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변호인> 속
    한국은 지옥(地獄)


    [映畵評]
    이 섬뜩하고 살벌하고 음산한 엉터리는

    불가사리처럼
    국민들의 한 줌 남은 조국에 대한 긍지와
    애국심마저
    집어삼키고 있다
    .



    金成昱 /한국자유연합 대표, 리버티헤럴드 대표   

     


  • 1.
    영화 <변호인>을 보았다.
    영화는 1981년 일어난 속칭 [부림사건](釜林事件)이 배경이다.
    플롯은 부림사건이 공권력에 의한 고문(拷問)조작·용공(容共)조작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한국은 지옥(地獄)이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친구들과 공부하던
    순진한 [꽃미남] 총각이 잡혀간다.
    아들의 행방은 엄마도 모른다.
    음산한 부둣가 안가에 갇혀 몽둥이 찜질을 당한다.
    허위자백을 토해내고 알리바이는 조작된다.
    구타(毆打)는 물론 물고문-전기고문-통닭구이 온갖 고문이 자행된다.
    행방불명된 지 1달이 넘어 어머니가 아들을 찾지만,
    구치소는 면회도 허용치 않는다.
    밥을 줄 때도 있고 안 줄 때도 있다.
    더러운 천을 청년에 뒤집어씌운 채,
    라면국물을 입 안에 부어 넣는 장면도 나온다.
     
    경찰은 고문조작을 담당하고,
    검찰은 용공조작을 담당하며,
    판사는 이들을 비호한다.
    악(惡)의 축이다.

    이 사악한(?) 세력은 말끝마다 “빨갱이” “애국” “반공”을 되뇌어 말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는 숙연해진다.

    오직 노무현 역할을 맡은 [변호인] 송강호만이,
    이 모든 불의(不義)와 야만에 맞서 싸운다.
    박원순 시장이 말하는 것처럼,
    한국은 “암살·학살, 고문과 처형, 재산 약탈과 몰수가 이뤄진 암흑시대”다.
    북한과 비할 바가 아니다.
    오직 변호인만이 흑암을 깨는 전사(戰士)로 나온다.
    모든 이의 희망이다!
     
    2.
    월요일 오후 5시30분 필자가 앉았던 극장 내 관객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앞 부분 1시간은 지루했고,
    다음 1시간은 황당했다.
    이런 영화에 1,000만 가까운 관객이 몰렸다고 한다.
    의아했다.
    이 사회 팽배한 거짓과 선동의 만연(蔓延)을 보여주는 것인가?
      
    <변호인>의 가장 큰 문제는 일반화(一般化)다.
    고문조작·용공조작이,
    국가보안법 관련, 모든 공안사건에 해당된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안보와 공안을 다뤄 온 모든 공무원들은,
    권력, 명예, 또는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힌 악당들로 폄훼된다.
    고문을 일삼는 경찰은 “부산에서 뭐 하나 만들어봐야지”라고 뇌까린다.
    영화에 따르면,
    현대사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종북주의 세력 역시
    실체 없이 조작된 것이다.
    이석기도 그 범주에 들 것 같다.
     
    [부림사건]을 고문조작·용공조작 사건으로 다룬 것은 본질적 문제다.

    당시 담당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는,
    이 사건을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명백한 의식화 교육사건”으로 정의한다.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공산주의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대법원 확정판결 역시,
    피고인의 [고문에 의한 허위진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현 체제를 뒤집어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건설하려는 것”
    으로
    판시했다.
      

    [부림사건]은 현재도 여전히 유죄(有罪)다.
    2009년 부산지법 형사 항소 3부는,
    이 사건 재심(再審)판결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유죄판결을 유지했다.
    고 모씨 등 다른 관련자 5명이 또 다시 재심 청구를 한 사건은,
    2월13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부림사건]의 유죄판단은,
    사건 주역이 정권을 잡았던 노무현 정권 당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등도 뒤집지 못했다.
    “명백한 공산주의 운동이었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도 공론화할 수 없었다”는 것이
    고영주 변호사 설명이다.
      
    고영주 변호사는 당시 피의자였던 이상록의 당당한 항변을 전한다.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
    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원시공산사회에서 고대노예제 사회-봉건사회-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공산사회가 된다는 [설교]를 한참 했다”
    고도 말한다.

    그저 수줍게 눈물만 흘리는 영화 <변호인>의 어린 죄수들과 정반대다.
     
    3.
    통상 좌익 운동권 세력은,
    구속된 후 소위 공판투쟁(公判鬪爭)을 벌인다.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알리고 선전·선동하는 것이다.
    이때 떠드는 논리가 [고문조작] [용공조작] 이다.
    “선량한 시민을 잡아다 고문을 가했고
    공산주의·사회주의·종북주의자로 조작했다”
    고 설파한다.
     
    [부림사건] 당시 피고인도
    “고문” 주장을 했었고,
    지금도 일부가 하고 있으며,
    영화도 그것이 주요 테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부인했고,
    담당 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도 부인한다.
     
    일반인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전자(前者)가 사실이라면
    80년대 대한민국은 일제(日帝)때보다 못한 지옥이었고,
    당시 경찰·검찰·판사·안기부 직원은 모두 악마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4.
    필자가 취재한 사실은 이렇다.
    80년대에도 고문여부는 재판에서 자유롭게 다퉈졌고,
    고문에 의한 진술은 증거능력이 부인됐다.
    1985년 8월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으로부터 고문 받았던
    고(故)김근태 의원이 대표적 사례다.
    고문 받은 사실은 재판과정은 물론 언론에도 취재됐다.
      
    高변호사는,
    “공안검찰의 경우
    정치사범이나 공안사범을 잘못 건드리면,
    그야말로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소위 [칙사대접]해가면서 조사했다”
    고 말한다.

    당시 운동권 출신들 증언도 高변호사 주장과 일치한다.
    검사들도 [앞날]을 생각해야 한다.
    엄연히 이른바 민주화 세력인 야당과 비판적 집단인 언론도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고문과 조작은 북한이나 일제시대 때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80년대 부산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했었고
    [부림사건] 인맥과도 절친했던 A씨는,
    영화 변호인의 고문조작·용공조장 주장 자체가 조작된 것이라 말했다.
    “공안사건에서 일부 가혹행위가 있었지만,
    그나마 풋내기 학생을 상대로 한 고문은 상상키 어려웠다”
    고 일축했다.
      
    고영주 변호사는,
    영화 <변호인>을 “엉터리”라고 말했다.

    이 섬뜩하고 살벌하고 음산한 엉터리는,
    불가사리처럼 국민들의 한 줌 남은 조국에 대한 긍지와 애국심마저 집어삼키고 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和解)가 절실한 이 시대에
    [노무현의 망령(亡靈)]을 불러내,
    근거 없는 분열과 증오심을 선동한다.
    음지(陰地)에서 나라 지키는데 인생을 바쳐온 이들을 버러지로 짓밟는다.
     
    사랑과 화해와 진실을 쫓는 시민의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