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따르거나 폭정 완화…일부 남편에 맞서
  • 철권 통치자들의 아내들은 과연 최고 권력자인 남편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나?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 출신 아내 아스마 알 아사드(36)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민주화 시위 이후 보안군 2천명과 시민 5천명 등 모두 7천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의 언론들은 이 과정에서 의회 정치가 태동한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한 아사드 부인이 모종의 해결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시위가 시작된지 거의 1년만인 지난 7일 더 타임스에 보낸 짧은 이메일에서 "대통령은 특정 분파가 아닌 시리아 전체의 대통령이며 그러한 역할을 하는 남편을 지지한다"고 밝혀 영국인들을 실망시켰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요즘 의견 차이를 좁히고 대화를 하도록 격려하는 일도 하고 있으며 폭력의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국의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라임 알라프 연구원은 8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설혹 그녀가 현재 일어나는 상황이 불쾌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그녀의 태도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권위주의적인 남편에 맞섰던 용감한 퍼스트레이디도 있다고 BBC는 소개했다.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아내 수산나 히구치는 1990년대 초반 남편을 `폭군(tyrant)'이라고 규탄했다가 이혼당해 퍼스트레이디 자리를 빼앗겼다.

    히구치는 이후 야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미국 평화연구소의 젤크 보에스텐 박사는 "용기있고 매우 중요한 일이었지만 군부를 등에 업은 그녀의 남편이 정치적으로 훨씬 강했다"면서 "히구치가 잠시 페미니스트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미미했다"고 분석했다.

    이와 달리 아프리카 독재국가들에서는 퍼스트레이디들이 남편을 달래고 사리있게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짐바브웨의 폭군 로버트 무가베의 부인 샐리 무가베는 실제 남편의 폭정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샐리가 1992년 질병으로 숨진 뒤 무가베의 두번째 부인이 된 그레이스는 사치스런 생활에 빠지면서 무가베를 제어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로열 아프리카 소사이어티의 리처드 도든 연구원은 풀이했다.

    권좌에서 물러난 뒤 반인륜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겨진 코트디부아르의 로랑 그바그보의 아내 시몬 그바그보는 남편 보다 오히려 한술 더 떠 폭압을 휘두른 사례로 꼽힌다.

    도든은 "그바그보 대통령은 좀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었으나 아내는 강경했고 남편 보다 과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며 "그녀는 단순한 퍼스트레이디 이외에 공식적인 정치적 역할을 했고 늘 신문을 장식했다"고 전했다.

    루마니아의 악명높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크의 아내 엘레나도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이들 부부는 지난 1989년 민중봉기를 피해 도주하다 붙잡힌 뒤 함께 총살당했다.

    `현대의 독재자들(Modern Tyrants)'이라는 책을 쓴 대니얼 치롯은 히틀러나 스탈린의 아내들은 남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반면 중국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은 문화혁명을 주도했는데, 남편에게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