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바일 투표라는 이름의 ‘얼굴 없는 난폭자’
-
- ▲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민주당 경선이 우습게 되는 배경에는 이른바 모바일 투표라는 ‘얼굴 없는 난폭자’가 도사리고 있다.
제도권 밖의 조직화 되고 조작(操作)된 군중이 제도권 안의 형세(形勢)를 치고 들어오는 블록버스터 액션물-.근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만으로는 국민적 대표성을 충분히 도출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갈수록 관료화, 과두(寡頭, oligarchy)화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참여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여론조사,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등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여기다 디지털 문명과 인터넷 기술이 합세하면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와 폐쇄성이 한결 극복됐는지는 모른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본래 인간 이성(理性)에 대한 낙관에 기초한 제도였다.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이성과 그런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러나, 표준화(standardization), 동질화(homogenization), 대중화(massification), 평범(mediocrity)화라는 지극히 반(反)생명적이고 비(非)창의적인 세상을 만들었다.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은커녕, 가두(街頭)의 대중과 흑색/황색 프로파간다가 판치는 저질문화의 시대가 왔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 병폐는 사이버 공간에 넘쳐나는 대중의 폭발적인 쓰나미와 더불어 한 층 더 증폭됐다.
예컨대 모바일 투표라는 게 정당의 제한된 대표성을 극복했는지는 몰라도, 반면에 그것은 음모가들의 조작과 정치인 팬클럽이라는 이름의 대중적 열광주의(fanaticism)에 난폭한 놀이터를 제공한 흠도 아울러 동반 했다. 니체가 걱정한 대중화의 부정적 측면이 한껏 부풀려진 셈이다.웃기는 것은, 대중과 인민을 내세우는 북(北)은 오히려 지독한 엘리트주의로 갔는데, 대중(인민) 독재에 반대하는 헌법을 채택한 남한은 오히려 ‘대중 판’으로 간다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남한의 직업적 ‘꾼’들이 그런 판을 부추겨 무엇을 확 뒤집어 놓고 싶어 한다는 뜻도 일부 될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 나름의 흠이 있는 반면에 질서 있는 게임, 룰에 의한 게임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선 분명히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은 살려야 한다. 그래야 자의성과 무정부적 난장판을 막을 수 있다. 결함이 있으면 참여민주주의적 요소를 보완책 정도로 참고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대의제를 아예 능멸하고, 일종의 홍위병 효과를 일으키는 정도로까지 가면 그것은 자칫 선동정치, 중우(衆愚)정치, 폭민(暴民)정치에 “어서 오십시오“ 하는 초대장을 보내는 재난이 될 수도 있다.
모바일 투표로 번번이, 모조리 뒤집기를 하기로 하겠다면 정당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하는가? 없애버리지...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