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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소련이 서방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제 상황이라고 판단해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다는 내용을 담은 영국 정부 기밀문서가 공개됐다.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의 핵무기 반대 운동 단체인 'NIS'(Nuclear Information Service)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1983년 11월 실시한 대규모 군사훈련 '에이블 아처 83'(Able Archer 83)관련 정부 기밀문서를 정보공개법에 따라 입수했다.
해당 문서는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 등에 '에이블 아처 83' 훈련에 대한 소련의 반응을 보고한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이 훈련은 나토가 병력 4만명을 동원,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 소속 국가들의 동유럽 침공에 이어지는 핵전쟁 상황을 가정해 실시됐는데 소련이 이를 '훈련을 가장한 실제'로 판단했다는 것이 기밀문서의 요지다.
당시 훈련은 동서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치러졌다. 그해 초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한 데에 이어 같은 해 9월 대한항공 보잉 747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격추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때문인지 소련은 이 훈련 당시 핵무기를 탑재한 전투기 10여대를 동유럽에 배치하고 SS-20 미사일 70여기와 핵잠수함을 대기시키는 등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서방 정보당국은 애초 이를 소련의 자체 군사훈련이라고만 생각했으나 이후 소련이 진짜로 훈련을 실제 상황으로 오인했다는 정황을 파악했다.
영국정부 정보 자문기관인 공동정보위원회(JIC)는 보고서에서 "소련 당국이 에이블 아처 훈련이나 다른 핵관련 훈련을 진짜 위협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
관련 내용을 대처 총리에게 보고한 로버트 암스트롱 당시 행정장관도 "주요 공휴일 기간에 실제 군사활동과 경보를 발동했다는 점에서 소련의 반응이 훈련상황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는 나토가 군사훈련을 가장해 공격할 것을 소련이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기밀문서에는 대처 총리가 이런 보고에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면서 "소련이 서방의 의도를 오인해 과잉반응을 보이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미국과도 이 문제를 논의하라"고 지시했다고 기록돼 있다.
영국 외무부와 국방부는 이에 따라 나토가 군사훈련 관련 내용을 소련 측에 정기적으로 공지하자고 제안하는 내용의 공동 문서를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NIS의 피터 버트 대표는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대처 정부가 냉전을 끝내야 할 필요성을 깨닫고 이를 동맹인 미국에 설득하게 된 시점에 대한 것으로 이는 현대사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