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KBS말고도 수많은 보도매체가 경쟁하며 뉴스를 내보내고,
심지어 방송에 대한 의존도 역시 현저히 떨어졌다.
공영방송 말고도 수많은 제작자들이
교양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학습 콘텐츠 등을 생산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역할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겠다.
시장경쟁력이 없는 분야, 뭐 예컨대 국악과 같은 전통문화 분야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고는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금을 거두어 거대한 방송사를 운영해야 할만큼
그 역할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정치적-문화적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고,
비단 보도뿐만 아니라 시사, 교양, 심지어 예능마저도 정치적 민감성이 증대되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적 선호가 세세하게 분화되면 될수록, 공영방송이라는 기관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들은 정치적 시비에 보다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KBS가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시점, 환경, 사회적 이슈, 현재 대통령, KBS사장 등.. 너무나도 복잡한 요인들에 의해
정치적 논란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제 점차 공영방송이 위치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KBS가 방송하고 있는 콘텐츠 중에서
기존의 시장이 대체하지 못할만한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심지어 KBS가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도 솔직히 아니지 않나.
어느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논조가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고,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구성원이 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바뀔 수밖에 없다면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특히 이번 문창극 총리후보 사퇴 문제는 KBS의 존립 자체를 흔들만큼
심각한 문제로 남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보다 나은 프로그램을 국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KBS 말고도 수많은 경로를 통해
보다 훨씬 질좋은 콘텐츠들을 대량으로 소비하고 있다.
KBS의 콘텐츠에 대한 판단은 미디어 소비자의 몫이다.
정부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