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안전방재시스템 개혁, 제대로 되고 있는가
               박연수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초빙교수(전 소방방재청장)

    1. 서언
     필자는 33년간 공직에 봉직하는 동안 절반은 지방정부에서, 절반은 중앙정부에서 일했다.
     그 중 중앙정부 근무기간의 절반정도가 국가재난관리 분야였다.
     잘해봐야 본전인 재난관리부서에 차출된 것은 공학을 전공하고 기술고시 출신인 것에 기인하지만 실은 기피부서를 마다할 염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인천직할시 재무국장을 마치고 내무부에 전입할 무렵은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위도카페리호 침몰, 대구지하철가스폭발사고, 구포역열차사고 등 온 나라가 연이은 대형사고로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그 시절에 풍수해 등 자연재난을 관장하는 방재계획과장과 민방위를 관장하는 민방위본부 기획과장으로서 국가적 수습과 대책마련을 했다.
    당시는 자연재난을 관리하는 『풍수해대책법』만 있었고 인적재난 즉, 국가적 대형사고는 관리하는 부서도 법도 없던 때였다. 엄중한 당시 상황 아래서 그 업무는 내무부에 배정 되었고 내무부에서는 민방위본부 몫이 되었다.
    결국 새로운 업무가 발생하면 본부의 주무과장이 담당하는 관례에 따라 인적재난관리 업무를 직원들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정부적 수습지원과 국가적 대책마련의 어려운 과제를 맡았다.
    그리하여 근거법으로 『재난관리법』을 제정하고 국가컨트롤타워로서 내무부에 『재난관리국』을 신설하였다. 재난관리법은 그 당시로 보면 강력한 법이었고 당시 우리나라를 뒤흔든 인적재난의 원인으로 지적된 “압축성장의 폐해”를 극복했다. 

     이제 20여년이 지나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그 법과 재난관리시스템의 수명이 다했음을 느낀다. 정확한 원인규명을 바탕으로 또 다른 20년을 지탱해 갈 수 있는 법과 시스템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이제는 ‘재난관리법’이 아닌 ‘국가안전관리법’으로 발전된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2. 세월호 사고가 일깨워 준 것
     세월호 사고가 우리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대로는 안 된다”이다. 그 세부적인 내용은 첫째, 『위기』의 신호로서 우리사회 전반의 비상한 질적인 변화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성』의 요구로서 우리 모두가 부끄러움과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점이며, 셋째는 『희망』의 메시지로서 위기 속의 미래세대가 보여준 모습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넷째로 『가치』의 우선순위에 대한 성찰, 즉 ‘가족’과 ‘안전사회’의 가치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수많은 죄 없는 목숨의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3. 되풀이 되는 대형사고의 원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직, 기업, 국민을 포괄하는 우리사회의 기강붕괴가 대형사고 발생의 근본원인이고, 되풀이 되는 것의 원인은 잘못된 진단과 그에 따른 잘못된 해법에 있다. 여기에다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을 우리사회의 집단망각증과 정치포퓰리즘이 뒷받침한다. 
     
     대형사고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수많은 잘못이 연결되어야 발생하는 것이 대형사고이다. 세월호 침몰의 경우, 탐욕경영-불법증축-과적및결박불량-평형수조작-불법출항-부실및불량선원-운전미숙-불량구명보트-관리감독부실-구조부실 등 수많은 고리가 있었다. 그 어느 고리 하나만 제대로 끊어 주었어도 세월호 참사는 없었다. 그래서 대형사고는 그 사회의 총체적 부실에 보내는 최후의 경종으로 본다. 다시 말하자면 총체적 기강붕괴가 그 원인의 중심에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경우 현재 우리사회의 뿌리까지 만연된 “돈”중심 가치체제의 결과인 탐욕경영으로부터 공직부패에 이르기까지 오래된 적폐가 실체를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서 끝이 아니라 시작일 가능성에 그 두려움이 크다. 

     1990년대 연달아 발생하였던 대형사고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어쩌면 그렇게 그 때와 정부대응도, 언론보도도, 전문가들의 분석도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 가에 놀라는 것을 본다. 그것을 보면서 또 되풀이 될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움을 떨치기 어렵다. 

     즉,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언론은 정부의 초기대응 잘못을 질타한다. 전문가는 초기대응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집중분석하고 언론은 되풀이 하여 강조한다. 정부는 대응시스템 개선에 집중한다. 대응시스템 개선과정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관이기주의가 준동한다. 정치권에서는 이해 관계자들을 대변한다. 국회를 통과해 탄생된 것은 기형아다. 그때쯤이면 언론도 국민도 관심이 없다. 

