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 ‘캔디 고(고희경)’의 페북 게시글 후폭풍..누리꾼 관심집중
  • ▲ 고승덕 후보의 딸임을 밝힌 고희경(미국 이름, 캔디 고)씨가 30일 자신의 페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화면 캡처
    ▲ 고승덕 후보의 딸임을 밝힌 고희경(미국 이름, 캔디 고)씨가 30일 자신의 페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화면 캡처


    ‘고승덕’이 서울시교육감에 출마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위입니다.
    제가 여기서 침묵한다는 것은 서울 시민 여러분을 기만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서울 시민 여러분께 그분(고승덕 후보)은 교육감이란 직책을 맡을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감의 역할이 한 도시의 교육정책과 시스템을 돌보는 것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피붙이도 가르칠 뜻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Seung Duk Koh’s running for the seat as Seoul’s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s crossing the line.

    For me to keep silent here would be to deceive the citizens of Seoul.

    As a child he neither educated nor rarely even spoke to, I must inform the citizens of Seoul that he does not qualify for this position.

    If the role of a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s to look after the educational policies and systems of a city, Seung Duk Koh is a stranger to this role.

    How can he act as the leader of education for a city when he is unwilling to teach his own flesh and blood?

       - 자신을 고승덕 후보의 딸 고희경(미국 이름 캔디 고)이라고 밝힌 여성이 올린 페이스북 글 중 일부.


  • ▲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 뉴데일리 DB
    ▲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 뉴데일리 DB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의 친 딸임을 밝힌 한 누리꾼이 페이스북을 통해 ‘아버지 고승덕’의 실체를 밝히는 글을 올려 누리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자신을 고승덕 후보의 ‘딸’인 ‘고희경’(한국 이름), ‘캔디 고’(미국 이름)라고 밝힌 이 여성은, 아버지가 자신과 동생에게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과 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연락 한 번 한 사실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 여성은 한국의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한국의 부모들에게 자녀 교육을 주제로 강연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 자식도 교육시키지 않고, 심지어 완벽하게 방치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크게 화가 났다”((I became angry, as he did not educate his own children, but rather completely disregarded them)고 털어놨다.

  • ▲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의 딸이라고 밝힌 [캔디 고](고희경)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화면 캡처
    ▲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의 딸이라고 밝힌 [캔디 고](고희경)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화면 캡처

    나아가 이 여성은 서울시민들에게 이 글을 남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고승덕’이 서울시교육감 직책에 출마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위입니다.
    제가 여기서 침묵한다는 것은 서울 시민 여러분을 기만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는 그가 교육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서울시민 여러분께 그분(고승덕 후보)은 교육감이란 직책을 맡을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감의 역할이 한 도시의 교육정책과 시스템을 돌보는 것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피붙이도 가르칠 뜻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어 이 여성은 [생물학적 아버지의 도움 없이]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번 가을에는 장학금을 받고 로스쿨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가장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공익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번 가을에 법대에 성적 장학금을 받고 진학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피가 섞인 아버지 없이도 이만큼 이루었다는 사실에 대해 저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Despite this, I was able to go through college and graduate school as one of the top students in my class.

    To better apply my interest in public service, I also plan to begin law school in the fall with a merit scholarship.

    I am proud that I have managed to achieve this much without my biological father.


    이 여성은 자신과 자신의 동생에게 실질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해 준 사람은 외할아버지(고 박태준 전 총리)였으며, 혼자의 몸으로 자신과 동생을 키워 낸 어머니에게 존경을 표했다.

    엄마나 외할아버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엄마는 혼자서 두 자식을 키웠고, 외할아버지(고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지칭)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심리적으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I could not have done it without my mother who single-handedly raised both her children or my maternal grandfather—my mother’s father—who provided me the psychological support of a father throughout my life until he passed.


    이 여성은 자신을 [고승덕 후보의 딸]이라고 밝히면서도, 페북에 올린 글에서 고승덕 후보를 [생물학적 아버지](my biological father)라고 표현해, 고승덕 후보를 더 이상 아버지로 인정치 않는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캔디 고’가 자신의 아버지를 이처럼 냉정하게 표현한 이유는, 이 여성이 올린 글 곳곳에서 드러난다.

