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女人의 검은 옷과 조의문이 불길한 이유  
     
      살인마의 죽음을 그처럼 슬퍼하며 검은 옷 입으면, 그 살인마에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은 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최 응 표 (뉴욕에서)   
     
     살인마의 죽음을 그처럼 슬퍼하며 검은 옷 입으면, 그 살인마에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은 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인생이 어떤 것인지 느껴 보지도 못하고 서해교전과 천안함 폭침으로 죽어간 젊은 장병들, KAL기 폭파로 희생된 근로자들, 아웅산 테러로 목숨을 잃은 아까운 인재들, 연평도 포격에 목숨을 잃은 어부들,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이 수 많은 영혼들에게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한단 말인가.
     
     살인마의 시신 앞에 머리 숙인 두 여인의 검은 옷, 눈물, 슬픔은 대한민국에게 무엇인가. 제거의 대상인 主敵(주적) 김정일, 그 살인마의 죽음이 그렇게 애통해야 할 죽음인가.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는 것만 같다.
     
     국 내 외적으로 저지른 그의 범죄행각, 테러, 살인, 마약, 납치, 위조지폐, 밀수, 그리고 수백만 주민을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며 얼려 죽이는 이런 학살자의 죽음이 애도의 대상이 된다면, 정의, 평화, 자유, 민주, 정직한 미래라는, 우리가 지향하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는 다 쓰레기가 돼야 하지 않는가.
     
     죽음을 통해서 인생과 화해하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그것이 죽음이 남기고 가는 마지막 선물이다. 하지만 죽음도 죽음 나름이다. 등 떠밀어 보내는 저주의 죽음에서 어떻게 그런 사랑의 선물을 기대할 수 있는가.
     
     문제는 김정일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으로 착각하는 데 있다. 두 여인의 검은 옷은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악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어서 불길하게 느껴진다.
     
     검은 색에는 무엇을 탐내거나, 해치려 하거나, 정직하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들어 있다. 그래서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일러 속이 시커먼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살인마의 시신 앞에 머리를 조아린 두 여인의 검은 옷이 불길하게 느껴지는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김대중, 그는 뼛속까지 배신과 거짓의 바이러스로 가득 찬 위선의 상징적 인물이다. 국가를 위한 대통령이 아니었다.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위한 대통령으로, 탐욕과 恨(한)을 안고 일생을 살다 간 실패한 인생이다.
     
     전부가 그렇지만, 김정일을 위해 대공수사망을 파괴하고, 적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해 재벌 총수 죽여 가며 엄청난 자금을 조달한 반역 행위만은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절대 용서 받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파트너 김정일이 죽인 참수리호의 장병 장례식이 거행되던 날, 대통령이라는 김대중은 부인 이희호 여인과 함께 월드 컵 축구 구경한다며 비행기 타고 도쿄로 갔다. 빨간 머풀러 두르고 말이다. 인생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유족들의 가슴 찢어지는 절규가 진정 그들 부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던 모양인가.
     
     그런 김대중의 미망인 이희호 여인, 멀리 평양까지 가서 살인마의 시신 앞에 머리 숙인 90 할머니의 검은 옷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철저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그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나라를 지키다 김정일의 손에 죽어 간 우리 장병이나, 從北主義者(종북주의자)들의 국가파괴행위를 저지하다 희생된 경찰들의 영결식에 검은 옷 입고 조문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그 여인이 말이다.
     
     김정일의 연평도 포격으로 졸지에 수용소 생활을 하는 갈 곳 없고 힘없는 난민을 위해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 한 적 없는 그런 90 할머니가 살인마 김정일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평양까지 간 행위는 정서적으로나 민족의 양심으로나 용서 할 수가 없다.
     
     “김정일 국방 위원장님이 영면 했지만 6. 15 남북공동선언을 이어 하루 속히 민족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란 다.” 이것이 김정일의 시신 앞에서 공산 통일을 염원하며 남긴 90 할머니의 조의문이다.
     
     夫唱婦隨(부창부수)라고 했던가. 남편과 그의 파트너(김정일)가 못다 이룬 ‘공산통일’의 꿈을 자신들이 마무리 짓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들리지 않는가. 언제 이 할머니가 대한민국을 위해 이처럼 決意(결의)에 찬 다짐을 한 일이 있었던가.
     
     그래서 그 할머니의 검은 옷과 조의문이 대한민국에 드리워지는 어두운 그림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왜 하필 휴전선을 밟고 넘어 오는가. 공산통일을 염원하는 팻말이라도 꽂을 심산이었던가. 생각할수록 불길한 예감이 든다.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 주신 국방위원장님을 우리의 마음 속 에 기억할 것”이라며, 학살자의 시신 앞에 머리 숙인 현정은 여인의 검은 옷에서도 섬뜩함을 느끼기는 매한가지다.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노력이라....., 그렇다면 김대중과 한통속이 되어 김정일에게 뇌물 바치다 어쩔 수 없어 자살(?)한 남편의 죽음도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것이었던가. 억울하게 간 남편의 죽음을 그렇게 욕되게 해서야 어떻게 남편의 영혼이 편히 잠들 수 있겠는가. 
      
     정몽헌 회장이 김대중과 김정일이 짜고 치는 고스톱 바람에 죽었는데 어떻게 그런 조의문을 쓸 수 있는가.
    현정은 여인에게 다시 묻는다. 천안함 폭침으로 죽어간 장병들의 영결식 때, 연평도 포격으로 희생된 해병과 민간인의 장례식 때, 당신은 어디 있었는가. 조문은커녕 고개라도 숙여 보았는가.
     
     주적 김정일의 급사에 그처럼 최고의 예를 갖추어 조문 하면, 그를 주적으로 명시한 대한민국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대한민국과 김정일,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이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검은 옷 입고 살인마를 조문하며 돈 벌게 해 달라고 애걸하는 현정은 회장(조문 중에도 그녀는 금강산 관광 사업을 도와 달라며 북측에 애걸), 돈만 벌게 해 준다면 악마와도 손잡을 검은 옷의 여인, 당신의 돈 벌이 놀이에 갔다 북한 병사의 총에 맞아 죽은 박광자 여인의 죽음을 기억 하는가.
     
     강도를 상대로 돈을 벌겠다는 위험한 탐욕은 자칫 국가도 배신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검은 옷과 조의문이 불길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죽음으로 대한민국 편과 김정일 편의 구분이 확실해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2012년을 위해 새 틀을 짜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풍요를 만끽하면서, 세계 최악의 인간지옥, 세계를 상대로 구걸하면서도 몇 백만씩 굶겨 죽이는 일인 독재의 북한으로 가자는 정신병자들의 세상을 끝장내야 한다는 말이다.
     
     김정일의 죽음이 대한민국에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살인마의 죽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두 여인의 검은 옷과 조의문이 불길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