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 법원통신망에 비판 글 올려“대법원 교조주의에 빠져 있어, 현실 무시” 직격탄 하급심 법관이 대법원 판결 공개비판, 사실상 처음
  • ▲ 대법원 자료사진.ⓒ 연합뉴스
    ▲ 대법원 자료사진.ⓒ 연합뉴스


    축산업계나 마트 축산코너 매장을 술렁이게 할 ‘가짜 횡성한우’ 사건이 뜻하지 않게 사법부를 뒤흔들고 있다.

    하급심이 유죄라 판단한 사건을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 사건에서, 원심 재판을 맡은 부장판사가 대법원의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파문은 시작됐다.

    하급심 법관이 자신이 담당한 사건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을 공공연히 비판한 것은 보수적인 법원 풍토 속에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법원 직원들이 모두 보는 내부 통신망에 비판적 내용의 글을 올렸다는 방식상의 파격에 이어, ‘교조주의’라는 민감한 표현을 쓰는 등 비난의 수위가 상당해 사법부를 충격에 빠트리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대법원은 문제의 글을 올린 법관의 행위가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검토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대법원이 가장 중시하는 상고심 판결의 신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부장판사가 더욱 강도 높은 행보를 보일 수도 있어 대법원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김동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43, 사법연수원 25기)는 6일 법원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한편의 글을 올렸다.

    ‘대법원의 횡성한우 판결 소감 – 무엇을 위한 판결인가? 대법원은 교조주의(敎條主義)에 빠져 있다’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에서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을 거세게 비난했다.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 법원으로서는 불가능한 조사방법을 판단기준으로 제시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는 작심한 듯 문제의 글을 통해 대법원이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날 선 비판을 거침없이 가했다.

    “사료, 소들을 머물게 한 장소, 건강상태 등을 개별적으로 조사해야만 ‘사육행위’와 ‘단순한 보관’을 판별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논거는 언뜻 볼 때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 조사방법은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해당 농협이 소비자들에게 판매행위를 한 것은 2006년의 일이다. 6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미 쇠고기로 소비된 수백 마리 소들에게 먹였던 사료, 보관 장소, 당시 소들의 개별적인 건강상태 등을 어떻게 조사할 것이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어 김 부장판사는 법관이 법률의 형식적 의미에만 집착해 ‘이상한’ 결론을 내린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 떨어질 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판사들이 법률에 나열돼 있는 문구들의 형식적 의미에만 집착하거나 죄형법정주의 또는 입증책임의 이념만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에 맞지 않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점점 더 멀어질 것”

    사법부 내부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많은 국민들이 어떤 판결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서 비판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 ‘우리 판사들이 형식논리나 교조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김 부장판사의 ‘항명’을 촉발한 ‘가짜 횡성한우’ 사건은 그가 춘천지법 형사항소부 재판장으로 있을 때 맡은 사건이다.

    지난 2월 농협조합장 김모씨 등 11명은 다른 지역에서 낳은 한우를 횡성에서 1개월 이상 키운 뒤 도축해 ‘횡성한우’로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김 부장판사는 조합장 김씨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는 등 일부 유죄판결을 내렸다.

    “다른 지역 한우를 횡성으로 들여와 2개월 안에 도축했다면 ‘사육’이 아니라 단순한 보관”

    그러나 지난달 25일 대법원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김 판사의 유죄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단순한 도축의 준비행위인지 사육으로 볼 것인지는 소의 종류와 연령, 이동 후 도축시까지의 기간, 제공된 사료의 종류와 제공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기간을 임의로 설정해 일률적으로 원산지 표시 규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김 부장판사가 공개적으로 대법원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그에 대한 징계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부에선 그의 행위가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충분히 징계가 가능할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강령 4조 5항은 법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