    “고승덕은 자신의 자녀들 교육에 대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Seung Duk Koh never partook in the education of his own children.)

    “어릴 적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저와 동생의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존재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I have next to no memories of his being present to teach me or my brother anything, even when I was old enough to have such memories)


    나아가 ‘캔디 고’는 (이혼 후) 고승덕 후보가 자신의 가족과 연락을 끊은 사실도 밝혔다.

    어머니께서는 저와 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고 뉴욕에 있는 학교에 보냈습니다.
    고씨는 한국에 머물렀으며 우리 모두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When my mother brought me and my brother to the U.S. to send us to a school in New York, Koh stayed in Korea and also decided to stop contacting us altogether.


    ‘캔디 고’는 아버지 고승덕의 외면으로 어릴 때 정서적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특히 자신은 매년 돌아오는 ‘아버지의 날’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에 관해서 묻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고 말했다.

    ‘캔디 고’는 고승덕 후보가 이혼 뒤 한 번도 자신들의 안부를 묻는 전화나 문자를 한 적이 없었다며, 고승덕 후보를 아버지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을 나타냈다.

    고승덕 후보로부터 일체의 경제적 지원도 받을 사실이 없다고 ‘캔디 고’는 덧붙였다.

    아버지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 저는 겨우 11살 이었습니다.
    매년마다 돌아오는 아버지의 날은 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버지는 어디 계시고, 무얼 하시느냐고 묻는 것이 저는 끔찍하게 싫었습니다.

    그분과 결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저 모른다고 대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나 인터넷이 있었지만 저나 동생에게 잘 있는지 연락 한번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식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후보에게 연락이나 생일 선물을 받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경제적 지원이나 자녀 교육에 대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I was still only 11 years old when I had to get used to a life without a father.

    I missed out on Father’s Day every year. I hated it when people asked me where my father was or what he did and I eventually began to reply that I do not know, because he never told me.

    Despite the existence of a telephone and Internet, Koh never called me or my brother to ask how we were doing.

    Asking for a call or gifts on our birthday was not even in the scope of our imagination because he did not acknowledge his own children’s existence.

    Of course he never supported our education in any way, including financially.


    마지막으로 ‘캔디 고’는 “한때 서울의 시민이었던” 사람으로서, 서울시민들이 교육감 후보로서 적합한 사람를 선택하리라고 믿는다면서, 서울의 교육을 진정으로 염려하고, 특히 자기 자녀를 제대로 돌보는 사람을 교육감 후보로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그분의 딸로서 저는 그분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어떠한 지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와 더불어 한때 서울의 시민이었던 저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하고 그 직책에 보다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리라고 믿습니다.

    서울 교육을 진정 염려하고 후보자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자기 자녀를 돌보면서 시작할 그런 사람을 말입니다.

    I, his own daughter, never received support from him for my own education.

    As a former citizen of Seoul still with many friends who reside there, I trust that you will make the right decision for the future of your city and choose a candidate better suited for the position: someone who truly cares about the Seoul’s education system and someone who begins by caring for those nearest to him, his own children.


    자신의 딸이 사실상 낙선 운동에 나섰다는 소식에 고승덕 후보는 기존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아버지로서 결별과정과 재혼으로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큰 상처에 대해 평생 미안한 마음이다.

    제가 지난 십여년간 청소년 활동과 봉사에 매진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현재 ‘캔디 고’가 올린 게시글에는 누리꾼들의 응원과 격려의 댓글이 붙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자신의 아픈 과거사를 고백한 고씨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고씨와 어머니 등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댓글도 눈에 띤다.

    고씨의 글을 공유하겠다는 누리꾼들도 시갈이 흐를수록 늘고 있다.

  • ▲ 고희경(미국 이름 캔디 고)씨가 게시한 페북 글에 누리꾼들이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댓글을 올리고 있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 고희경(미국 이름 캔디 고)씨가 게시한 페북 글에 누리꾼들이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댓글을 올리고 있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다음은 ‘’캔디 고’가 페이스북에 올린 영어 원문과 번역문 전문이다.


