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국회에선 왜 외국정상 연설이 드물까>
    朴대통령 美의회 연설엔 환호…영국방문 때도 기대
    방한한 모잠비크 대통령은 방청석서 우리연설 청취

    국회 '국제화' 통해 권위·품격의 장소로 거듭나야

     # 장면1.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정상으로는 여섯 번째로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장에서 연설했다. 박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 등을 역설하는 내용으로 34분간 영어로 연설해 40차례의 박수를 받았다. 국내의 반응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 장면2. 이달 초 일본을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한 뒤 참의원 본회의장에서 중ㆍ참 양원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을 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해 "고통이 있더라도 과거에 선을 그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의회 연설이 아니었으면 말하기도 듣기도 어려운 기회였다.

    # 장면3. 이달 초 박 대통령을 예방한 아르만도 게부자 모잠비크 대통령이 '특별 손님'으로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찾았다. 연설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청석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강창희 국회의장의 소개로 환영의 기립박수를 받은 게부자 대통령은 "나도 국회의원 출신"이라며 "본회의를 보니 고향에 온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지만, 자신이 원했던 국회연설이 성사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모잠비크의 게부자 대통령은 왜 본회의장 연단이 아니라 방청석에 앉았다가 돌아갔을까?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의회에 외국의 정상들이 가서 연설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일례로 미국은 미 의회가 구성된 지난 1874년 이래 139년 동안 외국 정상이나 정상급 인사가 연설한 횟수가 총 112차례에 이른다. 한해에 거의 한명 꼴로는 외국 정상에게 연설기회가 주어졌다는 의미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이승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까지 총 6명이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멕시코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다.

    영국의 경우도 여왕이 1년에 2차례에 한해 국빈(state visit)으로 외국 정상을 초청하는데, 이 경우 영국 의회에서 연설할 기회가 주어지므로 외국 정상이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연단에 선 사례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가을에 영국을 방문하게 되면, 관례에 따라 현지에서 의회 연설을 할 기회를 갖게 될 공산이 크다.

    역으로 주요 선진국 정상들이 외국 국회에서 연설하는 것은 그 나라를 중시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의미가 되므로 각국 의회는 주요국 정상을 의회에 초청하려고 힘을 쏟기도 한다.

    지난 2010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인도 방문시 의회 연설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을 견제할 현실적인 힘으로 인도를 인정한 측면이 있었고, 인도는 의회연설에 오바마를 초청해 주변 라이벌인 중국과 파키스탄과는 격(格)이 다름을 보여주는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방한하는 외국정상의 국회 연설이 그야말로 가물에 콩나듯 한다.

    지난 2000년 이후 국회 연설은 고작 5차례에 그쳤다. 외국 정상이 아니라 국제기구 수장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지난해 연설을 여기서 제외하면 그나마 4건에 불과하다.

    2009년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2006년 압둘 칼람 인도 대통령,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2001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한 게 고작이다.

    이에 앞서 1990년대에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19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1993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1995년) 등 외국 정상의 국회 연설이 몇 차례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선진국에 견주어 한국 국회에서 이뤄지는 외국정상의 연설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를 놓고 한국의 경제볼륨은 세계 13위로 도약했지만, 의회민주주의는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치권과 학계 전문가들은 한국이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이기 때문에 의회주의가 발달한 국가에 비해 의회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행정부를 중심으로 정치와 국정운영이 이뤄지는 한국에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는 별도로 의회를 찾아 연설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잘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에서 연설함으로써 한국의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고 한국 국민과 소통할 수 있으며 권위를 인정받을 만큼 우리나라 국회 위상이 높아보이지 않는 점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회를 찾는 외국 정상의 발길이 뜸한 데는 '몸싸움 국회' '해머국회'의 모습이 해외토픽감으로 소개되는 등 그간의 선진화되지 못한 의회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따끔한 지적도 나온다.

    재임 시 미국, 러시아, 프랑스 대통령을 의회 연설에 초청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국회가 부패정치인이 숨는 피난처같은 공간이 되거나 폭력국회, 식물국회 소리를 듣다보니 권위가 떨어지고 있다"면서 "국회가 국민의 존경을 받고 영향력이 있어야 외국 국가원수들이 국회에 와서 연설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의회 차원의 외교 노력을 활발히 하려는 분위기에 맞춰 앞으로 외국 정상이 '민의의 전당'인 의회에서 연설하는 것을 활성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달 박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했던 새누리당 유기준 최고위원은 "외국 정상들의 의회 연설은 그들이 우리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를 깊이 새길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양국 간 친선 강화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외국 정상의 국회 연설을 활성화하려면 국회 연설 초청 자체를 '영예로운'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 의회 합동연설은 '외국 정상에게 제공하는 최고의 예우'라는 의미가 더해져 연단에 서는 것 자체 만으로 큰 영광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의회 연설이 양국 관계에 있어 촉매제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각에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요국 이외의 다른 국가에도 의회의 문호를 적극적으로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 방한해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던 모잠비크 대통령은 의회 연설을 희망했으나 연단에 서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내영 교수는 "아프리카의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서 연설하는 게 그 나라와의 외교와 국가 간의 관계에 도움이 된다면 국회가 연설의 장이 돼 줄 수 있다"며 "우리 외교무대를 제한적으로 보지 말고 세계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민국 국회도 이제 국제화를 통해 '권위와 품격'의 장소로 거듭나야 할 때가 왔다는 조언과 지적에 귀를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