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1만5천마리 희생…"사람 위한 고귀한 희생"
  • "이 세상에서 고귀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실험동물은 반드시 저 세상에서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병원의 한 강당에서 자못 슬픈 반주의 음악을 배경으로 한 추모사가 울려 퍼졌다.

    이날 행사는 서울대병원에서 실험으로 생을 마친 동물들의 혼을 달래도록 마련한 위령제로, 1996년부터 매년 이맘때 진행되고 있다.

    본업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지만, 위령제에 참석한 이 병원 의사와 연구원 등 130여명은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숙연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올해 들어 11월까지 서울대 연건캠퍼스(서울대병원)에서 실험으로 희생된 동물은 생쥐 9천132마리, 집쥐 5천98마리, 토끼 934마리, 기니픽 111마리, 개 107마리, 개구리 88마리, 돼지 76마리, 영장류 32마리, 모래쥐 12마리, 고양이 12마리, 양 9마리, 염소 8마리 등으로, 그 수는 무려 1만5천여 마리에 이른다.

    추모 분위기는 병원 측이 제작한 동영상이 상영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10분 분량의 이 동영상에는 실험실 우리에 갇히고도 신이 나서 장난감 공을 갖고 노는 고양이, 흰 고무장갑을 낀 의사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꼬리를 흔드는 개의 모습 등이 담겼다.

    특히 '어릴 적부터 저의 동물 사랑은 유별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실험동물 기술원이 되었습니다. (실험실 우리에 갇혀)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 체념한 듯 고개를 떨어뜨리던 누렁이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는 자막이 동영상에 나가자 여기저기서 감정에 북받친 듯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영상이 끝난 뒤에는 '특별한 제사상'에 헌화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제사상에는 8가지 종류의 동물 사료와 '럭셔리 도그(luxury dog) 쇠고기'라 적힌 통조림, 대추·감·바나나·배·배추 등이 놓였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길게 줄을 서서 제사상에 국화 한 송이씩을 바쳤다.

    40분에 걸친 위령제가 끝난 뒤 이 병원 내과의사 양재연(34·여)씨는 "처음보단 많이 무뎌졌지만 그래도 가끔 쥐의 눈만 봐도 불쌍한 맘이 들 때가 있다"면서 "태어나 평생 실험 도구로만 사용되다 죽는 것이 아니냐"며 안타까워 했다.

    앞서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훔친 이 학교 의생명연구원 직원 민정선(37·여)씨는 "직접 동물들을 자르고 찌르며 실험하는 사람들 모두가 위령제를 치르며 나처럼 마음이 아팠을 것"이라고 말했다.