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증언 "15~16세 어린 여성들도 수술 강요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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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중국에는 팔려간 북한여성이 많다. 말이 시집이지 실제로는 상대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거간꾼의 손에 이끌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도착한다. 대문이 열리며 마중 나온 사람이 장애인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무조건 살아야 하며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중국에 팔려가는 여성들 중 15~16살 되는 청소년들도 있다. 북한은 여성들의 생리 시작 시기도 빨랐지만 현재는 17~20세가 보통이다. 탈북자들의 말로는 여성들 생리도 영양이 좋아야 시작도 빠르다고 한다.

    16년 전 중국에 팔려왔던 탈북자 김영옥(31)씨는 현재 두 아이 엄마이다. 놀라운 것은 그의 맏딸이 15살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평균 생리가 10대 후반인 북한의 실정에 놓고 볼 때 영옥씨는 영양상태가 좋아서 생리를 빨리 한 것일까?

    우리는 그가 생리도 없던 어린 나이에 왜 강제로 임신을 해야만 하고, 애티도 벗지 못한 여린 소녀가 아버지 벌되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산부인과 수술실에 들어가야만 했는지, 이 사연을 그녀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부터 학교도 가지 못하고 생활고에 뛰어들었는데 그런 와중에 어머니까지 앓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한다. 어느 해 추운 겨울 영옥씨는 중국에 가서 반년만 일하면 뭉칫돈을 벌 수 있다는 밀수꾼의 거짓에 속아 얼어붙은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 도착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중국인의 뒤를 따라 버스에 몸을 실은 채 며칠 낮 며칠 밤을 달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옥수수 대로 담장을 둘러막은 농가였다. 대문을 두드리자 중년도 훨씬 지나 보이는 남자가 반갑게 그들을 맞아주었다.

    마중 나온 중년의 사나이. 중국 돈 2만원을 거간꾼에게 주고 영옥씨를 산 집주인이자 그의 남편 될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남편의 뒤를 따라 간 곳은 병원이었다. 산부인과에 도착한 남편이 의사와 뭐라고 의논하더니 영옥씨를 향해 손짓했다. 중국말을 모르니 의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철컥철컥하는 수술도구소리와 함께 아래부위가 따끔따끔하는 아픔이 느껴졌다. 주먹을 꼭 쥐고 마음속으로 엄마를 수십 번 불렀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 3개월 만에 생리가 나왔다. 중국에 와서 잘 먹어서 일찍 시작한다고 생각했지 그날 수술의 후과라고는 예견치 못했다."고 말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날 수술은 난소난관에 가느다란 관으로 약물을 통과시킴으로써 생리도 빨리 생기게 하고 임신 성공율을 높이기 위한 수술이었다는 것. 훗날 남편은 "나이도 어린 네가 30년이나 이상인 나를 버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수술을 했다. 아이가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타산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탈북자 이현옥(25)씨는 자신도 중국에 와서 이 수술을 강요받았다고 했다. 17살되는 이씨를 돈으로 산 사람은 턱밑에 커다란 혹이 있는 장애인이었다. 현옥 씨는 당시 생리가 없는 상태였고, 시부모들이 병원에 가서 강제적으로 난소난관 통과수술을 시켰다고 증언했다.

    그는 "남편의 얼굴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망가려고 마음먹었다가도 엄마 없이 자랄 아들이 마음이 걸렸다. 결국 자식이 커가는 모습에서 마음속 위안을 얻으며 감옥 같은 장애인 집에서 수년간 버티어왔다"고 말했다.

    부모들의 관심 속에 살아야 할 어린 소녀들이 물건처럼 중국에 팔려가야만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오늘의 북한 현실이다.

    이현옥 씨는 "나의 청춘시절은 돈에 팔린 순간에 이미 사라져버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북한청소년들이 지금도 중국에 돈에 팔려간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내가 받았던 수술을 강요받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 = 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