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고 물리는 亂打 민주주의

     

  •  현직 경찰관이 정치인처럼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부의 판결을 나무란다.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재판결과...”
    현직 판사가 대통령을 향해 쌍욕을 날린다.  “가카 xx 짬뽕...”
    국회의원이 사법부가 제 뜻에 맞지 않는다고 폭언을 한다.
    “유신 사법부...” “대통령, 당신이 시켜서 그런 거지? 물러나라"

    이런 걸 대체 무슨 민주주의라고 해야 하나?
    3권 분립? 아니다.
    3권 분립은 각자의 몫을 하라는 것이지,
    남의 몫을 욕보이라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건 ‘난타(亂打) 민주주의’라 해야 맞을 듯 싶다.

      ‘난타 민주주의’가 생긴 까닭은 자명하다.
    공직자들이 분수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이 사법, 행정 쪽보다 높다고 자만한다.
    “판검사? 누가 그렇게 판결하라고 했어?”
    “대통령, 당신이 그렇게 시킨 거지? 물러가라.”

    일부 법관들은 통념의 잣대를 무시하고 자기 잣대대로 판결한다.
    ”김일성 묘소 참배? 내말이 법이다. 참배해도 좋다. 동방예의지국이니까."
    일부 공무원들은 아예 ‘속내 직업’을 드러낸다. “나는 공무원 이전에 안티 ..”

      입법 사법 행정 공직자들이 이렇듯 자기 분수를 넘는 것은 다 정치와 연관이 있다.
    1987년의 민주화 이전엔 공직자들이 정치 끗발들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분수를 넘었다.
    1957년의 지방선거 때 전라북도 정읍(井邑)의 경찰은 운반 중이던 투표함을 통 째 바꿔치기 해버렸다. 자유당 후보를 부정당선 시키기 위해서였다. 하라면 해야 하는 게 공무원이었기에 일선 경찰로서는 분수를 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 상층부야 물론 출세를 위해 공모했지만.

      1987년의 민주화 이후엔 양상이 달라졌다.
    이 시기엔 공무원 일부가 자발적으로 정치화를 했다.
    그리고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분수를 넘었다.
    직분을 어기고 특정 정파와 손잡기, 손 내밀기, 줄서기, 줄 대기를 했다.
    경찰, 검찰, 정보기관, 법조, 행정 공무원 일부는 외부 집단들의 은밀한 내통자로,
    정치운동의 공공연한 동업자로 발 벗었다.

       이들은 각급선거에서 공천이라도 받을까 해서,
    줄 댄 쪽이 집권하면 높은 자리로 승진이라도 할까 해서,
    직장에서 습득한 정보를 넘겨주거나 음습한 공작정치의 행동대 노릇을 했다.
    정읍 투표함 바꿔치기를 폭로한 박재표 순경이 양심적 제보자(whistle blower)였다면,
    이들은 반대급부를 노린 ‘기획가’라 할 수 있다.

      이들 ‘기획가’들의 모습은 근래에 있었던 일련의 사태들에서 실감나게 간파할 수 있었다.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미행과 감금, 댓글정국, 원세훈 공소장변경, 채동욱 혼외아들 의혹,
    김용판-권은희 ‘총질’ 등, 모든 드라마엔 항상 여, 야로 쏠린 공무원들의 정치적 촉수가
    음모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무대 뒤 음모 뿐만은 아니다.
    정치화 된 공무원들은 무대 전면(前面)에서도
    ‘문화혁명’의 연기인(演技人) 노릇을 곧잘했다.
    일부 신진세대 공무원들은 관직에 들어와서도
    정치운동을 하기 위해 위장취업이라도 했다는 양,
    시도 때도 , 좌충우돌 하고, 저돌적으로 받고, 직장질서를 깨고,
    돌출 해프닝으로 관객의 이목을 끌려한했다.
    전문직 종사자라기보다는, 마치 무슨 스타라도 된 것 같은
    우월의식으로 들뜨고 기분 내는 모습이었다.

      이런 처신은 공무원 각자가 자신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제멋대로’ 주의라 할 수밖에 없다.
    기회주의적인 상층부는 이런 럭비공 수하들을 딱 부러지게 다잡지 않고 적당히 지나치려 한다. 무사안일인 셈이다. 상층부가 그러는 한 ‘권은희 신드롬’은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난타 민주주의’를
    여, 야 정치권이 더 해라, 더 해라, 부추겨 왔다는 사실이다.
    새누당은 ‘광우병 투항’ 이후 리더십을 내던지고 포퓰리즘을 껴안았다.
    이런 맹물 집권당 아래선 공무원의 정치화가 더 쉬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김용판 무죄판결이 나자 ‘황교안 해임’ ‘특검’을 들고 나왔다.
    판검사들더러 자기들 입안의 혀처럼 놀라는 압박이었다.

      근대관료제는 위계질서, 매뉴얼에 따른 근무, 세분화된 전문성,
    비(非)인격성, 성과에 따른 인사(merit system) 등이다.
    이런 발전된 관행이 B학점만큼만 된대도,
    정치적 인사(spoil system)가 필요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그럼 우린 뭘 먹고 살라느냐?”며 아우성칠지 모른다.
    그러나 신경 쓸 것 없다. 그래서 A학점은 아예 바라지도 않으니 말이다.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2014.2.18 전재>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