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올림픽 출전을 원했다. 아버지와 의논하면서 나는 오직 올림픽만을 원한다는 진심을 전했다"며 "러시아는 한국보다 훨씬 좋다. 기반시설도 좋고 관리도 잘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것은 내가 쇼트트랙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안현수, 러시아명 빅토르 안 인터뷰 中)
    토리노 이후 대한민국에서 잊혀진 피겨 제왕 안현수, 그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날아온 것은 결코 '나만 몰랐던 이야기' 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빙상연맹, 특히 쇼트트랙 팀만 몰랐던 이야기다. 하지만 국민 모두는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는 정도를 넘어 안현수를 향해 소리 없는 응원을 보냈다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다수의 국민은 안현수가 러시아에 귀화했을 때 부정적인 시선보다는 안타까운 마음과 애착이 교차했다. 그를 '변절자' 로 보지 않고, '희생양' 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안현수는 부상과 소속팀 해체, 파벌 갈등, 국가대표 선발전 배제 등 복합적인 문제가 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본의 아니게' 쇼트트랙으로부터 멀어져야 했다. 한체대와 비한체대 출신 간의 파벌, 일명 '짬짜미' 로 통하는 밀어주기 등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했던 안현수는 러시아에 새 둥지를 텄고, 이를 악물고 비상의 준비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아니 빙상연맹은 안현수에 대해 큰 걱정이 없는 눈치였고, 언론도 전성기가 이미 지났다는 평과 함께 안현수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러시아 또한 단일국가로 올림픽에 참가한 이래 쇼트트랙에서 메달을 획득한 적이 없었기에, 안현수는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체육계와 언론의 큰 착각이었고, 기여코 안현수는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며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토리노 동계 올림픽의 영웅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국적이 한국에서 러시아로 바뀌었을 뿐, 안현수라는 이름에서 빅토르 안으로 개명했을 뿐, 가는 세월도 그의 질주를 막을 수 없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만 할 것이다.
    불미스러운 일, 혹은 의혹으로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 우리나의 빙상연맹이라 '가정' 한다면, 안현수라는 부메랑을 막을 비책을 세우는 것도 그들이 해야 할 몫이었다. 후진양성에 있어 한국 쇼트트랙은 오만방자했다. 안현수가 절치부심하며 칼날을 갈 때,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노진규의 부상으로 인한 불참이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지만,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그를 대체 할 선수가 왜 이번 소치 동계 올림픽에는 없단 말인가? 빙질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 선수끼리만 경기를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답 할 가치도 없는 변명이다. 안현수를 놓친 것은 오히려 이해 가능한 대목일 수도 있다. 어차피 안현수가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지금 언론이 내릴 수 있는 평가는 "안현수, 8년 전의 기량은 온데간데 없어", "빅토르 안, 그는 이름처럼 승리하지 못했다" 등 자극적인 기사와 함께 과거의 추억 정도로 치부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정말 통탄 할 일은 안현수라는 부메랑을 막을 방패도, 쳐낼 창도 우리나라엔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염려되는 것은 동계 올림픽이 끝나는 순간 빙상연맹과 쇼트트랙에 대한 관심이 사그러들지 않을까, 빙상연맹의 체질 개선은 고요속의 외침으로는 끝난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경우는 다소 다르지만, 1990년 벨기에 주필러 리그의 축구 선수였던 장 마르크 보스만의 이름에서 따온 '보스만 룰' 처럼 일명 '안현수 룰' 에 대한 제정이 시급하다고 본다. 물론 보스만 룰은 계약이 끝난 선수는 구단의 동의와 이적료에 상관없이 자유 이적이 가능한 룰이기에, 쇼트트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안현수 룰' 의 취지는 제 2의 안현수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룰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이미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 양궁 대표팀은 무한 경쟁과 투명성, 그리고 세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빙상연맹은 보스만 룰에서 언급된 '선수 보호' 와 양궁에서 보여준 투명성과 아름다운 경쟁의 미덕을 쌓아야 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체질 개선은 작은 것 하나를 개선하면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과거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사진 = 연합뉴스 / 안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