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아파트 주차권 삽니다"…'당근'에 아파트 주차권 구매글아파트 관리규약에 위반됨에도 거래 이어져…주민들 불편 전문가들 "규제 앞서 형평성 있는 시스템 구축 선행됐어야"
  • ▲ 공영주차장 차량 5부제 안내 현수막. ⓒ임찬웅 기자
    ▲ 공영주차장 차량 5부제 안내 현수막. ⓒ임찬웅 기자
    정부의 공영주차장 차량 5부제 시행 이후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아파트 주차권을 거래하는 사례가 잇따라 목격되고 있다. 

    5부제로 차량 운행이 제한되는 날에도 업무상 이유로 차를 쓸 수밖에 없는 시민들이 도심 아파트 입주인 명의를 빌리거나 방문객으로 등록하는 방법으로 주차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거래가 아파트 자체 관리규약은 물론 공동주택 관리법에도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준비 없는 5부제 시행이 시민들에게 법 위반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 ◯◯아파트 주차권 삽니다" 구매글 잇따라 

    15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최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에는 서울 곳곳에서 아파트 주차권을 구매하겠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이용자는 지난 12일 "남가좌동 ◯◯아파트 주차권 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해당 이용자는 "5월부터 8월까지 매주 월요일 입차 후 화요일 오전 출차할 수 있는 주차 공간이 필요하다"며 "남는 주차 등록이나 주차권을 공유해줄 입주민을 찾는다"고 적었다.

    또다른 이용자는 지난 13일 "대림동 월 주차 자리 구합니다"라는 게시글을 올렸고, 약 2주 전에는 강서구 등촌동의 특정 지역 지도를 표시한 뒤 "사진 표시된 부분 근처 월주차 자리를 구한다"는 글도 게시됐다. 1주 전에는 용산구 한강로동에서도 특정 아파트 이름을 언급하며 "월주차권 삽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일부 게시글은 가격을 따로 적지 않은 채 "가격 제시해달라"거나 "월 단위로 꾸준히 거래 가능하신 분 선호"라고 적어 장기거래를 시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 ▲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에 올라온 주차권 구매 글. ⓒ당근 애플리케이션 캡처
    ▲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에 올라온 주차권 구매 글. ⓒ당근 애플리케이션 캡처
    ◆주차권 거래 '공동주택 관리법' 위반…주민들 불편

    이 같은 거래는 대부분의 아파트 자체 관리규약과 충돌할 여지가 크다. 서울시 내 상당수 아파트들은 '서울시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을 기반으로 한 자체 관리규약을 수립해 따르고 있다.

    서울시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 85조는 "입주민이 공동주택의 주차장을 임대하고자 할 경우에는 ▲임대기간 및 임대조건 ▲임대할 주차대수 및 위치 ▲이용자의 범위 및 이용조건 ▲기타 필요한 사항을 입주차대표회의 의결로 결정하고 전체 입주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은 뒤 관리주체를 통해 결정된 사항을 공지해야한다"고 정하고 있다. 

    공동주택 관리법 시행령 14조 역시 주차장 등 공용시설 운영 기준을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른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지않고 아파트 주차권을 임의로 거래하다가 적발될 경우 관리주체에 의해 업무방해죄로 고소를 당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이 청구되는 등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주차난이 심각한 일부 단지에서는 외부 차량까지 유입될 경우 입주민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거주하는 한 아파트 주민은 "주차 공간도 부족한데 모르는 외부 차량이 계속 들어와 불편이 크다"며 "외부 차량으로 보이는 차가 있으면 그때마다 관리사무소에 계속 민원을 넣고 있다"고 토로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아파트 관리규약은 내부 수칙인 만큼 위반 사실만으로 즉각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입주민이 영리 목적으로 관리주체를 속여 외부 차량을 등록하는 행위가 반복된다면 업무방해죄 등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 지난달 8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영주차장 진입로에서 수요일 제한 대상(끝번호 8번) 차량이 주차 관리 직원에게 진입을 제지당하고 있다. ⓒ임찬웅 기자
    ▲ 지난달 8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영주차장 진입로에서 수요일 제한 대상(끝번호 8번) 차량이 주차 관리 직원에게 진입을 제지당하고 있다. ⓒ임찬웅 기자
    ◆준비없는 5부제 … "자율적 참여 유도하는 게 바람직"

    일각에서는 공영주차장 5부제 시행 과정에서 현실적인 대체 수단 마련이 부족했던 점도 주차권 거래를 늘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무상 차량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이나 출장 차량 수요는 여전한데 대체 인프라 확보 없이 규제부터 시행되면서 결국 음성거래를 늘리는 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적인 조항과 처벌 위주의 규제를 도입하다 보니 주차권 거래 같은 음성 마켓이 생겨난 것"이라며 "규제에 앞서 형평성 있는 시스템 구축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어 "생업을 위해 차량 운행이 필수적인 경우나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교통약자들을 위한 예외 조항을 촘촘하게 마련해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고준호 한양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정부의 규제를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라며 "이러한 현상에 대해 신속한 현장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향후 유사한 정책을 시행할 때는 이번 사례를 활용해 발생 가능한 부작용에 미리 대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