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예전에는 선거가 있을 때면 의례히 선거판도를 가늠해 보는 잣대 중 하나가 바로 여촌야도(與村野都)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여당은 촌에서 야당은 도시에서 유리하다는 것이었지요. 전쟁의 배고픔과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았고 메스미디어가 발달되지도 않았던 때였으니 아무래도 시골 사람들은 안보라든가 먹고사는 문제라든가 안정적이며 보수성향으로 기울고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산업화 되는 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변화에 대한 욕구가 컸었겠지요. 

    그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그 여촌야도라는 선거판도가 슬그머니 사라지더니만 그 자리에 지역감정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자리 잡게 됩니다.

    선거에서 영호남 지역감정의 원인과 시작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사람들 마다 다르긴 한데요, 근현대사에서 영호남 지역감정의 원인에 대한 대체적인 견해를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 후 치뤄진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야당인 신민당에서 40대의 젊은 김대중후보가 도시와 호남인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이에 당황한 박정희후보가 영남인들의 단결을 촉구한데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지만 선거결과를 분석해 보면 그 당시에는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산에서 박정희후보는 55.7%를 김대중후보는 43.6%, 전북에서 박후보는 35.5%를 김후보는 61.5%, 전남에서 박후보는 34.4%를 김후보는 62.8%, 경북에서 박후보는 75.6%를 김후보는 23.3%, 경남에서 박후보는 73.4%를 김후보는 25.6%를 얻게 됩니다. 이정도면 애향심의 발로라 표현해도 무리는 없을 듯해 보입니다.

    10.26과 12.12, 5.18 등의 격변기를 겪고 치룬 1985년 총선 결과에서도 영호남 지역감정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부산에서 민정당 27.9% 신민당 36.9%, 전북에서 민정당 36.8% 신민당 26.4%, 전남에서 민정당 35.7% 신민당 25.3%, 경북에서 민정당 27.8% 신민당 23.5%, 경남에서 민정당 31.1% 신민당 26.7%, 대구에서 민정당 28.3% 신민당 29.7%으로 오히려 반대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때는 아마도 영호남지역감정 보다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더 컸었으리란 짐작이 갑니다. 이 선거 결과만을 가지고 보자면 이때까지는 투표에서 영호남 지역감정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지금 같은 극단적인 투표결과를 보여주는 영호남 지역감정은 1987년 대선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많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김대중후보가 주장했던 이른바 ‘4자 필승론’이란 것인데요,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하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에서 생활하던 김대중이 서울의 봄을 맞아 귀국을 하여 후보단일화약속을 깨고 대권 출사표를 던지면서 했다는 그 유명한 말입니다. TK(대구경북)는 노태우후보가, PK(부산경남)는 김영삼후보가, 충청은 김종필후보가 맡고 있어서 자신은 결집된 호남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철저하게 지역구도로 나가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인데, 이때를 투표에 있어서 영호남지역감정의 본격적인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실제로 투표결과를 분석해 보면 1987년 대선 때부터 그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영호남 몰표 현상이 시작됩니다. 

    부산에서 노태우후보는 32.1% 김영삼후보는 56.0% 김대중후보는 9.14%, 대구는 노후보70.7% YS 24.3% DJ2.6%, 광주는 노4.8% YS 0.5% DJ 94.4%, 전북은 노 14.1% YS 1.5% DJ 83,5%, 전남은 노 8.2% YS 1.2% DJ 90.3%, 경북은 노 66.4% YS 28.2% DJ 2.4%, 경남은 노 41.2% YS 51.3% DJ 4.5%로 이때부터 양극단적인 투표행위가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그 이듬해 치루어진 1988년 13대 총선 득표율을 보면 영호남 지역감정이 박정희 때문이라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전북에서 민정당 28.7% 민주당 1.3% 평민당 61.4%, 전남은 민정당 22.8% 민주당 0.7% 평민당 76.9%, 경북은 민정당 50.9% 민주당 24.5% 평민당 0.9%, 경남은 민정당 40.2% 민주당 36.9% 평민당 1.0%, 대구는 민정당 48.1% 민주당 28.3% 평민당 0.6%, 부산은 민정당 32.1% 민주당 54.2% 평민당 1.9%로 영호남에서 YS의 민주당과 DJ의 평민당이 극한대립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정희 후배들이 모여 있던 민자당은 영호남에서 고른 득표를 합니다. 이 득표 결과만을 보면 영호남의 극한 대립은 박정희가 아니라 YS와 DJ의 대립으로 보입니다.

    그 이후로 소위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당은 호남에서 5% 내외의 저조한 득표를 하는 반면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은 95%대의 높은 지지율을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영남에서 민주당은 두자리수 득표를 하는데요, 지역감정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는 계기로 발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은 총선에서도 호남당과 영남당으로 확연하게 갈라지며 극한적인 모습이 연출되어왔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그 암울한 벽이 허물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 지역에 연고를 둔 당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찍고 보자는 극한적인 지역감정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우리의 미래를 망치고 있습니다. 같은 동포에게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 김일성과 김정일을 태양이며 민족의 영웅으로 찬양 하던 사람도 자기지역을 연고로 하는 정당 사람이면 무조건 찍어주는 투표행태는 사라져야 합니다.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국정주요과제로 추진하던 정책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버리는 사람들도 자기지역을 연고로 하는 정당이라며 무조건 찍어주는 선거 행태야 말로 민주주를 좀먹고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죄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