    서울 시민 여러분들께,

    저는 서울 시민은 아니지만 오늘 여러분께 서울 교육의 미래에 대하여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지금 제 이름은 캔디 고(Candy Koh)입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에 살았을 때 이름은 고희경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지방 선거에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고승덕과 박유아 사이에서 난 두 자녀 중 장녀입니다.

    최근 지방 선거에서 아버지계서 교육감으로 출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그분의 자녀로서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 양심에 걸렸습니다.

    서울 시민 여러분께서는 혹 당선이 되면 서울 교육을 대표하고 책임질 그 분에 대해서 더 아셔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고승덕은 자신의 자녀들 교육에 대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고씨가 결혼 관계에 있을 1987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 캠버리지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제 남동생이 태어난 직후에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저와 동생의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존재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와 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고 뉴욕에 있는 학교에 보냈습니다.
    고씨는 한국에 머물렀으며 우리 모두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 저는 겨우 11살 이었습니다.
    매년마다 돌아오는 아버지의 날은 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버지는 어디 계시고, 무얼 하시느냐고 묻는 것이 저는 끔찍하게 싫었습니다.그분과 결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저 모른다고 대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나 인터넷이 있었지만 저나 동생에게 잘 있는지 연락 한번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식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후보에게 연락이나 생일 선물을 받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경제적 지원이나 자녀 교육에 대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가장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공익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번 가을에 법대에 성적 장학금을 받고 진학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피가 섞인 아버지 없이도 이만큼 이루었다는 사실에 대해 저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엄마나 외할아버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엄마는 혼자서 두 자식을 키웠고, 외할아버지(고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지칭)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심리적으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고씨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성공을 하는지 강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또 그분이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아이들을 최고로 가르칠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무렵이었는데, 저는 매우 화가 났었습니다,
    자기 자식도 교육시키지 않고 심지어 완벽하게 방치했으면서 어떻게.

    그렇지만 저는 겨우 10대 청소년이었고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침묵하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한국민들이 그분이 이룬 성취와 소위 그 탁월함을 칭송하는 것을 보면서도 저는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미국계 한국인이고 한국 정치 현장에 특별히 관여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승덕이 서울시 교육감 직책에 출마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위입니다.
    제가 여기서 침묵한다는 것은 서울 시민 여러분을 기만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분이 전혀 가르치지도, 그다지 말한 적도 없는 그 분의 자녀로서 저는 서울 시민 여러분께 그분은 교육감이란 직책에 자격에 없다는 것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감의 역할이 한 도시의 교육 정책과 시스템을 돌보는 것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피붙이도 가르칠 뜻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들의 손에 미래가 달려 있는 사람들- 여러분 도시, 민족, 세계의 미래-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분의 딸로서 저는 그분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어떠한 지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와 더불어 한때 서울의 시민이었던 저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하고 그 직책에 보다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리라고 믿습니다.

    서울 교육을 진정 염려하고 후보자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자기 자녀를 돌보면서 시작할 그런 사람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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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the Citizens of Seoul,

    am not a citizen of your city, but I write you today out of urgency and dire concern for the future of your city’s education system.

    My name is Candy Koh, once known as Hee Kyung Koh (고희경) during my residence in South Korea from the year 1991 to 1998. I am the first of two children between Yooah Park and Seung Duk Koh, a candidate for Seoul’s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n the current elections.

    When his candidacy came to my attention recently, I could not, in good conscience, stay silent as his child.

    Seoul’s citizens deserve know the truth about the person they may be choosing to represent and be in charge of Seoul’s education system: Seung Duk Koh never partook in the education of his own children.

    I was born in Cambridge, Massachusetts in 1987 while my mother and Koh were still married. After my brother was born in New Jersey in 1991, we all moved to Korea.

    I have next to no memories of his being present to teach me or my brother anything, even when I was old enough to have such memories.

    When my mother brought me and my brother to the U.S. to send us to a school in New York, Koh stayed in Korea and also decided to stop contacting us altogether.

    I was still only 11 years old when I had to get used to a life without a father.
    I missed out on Father’s Day every year.

    I hated it when people asked me where my father was or what he did and I eventually began to reply that I do not know, because he never told me. Despite the existence of a telephone and Internet, Koh never called me or my brother to ask how we were doing.

