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확한 해는 잘 모르겠지만 1990년대부터 개량한복이 붐을 일으키기 시작하여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맞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시내 옷가게 쇼윈도우를 개량한복이 점령했었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개량한복 한 두 벌씩은 다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개량한복을 유치원 원복으로 맞추어 입는 경우도 허다했었으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었는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얼마 전에 이사를 하면서 이삿짐을 싸다보니 장롱 속 깊은 데서 예전에 입던 개량한복이 식구별로 두 벌씩이나 나오길래 꺼내서 입어보니 다소 어색해 보이기는 했지만, 고유한복의 아름다움과 현실의 편리함을 절충해서 만들어낸 창의력 있는 걸작품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옷이라는 것이 원래 유행을 잘 타는 것이라서 개량한복도 한 때 유행을 탔으니 퇴조해 버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기는 하지만, 한 때 대단하게 유행을 탄 모델은 반드시 후속 대타가 나올만도 한데 후속 모델도 없이 거의 흔적 없이 자취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개량한복이 안 팔리니까 안 만들어 내고, 개중에는 입고 싶어도 파는 데가 없으니 못 입고, 그러다 보니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겠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열광하며 개량한복을 찾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개량한복을 멀리하고 안 입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야 여럿 있겠습니다. 첫째는 옷은 유행을 탄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토록 빨리 사라지게 된 결정적 진짜 이유는 개량한복 입고 다니면 남들이 운동권이나 데모꾼으로 오해를 한다는 것이었지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데모 좀 하고 운동 좀 한다고 하면 군인이 군복 입듯 모두 개량한복을 입고 나오니 개량한복이 일명 데모복으로 전락해버린 것이지요.

    필자도 그런 오해를 여러 번 받은 기억이 납니다. 모임에 개량한복 입고 나가면 "야, 너 요즘도 데모하고 다니냐"며 조롱하던 친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입어도 우아하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한 게 개량한복입니다. 그런데 앞서가는 현대여성이라는 이미지는 커녕 미풍양속을 지키는 현모양처의 여성상도 아니고 고집불통에다 타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기가 쎈 여자로 오해를 받게 되는게 요즘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어느 여인이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겠어요.

    개량한복이 좀 더 새롭게 진화하여 고유한복의 우아한 아름다움과 현대의 편리성을 겸비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런 날이 다시 있을까요?

    이와 비슷한 예가 될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운동권 사람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시민단체로 변신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환경운동 쪽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른바 민주화를 '쟁취'했으니, 그 다음 화두는 환경이라는 인식이었지요.

    운동권 사람들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크게 다섯 부류로 갈라집니다. 대부분은 일상생활로 돌아간 소위 넥타이 부대가 있구요, 얼마 전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불법구금됐다가 풀려난 김영환씨 같이 운동 대상을 남한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로 보는 진짜 민주화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주체사상에 물든 주사파가 되어 아직도 환상을 쫓고 있습니다. 다른 부류는 환경문제 등으로 시선을 돌려 시민단체를 구성한 사람들이고,맨 마지막이 정치일선에 직접 나서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입니다.

    요즘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환경운동의 대부라고 불리어지던 사람이 툭하면 민감한 정치현안에 개입하여 어느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특정정당을 비난하던 모습을 텔레비전 토론회 같은데서 자주 보고는 했었지요.

    소위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이 환경을 더 잘 보존하고 개선하는지에 대한 논의 없이 무조건적으로 진보는 환경보호, 보수는 환경파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를 가지고 환경운동을 한다고 하니 일반 대중들은 대략 난감이었지요.

    환경에 관심이라도 가질라치면 남들이 저 사람은 진보라는 딱지를 붙여 버리니 정당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설자리를 잃게 돼버렸습니다.

    그 한 예로 몇 해 전에 필자 고향에도 골프장이 들어선다고 하니 주민들이 반대하며 골프장과의 마찰이 심각했습니다. 걱정이 돼서 시골서 농사 짓는 선배를 찾아뵈었더니 의외의 반응이었습니다.

    첫마디가 충격이었습니다.

    “빨갱이 새끼들 때문에 관뒀다. 걱정하지 마라“

    선배도 처음에는 열심히 반대를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외부 사람들이 찾아오며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매일 텔레비전에 나와 북한 편들고 죽창으로 경찰 찌르며 데모하던 사람들이 나타나서는 무조건 반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니 그 선배는 아예 환경운동하면 빨갱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환경은 이념이나 정당이나 정파를 떠나서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소중하게 가꾸어나가야 할 아주 주요한 가치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특정 정당이나 이념이 선점을 해버려 환경하면 빨갱이 데모판이라는 선입견이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피로감마저 대다수 일반국민들에게 심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많습니다.

    보수는 무조건 개발이고 진보는 친환경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자면, 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진보와 찬성하는 보수 중에 누가 더 환경을 보존하게 될지 섣부르게 판단을 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터널 대신 고개를 넘을 때 내뿜는 매연과 겨울철에 뿌려대는 염화칼슘이 더 환경파괴적이라는 주장에도 귀 기울여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이 환경은 진보-보수, 좌파-우파의 시각에서 초연하여 더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최급선무입니다. 환경하면 진보가 선점했으니 보수는 끼어들지 말라든가 환경하면 빨갱이라는 인식을 가져서는 진정한 환경운동을 한다고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환경을 앞세워 4대강 정비와 제주해군기지건설도 반대함으로써 이와 유사한 피로감을 많은 일반 국민들에게 심어줬습니다. 해군기지 들어서면 일부 환경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국가 안보라는 것을 외면해 버리면 일반대중들에게도 외면을 당하게 되지요.

    4대강 정비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극심한 피해를 줄이고 수자원을 확보하고 시민들이 직접 눈으로 매일 확인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보하면 수질은 좋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전거 타고 가다가 오염물질이 발견되면 인터넷에 올려놓을 턴데 해당 공무원이나 담당부서가 일 안하고는 그 자리에 오래 못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반대만을 해대니 대다수 일반국민들이 환경에서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개량한복이 어느 특정 부류가 독점을 해버리고 나자마자 일반국민들에게 금방 외면 당했듯이, 환경도 어느 특정 부류가 독점을 해버리면 대다수 일반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하게 돼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큰 문제이지요. 환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국민들이 환경문제를 외면하게 만드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제주해군기지나 4대강 정비 사업 같은 것들을 반대하면서 정파적 이념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환경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반대운동을 하는 이른바 '환경장사'를 해버리면 일반 국민들로부터 환경문제는 철저히 외면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진짜 환경운동을 하는 순수 환경운동가들도 이 점을 명심하여 정치적 정파적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세력들은 단호하게 배격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많은 국민들이 환경운동에 같이 동참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환경을 보존하고 지키는데 더 큰 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