마해서는 안 되는 사람...아니 출마해야"


▲ 뉴데일리 만평ⓒ류동길

유병언 시체 사건이 아니라 경찰, 검찰 시체 사건이다

死병언이 生검경의 따귀를


▲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뉴데일리

 유병언 시체 사건이 아니라 경찰, 검찰 시체 사건이다. 
어찌 그리 무심할 수가 있는가? 
시신 곁에 놓여있는 세모 스쿠알렌만 보아도, 
장소가 유병언의 매실농장 바로 옆이라는 점만 보아도, 
수사당국이라면 일단 의심을 하고 보는 게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지역경찰은 그런 상식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천은 때마침 유병언 잡겠다고 온통 난리가 난 곳이었다. 
유병언, 유병언, 유병언 하면서... 
지역경찰이라면 마땅히 “숲속에서 시신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으면 대뜸
 “어? 그거 유병언 시체 아냐?” 할 정도로, 노이로제에 걸리다시피 했어야 말이 된다. 
그런데 노이로제는 고사하고 이건 아예 “마아안고강산...”이었다. 
팔자 한 번 오뉴월 엿가락처럼 기이이일게 늘어진 것이다. 
 
 검사가 건성건성 지나친 것에 대해서도 지역검찰은 “그게 어때서?”라는 식이다.
제 식구 감싸기다. 도무지 신문 방송만 요란하게 떠든 것이지, 
막상 지역 경찰, 검찰은 무릉도원(武陵桃源) 별유천지(別有天地)에서 몽로오~옹하게 따로 놀고 있었던 셈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땅에 있었던 게 아니라 저 하늘 위 구름 속에 둥 둥 떠있었다. 
조타아.
 
 이 나라에 영(令)이 서 있는가? 이 나라는 통일국가인가, 연방국가인가? 
통일국가라면 어떻게 지역 공권력 종사자들이 그토록 
“우린 관심 없어...” 하는 식으로 따로 놀 수가 있는가?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이 한심한 국가현실, 공권력 현실에 대해 뭐라고 반응할 작정인가? 
어디 대답 좀 해보시라. 국가개조, 국가혁신 운운하는 그 화려한 수사학이 무색해질 지경 아닌가?
 
 이번 사건은 그래서, 경찰 검찰 시체 사건이지, 유병언 시체 사건이 아니다. 
이름하여 “死병언(죽은 유병언이)이 生검경(살아있는 검찰, 경찰)의 따귀를 갈긴 꼴"이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화제의 신간> 김용삼 지음 [이승만과 네이션 빌딩]
시진핑과 아베는 이승만에게 감사의 절을 하라! 왜?

세계 패권경쟁시대 동북아에는 1894년 청일전쟁부터 6차례의 전쟁이 잇따라 일어났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등 5개는 일본이 주동한 전쟁이고, 6.25는 소련-중공-북한등 공산집단이 한국을 침략한 냉전의 개막전이었다. 1953년 6.25전쟁의 휴전후 오늘날까지 60여년간 이 지역에선 전쟁이 사라졌고,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일본, 중국, 한국은 세계10대권 강국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승만에 감사해야 한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미국과 싸워가며 [한미 방위조약]을 맺은 결과, 주한미군이 버텨줌으로써 일본도 중국도 러시아도 전쟁 걱정 없이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들 나라들은 이제라도 이승만에게 공로훈장을 선물해야 마땅하다.” 
이번에 새 책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을 내놓은 저자 김용삼(金容三)의 말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세 가지를 교육해야 한다. 건국의 역사와 이념, 헌법의 정체성, 민주시민이 갖춰야할 덕목”이라며,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건국하고 지켜냈는지를 새로운 각도로 흥미롭게 집중 조명해냈다.

▲ 1953년 8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는 변영태 외무장과과 덜레스 미국무장관. 뒤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지켜보고 서있다.



▶국가간 조약이 60년 이상 지속되는 예는 극히 드물다. 이것은 국제법 박사 이승만의 뛰어난  통찰력과 외교력과 심모원려(深謀遠慮)가 만들어놓은 역사상 최고의 동맹장치들 덕분이다.
베트남을 보라, 남북베트남 평화조약을 맺어주고 미군이 철수하자 금방 공산화되고 말았다.
이승만은 한미방위조약을 서명한 뒤 선언했다. “이 조약으로 우리 후손들은 자자손손 번영을 이루리라. 공산 침략을 막아줄 뿐 아니라, 일본도 침략의 마수를 뻗지 못하리라.”

