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 이례적 '판정번복' 코믹쇼 이어져박태환-조준호, 함량미달 심판진 '오심'에 피눈물
  • ▲ 29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남자유도 66㎏급 8강전 한국 조준호 대 일본 에비누마 마사시 경기가 끝난 뒤 스페인 후안 카를로스 바르코스 심판위원장(오른쪽)이 심판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조준호는 심판 판정의 번복 끝에 4강진출에 실패했다.  ⓒ 연합뉴스
    ▲ 29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남자유도 66㎏급 8강전 한국 조준호 대 일본 에비누마 마사시 경기가 끝난 뒤 스페인 후안 카를로스 바르코스 심판위원장(오른쪽)이 심판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조준호는 심판 판정의 번복 끝에 4강진출에 실패했다. ⓒ 연합뉴스

    2012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 선수들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8일(한국시각) 박태환(23·SK텔레콤)이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부정출발로 잠시(?) 실격 처리되는 해프닝을 겪은 가운데, 이번엔 유도의 조준호(24·한국마사회)가 '오심'의 희생양이 됐다.

    29일 엑셀 런던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유도 66㎏급 8강전에 출전한 조준호는 어이없는 판정 번복으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날 세계랭킹 4위의 에비누마 마사시(일본)와 맞붙은 조준호는 정규 경기시간(5분) 동안 승패를 가리지 못해 연장전까지 돌입하는 '혈투'를 벌였다.

    실력이 엇비슷한 두 사람은 연장전에서도 좀처럼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런데 종료 1분 38초를 남겨두고 조준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에비누마가 시도한 안뒤축 걸기에 조준호가 넘어져 유효를 빼앗긴 것. 하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에비누마의 기술이 미미했다는 판단을 내린 심판진은 유효 판정을 '무효'로 정정했다.

    드디어 연장전이 끝났고 심판진 전원은 일제히 파란 깃발을 올려 조준호의 승리를 선언했다.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딛고 승리를 따낸 조준호는 환호를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 ▲ 조준호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스페인의 수고이 우리아르테에게 판정승을 거둔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조준호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스페인의 수고이 우리아르테에게 판정승을 거둔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경기장에 참석한 일본 팬들은 마치 에비누마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격한 야유를 퍼부었다. 에비누마 역시 불만 섞인 표정을 지으며 우두커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순간 스페인 출신인 IJF(국제유도연맹) 후안 카를로스 바르코스(Juan Carlos Barcos) 심판위원장이 최종 판정을 멈추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는 주심과 부심을 불러 모아 귓속말로 뭔가를 지시했고 다시 경기장으로 나선 세 명의 심판은 일제히 흰색 깃발을 들어올렸다.

    3-0 판정이 순식간에 0-3으로 뒤바뀌는 기막힌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유도 경기는 3심의 판정이 절대적이다. 심판위원은 비디오 판독에만 참여할 수 있을 뿐, 경기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심판의 몫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의 '절대강자'는 바르코스 심판위원장이었다. 그는 경기 결과가 뒤집힌 이유에 대해 "심사위원 전원이 에비누마의 우세라고 판단했다"며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보도에 따르면 경기 직후 심판위원회의 한 위원이 바르코스 심판위원장에게 "판정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해 두 번째 비디오 판독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바르코스 심판위원장은 판독을 마친 뒤 에비누마에게 포인트를 줬고, 승리는 '유도 종주국' 일본 선수에게 돌아갔다.

    '억지 판정'으로 승리를 따낸 에비누마도 기쁜 표정 대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 ▲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유도 66kg급 조준호(한국마사회)가 30일 새벽(현지시간) 런던의 엑셀 런던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 스페인의 수고이 우리아르테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둔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유도 66kg급 조준호(한국마사회)가 30일 새벽(현지시간) 런던의 엑셀 런던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 스페인의 수고이 우리아르테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둔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석연찮은 판정으로 8강에서 떨어진 조준호는 다행히 이어진 3위 결정전(패자부활전)에서 수고이 우리아르테(스페인)을 제치고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직후 믹스트존 인터뷰에 나선 조준호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오늘에서야 들었다"며 눈물을 흘린 뒤, 부상을 감추고 경기에 임해야 했던 속사정 등 밝히지 못했던 저간의 심경을 털어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몰랐어요. 오늘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올림픽에 집중하라고 말씀을 안 해주신 것 같아요."

    "(경기 당시)부상 부위가 너무 아파서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그냥 감독님 지시대로 따랐죠."

    "(8강전 탈락은)뭔가를 도둑맞은 기분이죠."

    한편 심판위원장의 '농간'으로 불명예 승리를 얻은 일본 역시 8강전 결과에 대해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특히 일본 주요 언론은 저마다 냉소적인 헤드라인을 달며 현지 심판진을 비꼬는 기사들을 양산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바보 삼총사(The Three Stooges)' 영화를 패러디한 것처럼 심판 3명이 잠깐 회의를 가진 뒤 판정을 번복했다"고 밝혔고, <닛칸 스포츠>는 "소란스러웠던 경기장 분위기 때문에 한 경기에서 두 번이나 판정 번복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개운치 않은 나쁜 판정이 됐다"며 혹평을 가했다.

    프랑스 통신사인 <AFP>도 이날 경기를 '촌극(farce)'으로 표현하며 조소를 날렸다.

    "엑셀 런던 경기장에서 열린 유도 경기가 '촌극'으로 변했습니다. 경기 직후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는 후안 카를로스 바르코스가 3명의 심판을 불러 모아 황급히 논의를 벌였습니다. 그는 심판들에게 적법하게 내려진 결과를 번복할 것을 권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