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알 권리’ 들이대며 군인·경찰 하대하는 건 ‘관행’아냐
  • ▲ 아덴만의 여명 작전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는 언론들에게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던 사건이다. [사진: 국방부·청와대 제공]
    ▲ 아덴만의 여명 작전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는 언론들에게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던 사건이다. [사진: 국방부·청와대 제공]

     

    한겨레 신문이 말하는 ‘관행’,
    통하는 곳과 통하지 않는 곳


    지난 23일과 24일 본지가 보도한
    한겨레 신문 사진기자 A씨의 군인 폭언·폭행 사건에 대해
    한겨레 신문 측은 “사실무근의 오보”라며 “엄정한 법적 대응”을 외쳤다.
    정말 사실무근, 오보인가.

  • ▲ 22사단 GOP 총기난사 범인 임 모 병장을 생포하는 작전을 펼치면서 출입을 통제하는 장병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2사단 GOP 총기난사 범인 임 모 병장을 생포하는 작전을 펼치면서 출입을 통제하는 장병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와 통화한 한겨레 신문 관계자는
    “큰 일 아니다. 관행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취재를 방해하는 군인들과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집회나 시위 현장 취재 상황을 잘 알지 않느냐?
    경찰과도 그렇게 가벼운 실랑이들이 있는데 그와 비슷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취재를 제한하는 당국과 그런 실랑이는 관행 아닌가.”

    [관련기사]한겨레 기자 작전 중인 군인 폭행이 오보? 지켜보라!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08726



    한겨레 신문 측의 설명을 들은 뒤
    언론계의 여러 가지 ‘관행’을 떠올렸다.

    2007년 1월 1일 오전, 당시 한나라당 단배식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현충원에서 남산까지 대선주자 일행과 동행했다.
    이때 기자는 대선주자들을 촬영하기 위해 단상 뒤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뒤에 있던 사진기자 선배에게 등을 밟혔다.
    “악”하는 비명이 나왔다.

    이때는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갔다.
    포토라인에서 피사체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게 사진기자니까.
    국회에서도 늘 그러니까.

  • ▲ 인터넷에서 '밀착취재'라는 이름으로 수년 째 나돌고 있는 사진들. 기자들 간의 취재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사진: 웹 검색]
    ▲ 인터넷에서 '밀착취재'라는 이름으로 수년 째 나돌고 있는 사진들. 기자들 간의 취재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사진: 웹 검색]

    이걸 업계의 관행으로 이해했다.
    주변 선배들도 "그럴 수 있다. 참으라"고 충고했다.

    2005년부터 2012년 사이에 있었던
    많은 불법시위와 각종 단체의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 간의 몸싸움,
    그 사이에서 보다 더 생생한 사진을 찍기 위해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기자들의 모습도 많이 봤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를 오가다
    양쪽에서 동시에 욕 먹고 위협 당하는 기자들도 봤다.

    당시 그 모습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과격 시위 와중에는
    진압하는 경찰이나 흥분한 시위대나
    그 사이에 낀 기자를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기자가 알아서 잘 피해야 하고
    때로는 물리적인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도 있으니까.
    경찰도 취재 중인 기자가 흥분한 데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다.

  • ▲ 코레일 노조를 취재하기 위해 경향신문 사옥 앞으로 몰려든 기자들과 경찰의 대치 상황 [자료사진]
    ▲ 코레일 노조를 취재하기 위해 경향신문 사옥 앞으로 몰려든 기자들과 경찰의 대치 상황 [자료사진]

    하지만 지난 22일 강원고 고성군 명파리 인근에서
    한겨레 신문 A기자가 보여준 행동은 ‘관행’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아니, 어떤 언론사에서도
    작전 중인 군인에게 쌍욕을 퍼붓고
    ‘신체접촉’ 하는 것을 ‘관행’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국민들 시각으로 보면 더욱 심각한 일이다.
    전우 12명을 살해하거나 중상을 입힌 뒤
    실탄 60여 발과 K-2 소총을 들고 탈영한 병사를 생포하기 위해
    수백여 명의 무장 병력이 포위하는 ‘작전’을 하는 곳이라면
    군 당국의 ‘권고’를 따르는 게 정상 아닌가.

    군 당국이 A기자나 동행한 기자들을 제지 안했을 경우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질까?

    만에 하나 탈영한 병사가
    갑자기 다가오는 사진 기자들을 군인으로 오인해 총을 쏘았다면,
    그래서 이들이 중상을 입었다면,
    해당 기자와 소속 언론사는 누구에게 책임지라고 했을까?

    최근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들이 보여준 행태로 미루어 보면,
    또 군 당국과 정부, 아니면 ‘박근혜 책임’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2006년 5월 5일 평택 대추리에서 생긴 ‘관행’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작전 중인 군인에게 ‘X새X’ 등의 폭언과 폭행을 한 A기자를 보며,
    문득 2006년 5월 5일 평택 대추리가 떠올랐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뒤
    서울 용산 주한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려는 작업이 시작됐다.
    좌파 진영은 이에 반대해
    평택 대추리에 위장전입신고를 한 뒤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 2006년 5월 초순, 평택 대추리에서 철조망 작업 중인 장병들. [자료사진]
    ▲ 2006년 5월 초순, 평택 대추리에서 철조망 작업 중인 장병들. [자료사진]

    2006년 5월 초 국방부는
    미군기지 이전부지에 철조망을 치고
    소수의 육군 병력을 보내 경계 임무를 맡게 했다.

