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이 본연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이 한나라당을 상징하는 ‘보수’의 깃발을 내리자고 주장하면서 당 정체성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발전적 보수’는 한나라당 정강정책 첫 머리에 나오는 단어다.

    2006년 박근혜 당시 대표 시절 개정된 정강정책의 첫 문장은 ‘새로운 한나라당은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한다’로 시작한다.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비대위 내에서 정강정책·총선공약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인 위원은 4일 일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대 흐름에 따라 정강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보수 문구의 삭제를 주장했다.

  • ▲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연합뉴스
    ▲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연합뉴스

    즉시 강하게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친박-친이 계파를 가릴 것도 없었다. 당이 쇄신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친박 성향인 김용갑 당 상임고문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충격에 빠졌다”고 밝혔다.

    김 상임고문은 “그동안 김종인-이상돈 위원이 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60년 이상 이어온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다니 집안의 성(姓)을 바꾸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피나는 보수의 개혁이 중요한 것이지, 이제 와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가치와 전통을 부정한다면 박근혜 위원장은 아버지가 이뤄낸 박정희 시대를 부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자기 부정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부 비상대책위원이 하는 것을 보면 민주통합당 2중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상황을 보면 한나라당을 파괴하고 민주통합당에 이익을 주려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보수’ 표현 삭제를 주장한 김종인 비대위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여옥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한나라당에서 보수와 반(反)포퓰리즘을 삭제하겠다는 김종인 비대위원, 아예 한나라당 철거반장으로 왔다고 이야기하시지”라고 꼬집었다.

    홍준표 전 대표는 “부패한 보수와 탐욕적 보수가 문제지, 참보수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참보수 운동을 해야지 왜 보수를 삭제하느냐. 이러면 당 정체성이 사라져 보수도 진보도 아니게 된다”고 우려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진수희 의원도 “김종인 위원은 ‘외국 어느 정당도 스스로 보수 정당을 표방한 나라가 없다’고 했는데,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영국의 경우에는 당 이름이 보수당”이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비박(비박근혜)ㆍ반박(반박근혜) 세력의 ‘탈당’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비상대책위원은 “자칫 비박-반박 의원들이 ‘보수 신당’을 만들겠다며 탈당할 명분을 주는 게 아닌지 우려가 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친박계 의원은 “한나라당이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고 당원들도 보수 가치에 동의하는 분이 많을텐데, 시대 흐름에 따른 논의는 할 수 있겠지만 혼자서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친이계 장제원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급기야 중도보수 가치마저 표에 판다니 제가 마음을 접어야겠군요. 정말 떠나야겠네요. 이제 민주당원인가 민노당원인가..”라고 글을 올렸다.

    반면, 쇄신파인 원희룡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 “시대가 바뀌면 보수 내용도 바뀌는 것인데 정강-정책에 보수라는 단어 자체를 못 박아두는 게 과연 시대 발전의 변화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는 점에서 굉장히 과감한 문제 제기”라며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