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빛낼 성화주자,

    젊은이들을 생각한다


    로버트 김


  • 지난 10월, 우리 부부는 한 달의 일정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고국에 올 때마다 나는 촌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층 건물들이 얼마나 높은지 위를 보려 해도
    내 고개가 말을 듣지 않을 정도다.
    상점 간판들은 나도 알 수 없는 외국어로 되어 정신이 없고,
    상상을 초월하는 높은 물가 역시  나를 놀라게 한다.
    거리를 메우다시피 한 자동차들 중에는
    미국 중산층도 갖기 어려운 고급차들도 많이 눈에 띈다.

    잠시 상념에 빠져든다.
    올해로 내가 고국을 떠나온 지 47년이 되었다.
    1966년 당시는 고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유학을 가려면 대학과정을 이수하고, 남성은 병역의무를 마쳐야 했다.
    또한 정부가 실시하는 영어시험과 국사시험에 합격해야 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비자의 경우, 외국대학원의 입학허가서가 있어야 받을 수 있었다.
    외국생활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연령,
    그리고 기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정부가 유학생에게 허용하는 외화는 50 달러로 기억한다.
    외국에 가면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알아서 공부하라는 식이었다.
    다들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집안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아예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학생은
    그곳에 가서 지금 말하는 [알바]를 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랬다.

    주말에는 월세집에 새 세입자 입주 전 페인트칠과 청소를 했고,
    밤에는 식당에서 웨이터, 병원에서 환자가 퇴원한 병실 청소를 하며
    돈을 벌어 공부했다.
    듣기로는 택시 운전을 한 유학생도 있었다.
    세간 살림은 버려진 물건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을 주워다가 사용했다.
    가끔 새것이나 다름없는 물건을 발견하면
    얼마나 행복했던지.
    부족함 속에서도 작은 것 하나에 더없이 풍요로웠다.

    한국에 올 때마다
    그전보다
    더 높아지고,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치열해지는
    그 변화무쌍함에 나는 늘 놀란다.
    한국은 분명 현재진행형의 과정에 있다.

    한국에서는 G20 회원국으로서 자부심이 큰 것 같다.
    물론 G20이 갖는 세계적인 영향력은 크고,
    한국이 경제규모로만 보면
    세계 경제의 현안을 논의하는 위치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자아도취 이전에
    과연 우리가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고국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숙소 근처를 30분 이상 걸었는데,
    그 때마다 인도에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어
    우리 국민들의 민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나 사람이나 교통신호를 안 지킨다.
    보행신호인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길을 건너는데도
    조금의 틈이 있으면 차가 지나간다.
    빨간불인데도 차가 없으면 그냥 길을 건넌다.
    자동차를 인도에 세우는 것을 예사로 안다.
    길에다 침을 뱉는 사람도 여럿 봤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기본적인 질서가 바로 서지 않은 이런 민도로는
    선진국 진입은 어렵다.

    47년 전, 고국을 떠나던 26살 청년이던 나에게는
    어려운 고국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부채감이 있었고,
    어떻게든 성공해서 고국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삶을 지탱해준 것 같다.
    적어도 우리 세대에는
    오늘을 열심히 살면 내일은 더 나아진다는 믿음 같은 게 있었고,
    그래서 적금을 붓듯 희망통장을 불려나갔던 것 같다.

    마침 올해가 [광부-간호사 파독] 50주년이라고 한다.
    가난한 조국과 가족을 위해
    서독으로 갔던 수많은 광부와 간호사들은
    지하 막장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병원에서 죽은 사람의 몸을 닦는 밑바닥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렇게 벌어서 고국으로 송금한 외화는
    우리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 젊은 세대는 그런 희생과 정성 속에 잘 성장했다.
    그런만큼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리라 믿는다.
    나는 한국 방문 중
    밤에 서울의 한 대학가를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주중이었음에도 술집이 붐비고
    밤늦도록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렇게 먹는 곳이 많은데 놀랐다.
    미국의 대학들은
    보통 도시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밤문화라는 것이 거의 없다.
    내가 다니던 학교도 도시와 거리가 멀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몇 가지만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친구들의 사치와 씀씀이를 모방하지 말고,
    지식으로 경쟁하라.
    술자리에 어울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지식 연마에 시간을 투자하라.
    자신이 사회와 국가에 쓰여질 데를 생각하라.
    부모를 존중하되,
    의존하지 말라.
    대한민국을 빛낼 성화주자,
    젊은이들의 건투를 기원한다

    로버트 김(robertkim04@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