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방영된 MBC스페셜 ‘IQ 210 천재 김웅용’이 화제를 낳고 있다.

    1970년대 초중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화제가 된 뒤 일본열도를 놀라게 했던 김웅용 박사(50). 현재 충북개발공사에서 사업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 살 때 한국어를 이틀 만에 모두 배웠고, 세 살 때는 그동안 쓴 글과 그림을 모아 책까지 출판했다. 5살 때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했고, 6살 때 일본 후지TV에 출연해 미적분을 풀어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김 씨는 이 무렵 일본에서 IQ테스트를 받았다. 200점 만점을 받아 테스트를 맡은 교수가 ‘측정불가’라며 10점을 더 높여줘 ‘IQ 210’이라고 알려지게 됐다.

    그의 소문을 들은 美항공우주국(NASA)는 김 씨가 8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초청했다. 김 씨는 미국에서 콜로라도 주립대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12살이 되던 1974년부터 NASA의 고다드 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철저히 이방인이었다고 한다. 10대 초반의 ‘아이’와 편하게 대화를 나눌 백인 성인도 없었고, 당시 미소 간의 우주개발 경쟁의 선봉에 있던 NASA에서는 그를 그저 ‘계산 잘 하는 특이한 아이’ 정도로만 취급했다.

    정서적인 지원과 안정이 필요한 사춘기였지만 김 씨는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나라를 위해 미국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신 이야기를 기억하며 참았다고 한다. 그러나 1978년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몇 년 뒤 김 씨가 한국에 돌아온 것을 알게 된 언론들은 그가 NASA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검정고시를 통해 지방대에 입학한 것을 놓고 ‘실패한 천재’ ‘어릴 적 천재가 성장하며 둔재’ 등으로 평가했다.

    그는 처음에는 대학교수가 되려 했지만 ‘IQ 210 김웅용’을 기억하던 사람들로 인해 되레 불이익을 봤을 정도라고 한다. 결국 대학교수를 포기한 뒤 자신의 전공인 토목공학 분야의 지식을 살려 충북개발공사에 입사하게 됐다고 한다.

    김 씨의 가족들은 “아빠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이 오히려 훨씬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 씨 또한 “천재라는 꼬리표를 이제 떼고 싶다”고 밝혔다.

    이 방송을 본 사람들은 ‘IQ 200이 넘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내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