    5월 4일, 정부는
    경찰 병력 1만 3,500여 명, 군 2,800여 명을 동원해
    평택 대추리 일대의 미군기지 이전부지
    약 1,100만㎡ 주변에 29km 길이의 철조망을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대추리를 점거하고 있던 시위대 1,100여 명을 강제퇴거 시키고,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한 시위대 524명을 연행했다.
    진압 과정에서 경찰 6명, 시위대 7명이 골절 등의 중상을 입었다.

  • ▲ 2006년 5월, 평택 대추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사진: 조선닷컴 캡쳐]
    ▲ 2006년 5월, 평택 대추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사진: 조선닷컴 캡쳐]

    이렇게 2년 가까이 끌던
    좌파 진영의 ‘대추리 투쟁’도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튿날 일이 터졌다. 

    5월 5일 오후 5시쯤, 대추리에 모여 있던
    시위대 가운데 300여 명이
    군이 설치한 철조망을 찢고 들어가 기습시위를 벌였다.
    오후 6시 40분쯤에는 시위대 수가 1,2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초병들이 설치한 철조망을 망가뜨리고,
    장병들이 숙소로 쓰고 있던 텐트와 임시초소 40여 곳을 박살냈다.
    이 과정에서 육군 장병 10명이 폭행당했다.
    이중 2명은 팔과 머리에 중상을 입어 헬기로 후송됐다.

    당시 장병들은 “민간인 폭력에 대응하지 말라”는
    군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무방비 상태로 얻어맞았다고 한다.

  • ▲ 당시 시위대에게 폭행당해 목을 다친 장병. [당시 동아닷컴 보도화면 캡쳐]
    ▲ 당시 시위대에게 폭행당해 목을 다친 장병. [당시 동아닷컴 보도화면 캡쳐]

    이 사건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초병(哨兵)을 ‘집단 폭행’하고 시설물을 훼손했기에
    가해자들은 군사재판을 받는 게 ‘정상’이었다.
    형량도 유기징역 이상이 확실해 보였다.
    때문에 親盧로 알려져 있던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조차
    ‘엄벌’을 다짐하면서 초병들에게
    진압봉, 방패 등의 보호 장구를 지급하고 “막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때 ‘권력’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던 좌파 진영은
    오히려 “정부가 대추리를 점거한 것 자체가 불법”
    “평화로운 평택을 전쟁터로 만들지 말라”며 큰 소리 쳤다.

    결국 ‘살아있는 권력들’이 국방부에 압박을 가하면서,
    ‘최소 징역형’이었던 ‘초병 폭행 가해자’들은 제대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구속됐던 10여 명의 시위자는 몇 달 구치소에 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폭력 시위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던 500여 명 가운데 대부분은
    2008년 정권이 바뀐 뒤에야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 형량이 벌금 수십만 원 또는 2~300만 원에 불과했다.

    이 ‘대추리 사태’는
    ‘진보 정권’ 하에서는 군 형법이 민간인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겼다.
    A기자나 한겨레 신문 측이 설명하는 ‘관행’이 혹시 이 당시를 거론한 걸까?

    아니라 믿고 싶다.
    그건 언론의 ‘관행’이 아니라 ‘자칭 진보들’의 행패 아닌가? 


    언론의 ‘알 권리’보다
    더 중요한 건 준법


    대추리 사태 당시 한겨레 신문은 정부를 향해
    “철조망을 걷어치우라” “본질은 한반도 평화”라는 사설을 내보내면서도
    시위대가 불법으로 철조망을 훼손하고 장병을 폭행한 사실도 함께 다뤘다.
    이 때문에 좌파 진영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는 한겨레 신문 측이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서 고민했던 흔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에서도
    한겨레 신문이 또 한 번 고민해보면 안 될까.

  • ▲ 2011년 2월 1일 MBC가 보도한 민노당 시의원의 '갑질'. 그를 제명하는 표결까지 붙여졌다. [사진: 당시 MBC 보도화면 캡쳐]
    ▲ 2011년 2월 1일 MBC가 보도한 민노당 시의원의 '갑질'. 그를 제명하는 표결까지 붙여졌다. [사진: 당시 MBC 보도화면 캡쳐]

    23일 한겨레 신문 A기자가
    군인들에게 폭언-폭행을 할 때 옆에는 다른 일간지 기자도 있었다.
    이들도 출입을 통제하는 군인들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선’을 지켰다. 바로 ‘준법’이다.

    아무리 사회에서 ‘갑(甲)’ 대우를 받는 기자라도 법은 넘어설 수 없다.

    A기자를 제지했던 군인들은 ‘작전 중’이었다.
    이들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가했다는 점은 ‘위법’이다.
    한겨레 신문 측이 이 사건을 ‘해프닝’으로 마무리 짓고자 했다면,
    그 직후 해당 부대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 ▲ 세월호 참사 직후 언론들의 취재경쟁이 과열되자 기자협회 등이 보도지침을 전달해 진화하고 나섰다. [사진: 기자협회보 보도화면 캡쳐]
    ▲ 세월호 참사 직후 언론들의 취재경쟁이 과열되자 기자협회 등이 보도지침을 전달해 진화하고 나섰다. [사진: 기자협회보 보도화면 캡쳐]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이 언론을 향해 손가락질 하면서,
    업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커진 것을 기억할 것이다.
    많은 기자들은 지금도 취재원칙에 대해 고민하며 활동한다.

    이번 22사단 GOP 총기난사 무장탈영 사건을 다룸에 있어
    타 매체와의 경쟁 보다는,
    ‘준법’과 취재원, 피해자 보호에 관해
    우리 스스로가 더욱 고민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기회로 삼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