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당의 유일한 '병역미필' 당선자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출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선동 "청와대로 가자"
    金泌材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출신의 박원석(4.11총선 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 前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 실장은 2008년 5월24일 촛불집회를 불법 거리 시위로 변질시킨 장본인으로 당시 무대에서 집회 참가자들에게 ‘청와대로 가자’고 방송으로 선동했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집회 참가자들은 그날 처음으로 광화문 우체국 앞 차도를 점거한 채 경찰과 대치하며 철야 시위를 벌였다. 1970년생인 박원석은 1994년 참여연대 발기인으로 참여해 조직에서 간사, 연대사업국장 등을 지냈다.

    동국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1990년 8월 화염병을 던지는 등의 과격 시위를 하다가 구속돼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박원석은 촛불 집회가 시작 된 이후 거의 매일 밤 시위대 선두에서 ‘청와대 진격’을 외쳤었다. 

    [참고자료]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 함께하는 '박원순의 사람들'
    2011년 9월29일자 보도/金泌材(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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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참여연대 발기인, 집행위원, 운영위원 출신이다/곽노현 교육감 홈페이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곽노현은 2010년 6월 교육감 취임준비위원장을 비롯한 준비위원 43명, 자문그룹인 지도위원 15명, 원로인사인 고문 10명 등 총 83명으로 구성된 취임준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을 참여시켰다.

    만화가 출신으로 한겨레신문에 시사만평을 그려온 박재동 씨가 취임준비위원장에,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인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송병춘 변호사, 이종태 한국청소년 정책연구원장(노무현 정권 출범 당시 대통령 인수위 참여인사) 장은숙 전국참교육학부모 회장 등의 인사들이 부위원장에 위촉됐다.

    각 분과위원장으로는 김진욱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최민희 前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노무현 정권 시절 방송위 부위원장), 김용일 부산해양대 교육학과 교수(노무현 정권 출범 당시 대통령 인수위 전문위원) 등이 맡았고, 김윤택 우석대 사범대 교수가 비서실장을 맡았다.

    박상주 미디어오늘 논설위원, 학원 강사 출신의 이범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안승문 교육희망네트워크 운영위원, 윤지희 사교육없는세상 공동대표, 최현섭 前강원대 총장을 비롯, 참여연대를 주도해온 박원순 변호사(곽노현 취임준비위 지도위원),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등의 인사들이 대변인, 운영위원, 지도 및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 지난 9월7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참여연대> 창립 17주년 기념 후원의 밤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박원순 변호사/동영상 갭쳐: 참여연대 홈페이지 

    이들 가운데 만화가 박재동은 2009년 참여연대에서 만화를 주제로 특강을 했던 인물이며,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2003~2005년 기간 동안 참여연대 선출직 운영위원을 지냈다.

    極左단체인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로 활동 중인 박석운은 참여연대 선출집행위원(1994~1996년, 1998년), 선출직운영위원(2000~2003년), 자문(2004~2006년)을 역임했다.

    이외에도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곽노현의 교육감 당선과 함께 취임준비위원으로 위촉됐다. 1970년생인 박원석은 1994년 참여연대 발기인으로 참여, 이 단체에서 간사, 連帶(연대)사업국장 등을 지냈다. 동국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1990년 8월 화염병을 던지는 과격시위를 벌이다,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 받았다.

    박원석은 2008년 광우병 난동과 함께 자신의 주가를 높였던 인물로,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으로 참여했다. 그는 2008년 5월24일 촛불시위 무대에서 “오늘 우리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간다. 여러분도 이 움직임에 동참해줄 수 있느냐”고 선동했다.

    5월24일은 촛불시위가 처음으로 광화문 우체국 앞 차도를 점거해 철야시위를 벌였던 날이다. 당시 박원석은 대중선동을 통해 촛불시위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전환시켰다.

    박원석은 이후에도 “이제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용서할 수 없다…(중략) 미국 대통령과 친구를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국민은 적으로 돌렸다. 국민과 돌이킬 수 없는 불화의 길로 돌아섰다(같은 해 6월26일 촛불집회)”는 등 촛불선동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또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으로 함께 참여한 한용진 등과 같이 경찰의 수배자 명단에 올랐고, 이들은 이후 조계사에서 농성을 계속하다가 2008년 11월 6일 강원도 동해시 인근 모텔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박원석은 이후 2009년 4월17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박원석은 2007년 7월27일 ‘정전협정 54주년 한국시민사회 평화선언’을 통해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변화시키고…(중략) 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함께 한반도에 대한 핵우산 정책도 폐기되어야 한다…(중략) 군사동맹 해소에 기초한 새로운 한반도 동북아 평화유지 방안 마련…(중략) 국보법 등 反평화적이고 냉전적인 법과 제도는 개폐” 등을 주장했다.

    2006년 9월18일 ‘평화선언’을 통해서는 “평택미군기지는 미국의 군사전략의 변화에 따른 전쟁침략기지”라며 “대추리, 도두리가 전쟁기지가 되면 한반도 전체가 전쟁기지가 됩니다. 정부의 본격적인 강제철거를 저지하고 평화를 지켜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박원석은 2009년 4월25일 인터넷 매체 <레프트21>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완연하게 퇴조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인턴제나 임금 깎자는 것도 대안이 아니고, 이명박은 아무 대안이 없어요. 청년실업 문제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저항을 조직하고…(중략)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요구하는 운동을 본격화할 필요가 있어요. 청년실업 문제를 운동적 대응을 본격화하는 전략적 이슈로 잡아야 해요.” (조갑제닷컴)

    [관련자료]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걸어온 길(?)
    자료출처: 참여연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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