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神父)님 우리들의 신부님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소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는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 한국출판계를 강타한 베스트셀러였다. 이탈리아 한 시골 마을의 교구신부인 돈 카밀로와 읍장인 공산주의자 페포네의 갈등을 코믹하게 그린 이 소설에서 ‘신부님’은 단순하고 거칠지만 따뜻한 마음의 캐릭터로 사람들의 존경과 호감을 사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위에선 일부 신부(神父)들의 정치선동 때문에 성당에 나가기 싫다는 천주교 신도들을 많이 본다. 선동 레퍼토리도 다양해 한미 FTA 반대, 4대강 사업 반대,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의 사안을 두루 아우른다. 연전에 정진석 추기경께서 4대강 사업 반대가 천주교회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천명하고 다른 한편으론 북한의 현실을 비판했을 때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즉각 이를 ‘추기경의 궤변’이라 비판하고 그를 ‘골수 반공주의자’라고 매도했다. 일부 사제들은 추기경의 사퇴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때 천주교 신자인 한 지인이 “4대강 공사야 이들 신부보다야 서울대 공대 출신인 추기경께서 뭘 알아도 더 잘 알지 않겠느냐”고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가톨릭은 존경받는 역대 추기경(김수한, 정진석)들의 높은 권위와 상대적으로 우수하고 엄격한 사제들의 교육 등으로 우리 사회에서 신도 수보다 더 큰 위상을 갖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 시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양심의 등불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용감히 밝힌 그들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당시 사제단 대표였던 고(故) 김승훈 신부에게 “신부님, 자랑스러운 우리 신부님. 우리는 신부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앞서 언급한 소설 제목이 패러디된 카드가 전달돼 화제가 됐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낄 때 못 낄 때를 구별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그들은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수원교구의 한 신부는 ‘해적’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제주 해군기지 반대 만화를 나눠주고 “연평도 포격은 북한이 한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중학생 신도를 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하는 처지가 됐다. 한심한 일이다.

     어느 나라나 온갖 종교의 성직자들이 일으키는 여러 문제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천주교 사제들에겐 그들이 감내해야 할 고뇌의 정도가 큼을 알기에 어느 정도의 인간적인 일탈에 대해선 관대함이 허용되는 분위기도 있다. 콜린 맥컬로우의 소설 ‘가시나무 새’에서 신부님과 여신도 사이의 정신적·육체적 사랑도 용서받지 못할 계율위반이라기보단 '인간적인 사랑'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천주교계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같은 천인공노할 일에 관용이 허용돼선 안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에 버금가는 가증스러운 일이 벌어졌으니, 바로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정의구현사제단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11월 “1987년 KAL기 폭파 사건은 조작된 것이고 정부가 폭파범이라고 한 김현희는 가짜”라는 선언문을 발표한 것이었다. 당시 신부들의 선창(先唱)에 맞춰 MBC를 필두로 한 각 방송사들이 이 선동에 미친 듯이 가세했다. 요즘 파업하는 방송인들은 그때 무엇을 했던가 묻고 싶다. 과거사위원회들도 이 황당한 주장을 조사하느라 많은 국고를 낭비했다. 여담이지만 이들 위원회에서 조사를 개시한 위원장들은 공교롭게도 성직자인 오충일 목사와 송기인 신부였다. 요즘 재차 주목받는 이 사건에 대해 당시 조작이라고 주장했던 신부들은 비겁하게 답변을 회피한다. 참고로 북한 외무성 리근 미국국장은 2007년에 “우리는 KAL기 테러 이후 즉 1986년 이후에는 테러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며 엉겁결에 그 사건이 북한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했다.

     과거 인권운동과 반정부 운동의 리더였던 고(故) 지학순 주교는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을 방문해 어린 시절 성당을 같이 다녔던 여동생과 감격적인 해후를 했다. 그러나 여동생은 “우리 수령님이 하느님이요, 우리 공화국이 바로 천당인데 왜 오빠는 천주교를 믿느냐”고 면박을 줬다. 지 주교는 큰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남쪽에서 그가 항거한 권위주의 체제보다 몇 만 배 더 혹독한 북쪽의 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과레스키의 소설 속 신부님은 공산주의자와 싸우지만 한국의 일부 신부들은 거짓 주장을 하며 오히려 북한 정권이나 종북주의자들이나 좋아할 일을 하지 않았는가.

     양심을 가진 천주교인들은 신부님들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회개한다. 이제는 신부님들이 공개적인 고해성사를 할 차례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우리는 KAL기 폭파 사건이 정부 조작이라고 매도한 일에 대해 그대들의 회개를 들을 준비가 돼 있소. 회피하거나 침묵하지 마시오. 어차피 이 사건의 진상조사특위 구성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당신들이 처절한 양심의 고해(告解)를 해야 할 때가 아니던가요.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현대사

    (조선일보 아침논단 2012.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