 6.25남침을 국토통일의 기회로 역전시키고자 독립운동가의 평생 사명을 완성하려는 이승만의 민족해방전쟁,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중국군이 한명이라도 북한에 남아있는 휴전은 결사 반대한다”....중국까지 참전하여 휴전하려는 미국을 붙잡고 ‘반공포로 석방’으로 ‘자살공격’까지 감행한 이승만의 외교전쟁은 불굴의 자유민주정신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반대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 내기 위해 일방적으로 석방한 반공포로들이 이승만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 한미동맹 조약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은 물론 한국이다. 
쿠데타로 유신혁명으로 산업화-민주화의 기적을 이뤄낸 박정희야 말로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신처럼 모셔도 부족할 것이다. 
특히 전쟁 중에도 개헌하여 지방자치 선거까지 실시한 이승만의 ‘대통령 직선제’는
 “군사독재 반대” 투쟁을 벌여온 민주화 운동의 목표 아니던가. 
386세력도 이승만에게 ‘독재자’의 허물을 벗겨내고 감사장을 올려야 마땅하다.

▶책의 부제 <대한민국의 건국은 기적이었다>와 같이 이승만의 건국투쟁사가 기적처럼 느껴져 온다. 그는 늘 혼자였다. 레닌의 공산쿠데타 직후 소련의 식민독재를 깨달은 것도 혼자였고, 2차대전 후 스탈린의 영토야욕과 싸운 것도 혼자였다. 김구처럼 김일성과 손잡고 덩달아 ‘명색 좋은 통일정부안’에 타협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비극이다. 

▲ 1948년 4월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에 간 김구가 김일성을 따라 들어가고 있다. 스탈린과 김일성에 악용당한 애국자.


왜 이승만이 일찍부터 반공주의자가 되었는지, 
“공산주의는 인간 파멸의 전체주의”임을 전세계에 외치며 
홀로 싸운 이승만의 반공철학이 최후승리를 거둔 현대사의 드라마!
시진핑과 악수한 박근혜, 일본의 재무장, 흔들리는 한미동맹, 
불안과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읽었으면 좋은 책이다.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 불앤피플 발행, 02-2277-0220>

[이승만포럼] 김국후 전 중앙일보 부국장

북한 탄생 3요소, 스탈린, 카레이스키, 김일성

▲ 김국후 전 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1863년 미국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노예해방을 선언했고 인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남북전쟁이 일어난 해다. 같은 해, 양반과 상놈이 존재하던 가난한 나라 '조선'의 한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연해주로 이주했다. 철종 14년 연해주의 척박한 갈대밭을 개간해 쌀 농사를 시작한 한인들은 연해주를 러시아 최고 곡창지대로 일궜다. 
연해주는 시베리아의 동남단 지역으로 원래는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연해주는 1858년의 청나라와 러시아의 공동관리지가 됐고 60년 '북경조약'으로 러시아의 땅이 됐다.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은 코리안(Korean)의 러시아어 '카레이스키'라고 불렸다. 

'카레이스키'는 1937년 연해주에 정착한 지 74년 만에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다. 당시 공산주의 국가 소비에트 연방(소련)을 이끌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1934년부터 '카레이스키'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카레이스키' 사이에 일본의 스파이가 있다는 이유다. 당시 소련과 적대적인 국가였던 일본의 스파이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3만명에 가까운 '카레이스키'를 죽였다. 갈대밭을 개간해 비옥한 토지로 만든 '카레이스키'. 이들의 연해주는 협동농장으로 바꿨고 국유지가 됐다. 그리고 스탈린은 이곳에 살던 '카레이스키'를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으로 이주시켰다. 18만명의 '카레이스키'는 1937년 8월부터 12월까지 중앙아시아로 이주했고 다시 개간하고 농사를 지었다. 


▲ 이승만포럼이 열리는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 전경ⓒ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사)건국이념보급회
(사무총장 김효선)가 주최하고 뉴데일리(회장 인보길)와 대한민국사랑회(회장 김길자)가 후원하는 '이승만포럼'이 17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 아펜셀러홀에서 그 41번째 포럼을 열었다. 이날 김국후 전 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이 발표자로 나섰다. 김 부국장은 '카레이스키'의 역사를 밝혀낸 언론인으로 1991년 봄부터 1993년 가을까지 중앙일보 북한·통일부 차장으로 공산주의 '숙주' 소련(소비에트 연방)을 방문했다. 

