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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政조사’ 거부는
‘평양錄取錄’의 존재를 是認(시인)하는 것
李東馥
2007년10월 평양에서 남측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북측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사이에 진행된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 도중 두 사람 사이에 별도로 이루어진 비공개 단독 대좌(對坐)에서의 노무현 씨의 발언 내용이라고 정문헌(鄭文憲) 의원(새누리당)이 8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국정감사 석상에서 밝힌 것이 사실이라면, 특히 또 한 번의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그것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이 나라에서 ‘종북(從北)’ 성향의 대통령이 선출되었을 때 나라의 안보가 얼마나 위태로워 질 수 있는지를 새삼 인식하게 만드는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정 의원이 공개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씨의 행위는, 문화일보 윤창중 논설위원이 지적한 대로 “적국(敵國)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는 형법 93조의 ‘여적죄(與敵罪)’에 해당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당사자인 노무현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불귀(不歸)의 처지가 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노무현 씨의 발언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진위(眞僞)를 가려내고 아울러 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확보해 두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오는 12월19일 실시되는 제18대 대통령선거전의 양상으로 볼 때 이 나라에 또 다시 ‘종북’ 성향의 대통령이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정 의원이 공개한 내용에 대해 새누리당이 그 眞僞를 가리기 위하여 국회에서의 ‘국정조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에 대한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野圈)의 반응이다. 야권에서는 한 마디로 정문헌 의원이 공개한 내용이 “사실무근”으로 “대통령선거용 허위선전에 불과하다”고 일축(一蹴)하려 하고 있다. 2007년 노무현 씨의 평향행을 수행했던 이재정(당시 통일부장관), 김만복(당시 국가정보원장) 씨 등이 앞을 다투어 등장하여 “그때 노무현•김정일 사이에는 문제의 별도 대좌가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민주통합당의 박지원 대표는 새누리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에 대해 “반대”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야권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문제는 ‘진실(眞實) 게임’이다. 정 의원이 공개한 사실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만약, 그 내용이 ‘조작된 거짓’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들은 새누리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를 받아들여 문제의 ‘녹취록(錄取錄)’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노무현•김정일 사이에 문제의 ’별도 대좌‘가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되는 것이다. 이 ‘진실 게임’의 관건(關鍵)이 ‘녹취록’의 실재(實在) 여부인만큼, ‘국정조사’가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이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민주통합당은 문제의 ‘국정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 판을 치는” 오늘날의 정치 판국에서 이 같이 간단한 ‘국정조사’는 거부하면서 새누리당이 공개한 내용이 “조작된 거짓”이라고 일방적으로 우기는 그들의 주장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이 같은 민주통합당과 야권의 주장은 오히려, 역으로, “맞다. 그것이 사실이다”라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해도 시비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문제는 간단하게 넘어 갈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민주통합당의 문재인(文在寅) 후보가 취하고 있는 행보(行步)에 있다. 그는 과거 김대중(金大中)•노무현 정권 때 ‘햇볕정책’의 하수인(下手人) 역할을 담당했던 ‘통일부장관’ 퇴물(退物)들을 병풍으로 이용하면서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을 다짐하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對北정책을 답습(踏襲)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권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씨의 전철(前轍)을 되밟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을 갖지 아니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에 정문헌 의원이 공개한 내용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정조사’가 이루어져서 진실이 밝혀져야 할 절대적 필요성이 생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