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分析] 從北의 아지트, 통합진보당 
      
     A4지 4장으로 정리한 Fact Sgeet

    金成昱   
     


  •  (1) 미군철수하자는 통합진보당 강령
     
     2012년 從北 논란의 도화선은 이석기·김재연의 통합통진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이다. 이들은 통진당 내 당권파(또는 舊당권파)로 불리며 통진당을 장악한 주체사상파(주사파, 즉 김일성주의자)가 내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권파(舊당권파)와 비당권파(新당권파)가 북한의 지령을 받는지 여부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북한과 똑같은 주장을 한다는 從北성향에는 별 차이가 없다. 통진당이 강령과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문제의 핵심은 통진당 자체에 있다는 말이다.
     
     통진당은 과거 민노당 강령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 정당의 강령은 북한이 한반도 赤化(적화)를 위해서 주장해 온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연방제통일(연방제가 수용된 6·15와 10·4선언 이행) 노선을 그대로 담았다.
     
     강령 36조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체제를 조기에 구축한다. 이와 연동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종속적 한미동맹 체제를 해체하여 동북아 다자평화협력체제로 전환한다”고 규정한다.
     
     통진당은 “6·15와 10·4 선언 이행(강령 38조)”을 규정하는데, 6·15와 10·4선언은 북한 “연방제 통일”을 받아들인 私文書이고, 북한은 6·15와 10·4선언을 통해 “고려연방제로 이행”하여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는 한반도 赤化가 가능하다고 선동하고 있다.
     
     從北 논란의 핵심이 이석기·김재연 같은 당권파(舊당권파)가 아닌 비당권파(新당권파)를 포함한 통진당 자체에 있다는 사실은 2012년 7월15일 신임 대표 선출 당시 재확인 되었다. 신임 대표 강기갑 前의원은 취임 일성으로 “당의 정체성과 강령정신은 철저히 지켜가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철저히 지켜가겠다고 다짐한 당의 정체성과 강령정신은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6·15와 10·4선언 실천”을 골자로 한 통진당 강령을 말한다. 북한의 對南노선 실천을 또 다시 확인한 것이다.
     

  •  (2) 천안함·연평도·3대세습에 대한 통진당 입장
     
     ①천안함 폭침·②연평도 포격·③북한 3대 세습·④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은 從北여부에 대한 리트머스시험지로 통한다. 북한의 對南노선과 목표가 같으면, 이들 문제도 북한 편을 들게 되는 것이다.
     
     2011년 12월 통진당 개명 이전 前身인 민노당은 3대 세습 문제 관련, “북한 후계구도와 관련하여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2010년 9월29일)”라고 주장했다.
     
     민노당 울산시당(위원장 김창현)은 경향신문이 2010년 10월1일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란 제하의 비판적 사설을 내자 ‘경향신문 絶讀(절독)’ 및 ‘全黨(전당) 차원의 절독운동’을 4일 선언했다.
     
     흥미로운 것은 비슷한 시기 민노당의 또 다른 성명이다. 북한 3대 세습을 “북한이 결정할 문제”로 감싼 민노당은 비슷한 시기에 낸 성명에서 G20 정상회의를 “한미간 韓美FTA 음모적 합의”라며 이명박 정부를 가리켜 “반민주적일뿐 아니라 전형적인 독재적 행태(10월15일)”로 비난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대다수 북한 주민 동의 획득”>
     
     민노당 싱크탱크 ‘새세상연구소’ 박경순 부소장은 2010년 10월7일 국회토론회에서 북한 3대 세습을 감싸며 “후계제도 문제는 엄연히 북한의 핵심적인 내부 문제”라며 “진정한 진보는 용납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까지를 포용할 수 있는 똘레랑스(관용)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노당은 북한의 천안함 爆沈·연평도 砲擊 당시에도 모든 책임을 국군과 정부에 돌리며 북한을 감쌌다. 천안함 폭침 당시 이정희 당시 대표는 북한이 아니라 정부를 가리켜 “선거 한번 이겨보겠다고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파렴치한 자들(2010년 5월23일)”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이 연설 이전과 이후를 포함해 민노당 차원의 對北비판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 통진당 대표인 강기갑 前의원 역시 북한의 천안함 폭침 주장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10·4선언만 제대로 이행했다면 천안함의 비극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2010년 4월20일)”이라고 했다. 천안함 폭침은 북한이 한 게 아니지만 북한의 요구인 10·4선언만 들어줬다면 천안함은 폭침되지 않았다는 황당한 편들기였다.
     
     민노당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도 북한이 아닌 정부와 미국을 비난했다. 예컨대 2010년 12월20일 민노당 성명은 “미국은 정녕 한반도에서 또다시 동족상잔의 전쟁을 원한단 말이냐”며 비판의 화살을 미국에 돌렸고 같은 해 11월24일 이정희 대표는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를 정부는 똑똑히 봐야한다(트위터)”며 북한이 아닌 정부를 비난했다.
     
