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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恩 체제가 안정되면 ‘개혁, 개방’할 것이라는
妄發에 대하여
李東馥
김정일(金正日) 사후(死後)의 북한에서 그의 후계자로 옹립된 김정은(金正恩)이 인민군 총사령관과 조선노동당 군사위원회 위원장에 더하여 조선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꿰차고 ‘공화국 원수’로 추대된 데다가 한 때 군부의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浮上)했던 리영호가 전격적으로 숙청되는가 하면 김정은이 미모의 얼짱 부인 리설주(李雪主)와 팔짱을 끼고 갖가지 행사에 참가하는 모습이 북한의 관영 TV에 방영되는 이변(異變)이 발생하자 적지 않은 얼치기 ‘북한 전문가’들이 “김정은의 권좌(權座)가 안정되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하는 데 앞을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얼치기 ‘북한 전문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정은의 권좌가 이렇게 안정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 “머지않아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서 남북관계에도 전향적인 자세로 돌아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심지어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해서도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면 김정은의 권력기반(權力基盤)이 더욱 안정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보내 주어야 한다”는 엉뚱한 권고마저 서슴치 않고 있다.
필자는 이 같은 분석에 동의하기 어렵다. 필자가 보기에는 북한 정세에 관한 이들 얼치기들의 이 같은 분석은 문자 그대로 무면허 돌팔이 의사가 환자를 진맥(診脈)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우선, 김정은의 권좌가 안정되고 있다는 그들의 분석은 안이하고 무책임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김정은이 특히 북한 권좌의 핵심 노른자위인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국방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직접 꿰차지 못하고 ‘제1비서’•‘제1위원장’이라는 군색한 호칭을 사용하는 편법(便法)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의 권력이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아직도 과도적, 잠정적, 임시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김정은에게 ‘공화국 원수’라는 상징적인 위상(位相)을 부여하고 난데없이 미모(美貌)의 얼짱 부인과 함께 TV에 출연시키는 등의 뜬금없는 해프닝을 연출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캄플라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파격적인 눈요기거리를 만들어 특히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주민들이 느끼는 허탈감을 달래주는 데 목적이 있는 일시적인 눈속임에 불과할 뿐이다. 북한의 장기(長技)인 특유의 선전 술책일 뿐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선전은 실체가 아니다.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여기서 짚어 두어야 할 문제는 스탈린 식 공산주의 개인독재의 변형(變形)인 북한판 수령독재 체제는 독재자에 대한 절대적 우상화(偶像化)를 요구하고 그 같은 우상화는 독재자를 둘러싸는 신비주의(神秘主義)가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이 옛 한문(漢文) 표현을 빌면 구상유취(口尙乳臭)의 약관(弱冠)인 김정은을 주연(主演), 그리고 그의 묘령(妙齡)의 배우자를 조연(助演) 배우로 출연시켜 연출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 방식의 흥행(興行) 쇼는, 장기화될 경우, 수령독재 체제의 핵심적 가치인 독재자에 대한 우상화의 기반인 신비주의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에서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가 없이도 김정은 중심의 수령독재 체제가 착근(着根)하여 안정될 수 있을 것이냐의 여부에 있다. 결국,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가 수반되지 않는 김정은 1인 독재체제의 착근(着根)과 안정화는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북한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흥행주의 쇼는, 비록 일정 기간 지속되더라도, 머지않아 김정은•리설주 부부가 연기자(演技者)로 출연하는 북한판 ‘버라이어티 쇼’ 흥행을 걷어치우고 신비주의의 그늘 속으로 되돌아가 다시 우상화의 성벽을 쌓아 올리거나 아니면, 김정은과 그의 배우자에게, 필경은, 함께 실각(失脚)하여 용도폐기(用途廢棄)될 운명을 점지해 주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 정세에 대한 돌팔이 식 엉터리 진맥에 동원되고 있는 얼치기 ‘북한 전문가’들이 반드시 인식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중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를 내용으로 하는 수령독재 체제의 안정이 아니라 제거 내지 청산이 절대적인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의 경우, ‘개혁•개방’ 논의가 제기된 것은 아직 마오쩌둥(毛澤東) 우상화가 절대적인 시기였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대약진(大躍進)’을 비롯하여 마오쩌둥이 주도했던 농업 위주의 강제동원 방식의 경제정책이 실패하자 류샤오치(劉少奇)•덩샤오핑(鄧小平)이 들고 나왔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용주의 노선이 그것이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으로 상징되었던 이들의 ‘개혁•개방’ 논의는 혹독한 탄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이들의 ‘개혁•개방’ 논의가 필연적으로 마오쩌둥에 대한 우상화를 파괴할 것이라고 판단한 마오쩌둥과 그의 추종자들이 ‘문화혁명(文化革命)’을 이르켜 이들 ‘개혁•개방’론자들에 대한 대대적 숙청작업을 벌인 것이다. 류샤오치는 이 와중(渦中)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국은 개인 우상화의 대상이었던 마오쩌둥이 1976년 사망하고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의 숙청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덩샤오핑이 1978년 중국의 권력자로 화려한 복권(復權)을 이룩한 뒤에야 그의 주도 하에 오늘날 중국의 부흥을 가져온 ‘개혁•개방’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덩샤오핑이 실천에 옮기 중국식 ‘개혁•개방’의 성공을 보장한 요소는 세 가지였다. 즉 ① 개인 우상화의 폐지, ② ‘인치(人治)’의 지양과 ‘법치(法治)’의 회복 그리고 ③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전면적 시행이었다. 중국의 지도부는 1982년 장춘(長春)에서 있었던 덩샤오핑과 김일성 사이의 회담을 효시(嚆矢)로 북한 지도부에 대해 “중국에 나쁜 것은 북한에도 나쁘고 중국에 좋은 것은 북한에도 나쁜 데 ‘개혁•개방’은 중국에 좋으니까 북한에도 좋은 것”이라는 ‘순망치한론(脣亡齒寒論)’에 입각하여 중국식 ‘개혁•개방’을 수용할 것을 끈질기게 권유해 왔다.
특히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그의 사망을 앞두고 도합 일곱 차례에 걸쳐 중국을 방문하여 그의 사후(死後)에 대비한 중국의 대규모 경제지원 약속을 호소하는 김정일에게 시종일관 “개혁•개방”의 수용이라는 전제조건을 고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그가 죽을 때까지 이 같은 중국 지도부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중국식 ‘개혁•개방’의 수용은 곧 북한판 ‘김가왕조(金家王朝)’의 가계(家系)에 대한 우상화의 파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개혁•개방’을 수용하면 필연적으로 김가 가계(家系)에 대한 우상화가 무너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중국 지도부의 무려 30여년에 걸친 설득마저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 지도부가 “개혁•개방을 하면 오히려 김정은 체제가 안정된다”는 우리측의 사탕발림에 현혹(眩惑)될 것이라는 얼치기 ‘북한 전문가’들의 망발(妄發)에는 아연실색(啞然失色)을 금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