김국후 부국장은 1991년부터 3년간 해방 후 북한정권을 만든 소련군정 고위 정치장교, 정보기관 간부, 외교관 등 100 여명을 직접 만나 북한정권의 태생에 대한 사실들을 밝혔고 이를 중앙일보에 연재했다. 김국후 부국장은 이 취재를 바탕으로 해방 후 북한을 만들었던 소련군정과 이들의 눈과 귀, 손과 발 역할을 한 사람들이 '카레이스키' 즉 1863년 연해주로 이민간 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된 한인들의 후손이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날 김 부국장은 지난해 자신이 낸 '평양의 카레이스키 엘리트들'이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소련 고려인 엘리트들의 '슬픈 역사'에 주목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레닌과 그를 이은 이오시프 스탈린은 세계공산혁명을 주도했다. 소비에트 연방(소련)이라는 공산화 국가를 건설한 이들의 목표는 세계공산화였다. 세계공산화로 가는 길에 한반도도 포함됐다. 미소공동위원회가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라고 주장해왔던 소련의 주장은 1945년 9월 소련의 스탈린이 북한에 보낸 비밀지령이 공개되면서 거짓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946년 3월20일부터 1947년 10월21일까지 개최된 미국과 소련의 회의(미소공동위원회)가 있기 전 이미 소련의 스탈린은 북한의 공산화 전략을 짰다. 

1945년 8월6일 소련은 평양에 보낼 '카레이스키' 500명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카레이스키'는 절대 권력 스탈린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소련군정을 대신해 평양의 한인들과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카레이스키'는 비록 연해주와 중앙아시아의 먼 타국에서 세대를 이어 살았지만  한민족의 정신을 잃지 않고 살았다. 스탈린의 눈에 평양을 지배하는 데 '카레이스키'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스탈린은 1945년 8월부터 1947년 12월까지 공산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중앙아시아에서 모집한 '카레이스키' 500명을 평양에 보냈다. 스탈린은 공산주의 이념을 전파할 '글쟁이' 엘리트를 가장 먼저 보냈다. 이들 엘리트들은 김일성 우상화 작업은 물론 공산주의 이념을 전파하는데 앞장섰다. 이들 '글쟁이' 엘리트가 평양에 신문과 방송을 만들었고 매체를 통해 대중 선동을 했다. 그 후 김일성을 비롯한 군인들, 국가를 건설할 기술관료들이 차차 평양에 자리를 잡았다. 소련군의 신분으로 들어온 500 여명의 '카레이스키'는 소련군정의 이야기를 번역해 알리고 평양이 소련의 위성국이 되는데 역할을 했다. 

1945년 10월14일, 33세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왔다. 스탈린이 보낸 '카레이스키' 엘리트가 이미 김일성에 대한 영웅화 작업을 마친 상태였다. 김일성은 평양에 오기 전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에게 1박2일 면접을 받고 간택을 받았다. 방송과 신문을 만든 '카레이스키' 엘리트들은 김일성이 평양에 온 이후에는 김일성에 대한 기사를 집중 보도했다. 

1946년 2월16일 34세의 김일성은 사실상의 북한 정부인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소련군정은 해방 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反공산주의 사상가 이승만 박사가 서울에 입국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워싱턴에서 전해 듣고 서둘러 김일성을 지도자로 내세웠다. 이는 소련군정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소련은 강력한 김일성 우상화 작업을 서두르지 않으면 이승만의 영향력으로 한반도 공산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승만은 서울에서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강력한 반공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1950년대 6.25 전쟁을 일으킨 소련은 내부적으로 자신들이 내세운 김일성을 위해 그의 정치적 적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평양에서 공산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던 '카레이스키' 500인 중 리더였던 허가이는 1951년 11월 의문의 죽을 당했다. 북한 정부는 허가이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정황상 타살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박헌영도 1953년 감금됐고 1955년 숙청됐다. 스탈린은 자신이 세운 김일성의 입지를 뒤흔드는 정치적 적인 허가이와 박헌영을 사라지게 만들면서 김일성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또 스탈린은 북한을 만든 '카레이스키'도 소련으로 복귀를 명했다.  


▲ 김국후 전 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김국후 부국장은 포럼의 마지막에 자신의 연구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아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겼다. "한민족이 연해주로 이주하고 중앙아시아에 자리를 잡은 역사가 벌써 150년 이상 지났다. 그리고 북한을 만든 한민족 '카레이스키'에 대한 이야기도 세월에 묻혔다. 역사의 뒤안길에 존재하는 비사(秘史)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의 퍼즐을 맞추는 과정에 꼭 필요한 조각이라고 생각한다."