     從北主義는 반정부 활동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헌법을 인정치 않는 흐름이다. 예컨대 민노당 김혜경 당시 대표는 2005년 8월 평양 ‘애국열사릉’에 참배해 “당신들의 ‘애국의 마음’을 길이길이 새기겠다”고 적었다. 애국열사릉은 북한의 골수 공산주의자들이 묻혀 있는 곳이니 방명록에 적은 “애국”의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민노당이 사랑하는(愛) 나라(國)가 어떤 곳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  (3) 이석기·김재연, 당권파의 정체
     
     從北으로 치달아온 통진당 내에서 이석기·김재연 의원은 드러난 종양이다. 李의원은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 통·번역학과 82학번으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법원은 민혁당에 대해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북한의 대남혁명전략전술에 따라 사회주의사회 건설을 목표로 활동하기 위하여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구성된 反국가단체”로 판시했다. 李의원은 99년 민혁당 해체 후에도 ‘민혁당 재건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진당 내 민혁당 관계자는 李의원 외에도 이상규 의원(민혁당 수도남부지역사업부 총책)및 이의엽 전략기획위원장(민혁당 부산지역 위원장), 김창현 울산북구 야권 단일후보(민혁당 영남위원회), 박경순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민혁당 영남위원회 총책) 등 다수이다.
     
     이석기 의원은 민혁당 이전에도 주사파 조직인 ‘자주·민주·통일그룹(이하 자민통)’ 핵심 맹원이었던 것으로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자민통 역시 주체사상을 추종하며 反국가활동을 벌이다 법원에서 反국가단체로 판시됐다.
     
      ‘친북지하조직 자민통 사건 수사결과’ 등 90년대 정부가 발간한 복수의 문건에 따르면, 자민통 조직원들은 식사 전에도 김일성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묵념을 했다. 섬뜩한 내용의 자민통 결의문은 이러하다.
     
     “위대한 수령님 김일성 동지와 우리의 지도자 김정일 비서의 만수무강과 한민전의 영도 아래 이 한 목숨 끊어질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 결단으로 나아가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사수하겠습니다”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사수!”>
     
     김재연 의원은 한국외대 총학생회장 및 한총련 대의원(2002년 10기)을 지냈다. 金의원은 4월10일 한국대학신문(http://news.unn.net/)인터뷰에서 “학교 안에서 3년 간 수배자 생활을 했다”며 한총련을 가리켜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金의원이 “사회정의 실현단체”로 표현한 한총련은 김정일 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자임하다 1998년 利敵團體(이적단체)로 판시됐다. 법원 역시 “한총련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설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해 왔다(2004도 3212)”고 판시했다.
     
     한총련 의장은 김정일 찬양구호인 “결사옹위”를 혈서로 써 지니고 다니다 입건되기도 했었다(2003도 604). 당시 대법원은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북한의 김정일 찬양구호인 ‘수령결사옹위’에서 인용한 ‘결사옹위’라는 문구를 가로 114cm, 세로 89cm의 흰 천에 혈서를 써 한총련 의장에게 선물한 뒤, 한총련 의장이 이를 소지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비당권파는 문제가 없다? 강종헌 Case>
     

  •  이석기 의원는 민혁당·자민통 활동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半합법단체를 이끌며 민노당과 통진당 당권을 장악했다. ‘경기동부연합’은 91년 결성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지역 조직이었다. 전국연합은 2002년 9월 ‘군자산의 약속’을 통해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연방제통일을 결의하며 연방제통일은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역량에 가세-결집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해설했다.
     
     ‘경기동부연합’ 소속 통진당 의원은 이석기 외에도 6명인 것으로 알려졌고 이들이 소위 당권파(舊당권파)로 불린다. 그러나 통진당 자체가 從北인 탓에 이 같은 분석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예컨대 비당권파(新당권파)로 불리는 강기갑 前의원이나 오병윤(전남 서구을)의원 역시 ‘경기동부연합’ 상급단체 전국연합 간부 출신이다.
     
     통진당 비례대표 18번 강종헌 역시 당권파(舊당권파)가 아닌 비당권파(新당권파)로 분류된다. 그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以下 75년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 받은 뒤 13년을 복역했다. 강종헌은 1988년 출소 이후 일본으로 추방돼 북한정권을 추종해온 反국가단체 한통련(在日한국민주통일연합)과 이적단체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간부 등을 지내다 19대 총선에서 통진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강종헌은 ‘김일성에 바치는 회갑 축하 노래’까지 북한에 보냈고 이 노래는 1972년 4월14일 로동신문 2면에 게재됐다. 로동신문에 기고된 이 노래는 “···민족영웅 4월의 태양 밝고 밝은 빛을 뿌리네···김일성 원수님이시여 만수무강하옵소서” 등의 가사로 돼 있고 이 같은 사실은 법원 판결문에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