    4. 진단과 처방 : 무엇이 핵심인가
     ① “대응중심”의 시스템 개선은 옳은 답이 아니다
     국가안전관리시스템의 목표는 ‘국민안전확보’이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기본원리는 『대형사고(인적재난)』관리는 ‘예방중심’이 되어야 하고 『자연재난』관리는 ‘대비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붕괴, 침몰, 폭발, 원자력사고, 화재 등 인적재난(사고)은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아무리 100점짜리 구조활동을 한다 해도 비극은 되돌려지지 않는다. 다행히 예방은 가능하기 때문에 예방활동을 통해 사고발생을 막을 수 있는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반면에 태풍, 폭우, 지진 같은 자연현상은 예방 자체가 불가능한 신의 영역이다. 따라서 최선의 대비와 적절한 대응을 통해서 피해를 최소화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늘 사회를 충격 속에 몰아넣는 사고를 당한 끝에 국가안전관리시스템 개선을 하기 때문에 사고발생시의 대응에 치우치는 진단과 처방이 내려지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목표인 국민안전확보라는 본질보다는 대응역량 보강이라는 지엽적인 성과에 그치고 만다. 특히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의 현장 대응은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 즉 대응요원의 역량과 정신자세가 성패를 가르는 핵심인 것이다. 요원의 역량은 훈련의 결과이고 정신자세는 직업의식과 사기에 달린 문제로서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느냐에 대한 답이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안전관리시스템이 책임져야 할 영역은 평시에는 예방과 대비이고 대응역량의 강화이며 유사시에는 대응과 수습이다. 이런 사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평시에는 분권적 형태로 기능하고 유사시에는 집중적 형태로 전환되는 시스템의 구조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평시에는 각 기관별로 책임소관별 예방활동과 대비사업을 차질 없이 수행하고 각 대응기관은 대응역량을 강화하며, 유사시에는 중앙컨트롤타워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한 구조와 피난 및 수습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법이다. 흔히 일각에서 국가안전관리의 일원화를 주장하지만 이는 국가안전관리를 단순한 구조활동과 사고현장관리 정도로 오인하는 데서 나온 발상으로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재난의 종류는 다양하며 관리해야 하는 전문분야는 정부 전 부처의 업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국가안전관리시스템의 중심에 국가안전컨트롤타워를 두는데 이의 역할은 소위 “악마의 견제장치”와 “재난대응의 프로”로서의 기능이다. 즉, 평시에는 각 기관별로 예방과 대비 및 대응역량 강화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강력한 제재력을 가지고 끊임없이 점검 및 관리하는 것이다. 세월호 등 대형사고에서 확인되었듯이 자신에게 닥쳐오는 직접적인 위기의식과 견제장치 없는 셀프점검과 끼리끼리점검은 결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소위 악마의 견제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유사시에는 훈련된 지휘요원의 현장파견, 필요한 자원의 동원, 관련기관 지휘통제 및 국가적 판단과 집행을 프로답게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안전컨트롤타워는 평시에도 사고발생 시에도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권능이 확보되어야 한다. 즉, 효과적인 예방과 대응을 위한 국가적 자산과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권한으로서 안전과 관련한 긴급명령권, 긴급조치권, 조사권, 처분요구권, 이행강제권, 국가비상사태선포 및 총동원령 건의권 등이 법에 반영되어야 한다.  

     국가안전관리시스템 개선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시스템의 목표와 시스템의 구조를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시스템 운영의 본색은 시스템의 작동성과 효과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결국은 제도와 사람이다.

    ② 국가기강의 확립은 중요하다. 그리고 가능하다
     국가기강은 공직기강, 기업윤리, 그리고 사회적 기강으로 구성된다. 국가기강은 그 사회의 수준과 품격의 일부분이지만 자발적인 발로라기보다는 지켜져야 하는 규범적 성격으로서 국가 존립을 위해 더 양보할 수 없는 하한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강이 무너지면 국가존립과 국민안위에 문제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기강은 정부의 책임이다. 여기에서 정부라 함은 당연히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포괄한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기강의 문제는 앞에서 밝힌 대로 “돈중심”의 가치체제에 있다. 건강한 우리사회를 위해서 가치체제를 되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치체제의 재정립만이 기강을 바로잡는 길은 아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것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안전과 관련된 기강은 안전규정 준수와 소임완수 풍토이다. 이 기강이 무너진 것은 법집행의 문제, 탐욕의 문제, 부정과 부패의 문제, 헤이의 문제, 그리고 교육의 문제 등의 물고 물리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그렇게 해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이 분명하고 신속하게 증명되는 사회적 메카니즘을 만드는 것이다.

     공직기강은 소위 악마의 견제장치(위기의식)를 마련하고 신분보장제도와 급여체계의 재검토로 잘못한 자에 대한 필벌(퇴출)과 소임에 충성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에 대하여는 탐욕에 대한 징벌적 과징금 부과로 안전을 담보로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 자체를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할 것이다.
     사회기강은 예외 없는 법집행과 요람으로부터의 교육이 그 답이 될 것이다.

    ③ 국가안전관리에 대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국민안전은 헌법적 가치로서 국가에 세금을 내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의 안전은 전례 없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태풍, 폭우 등 기후변화로 인한 기후재난의 강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고, 대형교통사고, 원자력 안전사고, 폭발, 붕괴, 화재 등 기술재난의 위험이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지진, 해일 등 지질재난의 가능성이 가시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테러, 해킹, 전쟁 등 기획재난의 잠재력이 상존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예전과는 달리 기존의 대처방식으로는 대응이 어렵다. 이런 외적요인 뿐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모럴해저드, 안전불감증 등 내적환경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새 패러다임의 기본은 첫째, 정치가 부국안민의 초심으로 돌아와 ‘안전’도 ‘경제’만큼 지속적인 관심이 유지되는 국회시스템을 구축하고 국가의 적극적인 방어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둘째, 국민에게도 안전규정 준수, 재난회피 및 자조협동의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위의 내용을 실현하기 위한 통치권적 관심과 전문가적 집중을 바탕으로 한 정예화 되고 강력한 『국가안전관리시스템』을 재정립해야 한다.(2014. 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