    Asking for a call or gifts on our birthday was not even in the scope of our imagination because he did not acknowledge his own children’s existence.

    Of course he never supported our education in any way, including financially.

    Despite this, I was able to go through college and graduate school as one of the top students in my class.

    To better apply my interest in public service, I also plan to begin law school in the fall with a merit scholarship.

    I am proud that I have managed to achieve this much without my biological father.

    I could not have done it without my mother who single-handedly raised both her children or my maternal grandfather—my mother’s father—who provided me the psychological support of a father throughout my life until he passed.

    Meanwhile as I grew up in the U.S., I saw through the Korean media that Koh would give lectures to children on how to study or how to “succeed.”

    I also saw that he spoke to parents on how best to educate their children.

    When I first saw the latter in the early 2000s, I became angry, as he did not educate his own children, but rather completely disregarded them.

    However, I was still a child, barely in my teens, and I was also living in the U.S.

    What could I do?
    I felt that I had no choice but to keep silent. Despite seeing the praises he received from many Koreans for his achievements and so-called brilliance, I kept silent because I didn’t think my voice mattered.

    I am also an American and perhaps felt I had no business engaging in dialogues particular to the Korean political scene.

    However, Seung Duk Koh’s running for the seat as Seoul’s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s crossing the line.

    For me to keep silent here would be to deceive the citizens of Seoul.

    As a child he neither educated nor rarely even spoke to, I must inform the citizens of Seoul that he does not qualify for this position.

    If the role of a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s to look after the educational policies and systems of a city, Seung Duk Koh is a stranger to this role.

    How can he act as the leader of education for a city when he is unwilling to teach his own flesh and blood?

    Education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in the world. It shapes people in whose hands the future lies—the future of your city, your nation, and the world.

    I, his own daughter, never received support from him for my own education.

    As a former citizen of Seoul still with many friends who reside there, I trust that you will make the right decision for the future of your city and choose a candidate better suited for the position: someone who truly cares about the Seoul’s education system and someone who begins by caring for those nearest to him, his own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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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의 딸이라고 밝힌 ‘캔디 고’(한국이름 고희경)가 이번에는 고승덕 후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의 딸이라고 밝힌 ‘캔디 고’(한국이름 고희경)가 이번에는 고승덕 후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자신의 아버지인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에게 “자기 자식도 돌보지 않은 사람은 교육감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비판적 게시글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는 ‘캔디 고’(한국이름 고희경)가 이번에는 고승덕 후보와 함께 찍은 어린 시절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캔디 고’는 30일 낮 자신을 고승덕 후보의 딸이라고 소개하면서, 고승덕 후보를 비판하는 게시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캔디 고’가 올린 게시글은 누리꾼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문용린 현 교육감과 고승덕, 조희연 후보가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서울교육감 선거 막판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캔디 고’는 게시글을 통해 부친인 고승덕 후보가 자신은 물론 어머니, 동생과 모두 연락을 끊었으며, 일체의 경제적 지원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캔디 고’는 자신의 부친인 고승덕 후보의 철저한 외면속에, 어린 시절을 아버지 없는 아이로 자랐음을 고백해 많은 누리꾼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캔디 고’의 이날 고백은, “자녀들이 미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기를 원해 어쩔 수 없이 떠나 보냈다”는 고승덕 후보의 해명과 전혀 달라,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캔디 고’는 자신의 페북에 다시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 ▲ ‘캔디 고’ 페이스북.ⓒ 페이스북 화면 캡처
    ▲ ‘캔디 고’ 페이스북.ⓒ 페이스북 화면 캡처

    ‘캔디 고’는 “본인의혹이 있어 예날 사진을 올립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자신과 고승덕 후보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에는 젊은 고승덕 후보가 ‘캔디 고’와 그녀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갓난아기를 안고 주택 현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캔디 고’는 자신의 게시글로 인한 후폭풍을 의식한 듯, 본인 확인을 위한 사진 외에도, 게시글 공개와 관련된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글도 새로 올렸다.

    저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쓴 입장으로서 특정후보를 지지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확실하게 밝힙니다.


    현재 ‘캔디 고’의 사진과 게시글은 1,587명이 [좋아요]를 누를만큼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