[기자수첩] 전교조 명단 공개가 죄인가요?



▲ 조전혁 前 국회의원ⓒ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소년·소녀가 청년이 되는 12년. 대한민국의 미래는 교육에 달렸다. 학교에서 학생만큼 중요한 존재가 선생이다. 가르치는 자가 있어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있다. 그리고 2010년 이들 조합원의 명단을 공개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조전혁 前 국회의원은 전교조 교사들의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전교조 교사들은 "명단 공개로 우리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 불이익을 받았다"고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스스로 정치적 성향이 있는 단체라고 인정한 전교조는 자신들의 성향이 들통나 손해를 봤다고 법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법원은 전교조 편에 섰다. 서울중앙지법은 조 전 의원을 상대로 "전교조 소속 교사 3,431명에게 1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민국 헌법이 금하고 있는 선생의 정치활동. 확실한 정치 성향을 가진 전교조 소속 교사에게 아이를 맡긴 부모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명단을 공개한 조전혁 前 국회의원에 대한 전교조와 법원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서울중앙법원은 전교조 소속 교사 4,584명이 추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서도 전교조의 손을 들어줬다. 2013년 9월4일 조전혁 前 국회의원은 4억5,84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받았다.

학부모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한 조전혁 前 국회의원과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는 24일 대법원의 판결이 남았다.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전교조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조합이다. 이런 전교조가 법원의 보호를 계속 받을수 있을지 법원의 최종 판결에 귀추가 주목된다.

유채영, 위암 투병 중 결국 사망 
"생전 밝았던 모습 기억해주길"





위암 투병 중이었던 유채영이 향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4일 오전 유채영의 소속사 150엔터테인먼트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24일 오전 8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소속사는 이어 “위암 투병 끝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녀의 생전 밝았던 모습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시길 바란다”며 “고(故) 유채영 님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유채영은 지난해 10월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남편과 가족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유채영의 곁을 지켰으며 유언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고인의 빈소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씨가 있다.

한편 유채영은 지난 1980년대 후반 5인조 혼성그룹 '푼수들'로 데뷔했다. 이후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으며 이듬해 2인조 혼성그룹 어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녀는 1999년부터 솔로로 전향해 가수뿐 아니라 배우, MC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했다.
[New Daily Photo]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 언론배급 시사회가 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열렸다.

이날 해적 시사회에는 이석훈 감독을 비롯해 배우 김남길, 손예진, 유해진, 이경영, 김태우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오 는 8월 6일 개봉을 앞둔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은 조선 건국 보름 전 고래의 습격을 받아 국새가 사라진 전대미문의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찾는 해적과 산적 그리고 조선개국 세력이 벌이는 바다 위 대격전을 그린 액션 어드벤처 작품이다. 지난 2010년 드라마 추노의 각본을 맡은 천성일이 각본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해적은 육지에서 펼쳐지는 위화도 검투씬과 산적단 일당의 액션과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고난도 와이어, 연검 액션 그리고 하늘 위에서 선보이는 다이나믹한 슬라이드 액션이 볼거리다. 


그룹 블락비가 네 번째 미니앨범 [HER]로 컴백했다.

[블락비(Block B:지코, 태일, 재효, 비범, 피오, 박경, 유권)]는 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유니클로 악스에서 쇼케이스를 통해 컴백을 알렸다.

블락비는 쇼케이스를 통해 신곡 [H.E.R]과 [JACKPOT] 두 곡을 선보이고, 간담회를 통해 앨범 작업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간담회 사회는 조세호가 맡았다.

이 날 공개한 블락비의 네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 곡[HER(헐)]은 사랑을 주제로 사랑하는 그녀를 향한 구애의 메시지를 담았다. 락 블루스의 경쾌한 리듬과 중독성 있는 강한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곡이다. 리더 지코의 손을 거쳐 준비된 블락비의 네 번째 미니앨범 [HER(헐)]은 영어 [HER]와 함께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 내뱉는 감탄사 [헐]의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블락비는 이날 간담회를 통해 자신과 닮은 동물 캐릭터 분장으로 무대에 서겠다는 독특한 1위 공약을 내놨다. 


 
 
 
 
 

윤희성 기자 ndy@new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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